장사를 하면서 바짝 긴장해야 하는 순간이 일 년에 한 번씩 찾아온다. 초등학교 입학식이다. 그날은 꽃다발과 풍선을 든 아이들이 까르륵 대며 뛰어 들어온다. 손이 많이 가는 고객님들이라 어린이용 포크랑 수저를 한 다스씩 준비해 놔야 일이 밀리지 않는다. 저출산으로 예전 같지 않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태어나는 아이들은 있고, 그 아이들이 자라 학교에 간다.
그날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맛있는 걸 잔뜩 사주겠다는 각오로 비싼 메뉴들을 권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선택은 짜 맞춘 듯 한결같다.
"우동 먹고 싶어요!"
매년 그랬다. 아이들은 프리미엄 돈가스 메뉴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귀엽지만 예측이 안 되는 손님들. 그렇게 다섯 번의 입학식을 겪어낸 다음에야 나는 저 나이 대의 아이들이 우동을 좋아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아는 한 이날 우동의 유일한 대항마는 짜장면이다. 바로 옆 중국집 사장님에게 입학식 날 뭐가 제일 많이 나갔냐고 여쭤보니 단연 짜장면이란다. 개업 이래 입학식 날 단 한 번도 짜장면을 이긴 메뉴는 없다면서. 그러니까, 아이들은 굉장히 싼 메뉴를 좋아한다.
아이들은 바라는 게 많지 않다
이게 단순히 음식 기호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 건 지난여름이었다. 가게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작은 물놀이장이 새로 생겼다. 군부대 바로 옆 야산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조악하기 짝이 없는 물놀이장이었다.
7~8미터짜리 허술한 미끄럼틀에 좁다란 풀이 두어 개 있는 게 다였다. 세상에 누가 저런 데서 여름휴가를 보내려나. 버스를 탄 채 그 앞을 지나가는데, 물안경과 튜브를 낀 아이들이 깔깔대며 풀장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그게 그렇게 재밌을까?
미자녀 부부라 조금 조심스럽지만, 경험하기에 아이들은 행복과 돈이 크게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아이들이라고 물질적 허영심이 없겠냐만,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려놓으면 대부분은 또 다른 놀이에 몰입한다. 사랑을 주는 엄마 아빠가 옆에 있고 재밌는 놀 거리가 있다면 대체적으로 아이들은 행복하다.
비극은 엄마 아빠가 항상 바쁘다는 사실이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니 아이를 어쩌지 못해 갈팡질팡하는 지인들의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아이들은 어느 날에는 친정 할머니 댁에, 어느 날에는 시댁 할아버지 댁에 있다가 간신히 집에 돌아온다. 운 좋게 사내 보육시설에서 낮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있지만, 아이가 여기저기 '순환보육'을 당하는 처지는 다르지 않다.
자영업자는 그마저도 언감생심이다. 연, 월차는커녕 부모님 댁에 아이를 맡기는 시간조차 따로 내기 힘들다. 이따금 가는 집 근처 태국 식당은 사장님이 아이 둘을 옆에 끼고 영업을 한다.
아이가 집이 아닌 공간을 전전하며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는 분명 적지 않을 것이지만, 거기까지 어쩔 수 있는 부모들은 많지 않다. 그걸 손 놓고 봐야만 하는 부모도, 그 스트레스를 견뎌내야 하는 아이도 모두 고되고 힘들다.
이 구도에서 부모와 자식 둘 중 하나라도 행복하다면 구성원 누군가의 희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불행하다면, 이건 차라리 모순이나 부조리라 부르는 게 맞지 않나?
가족과 행복해야 할 시간, 돈으로 쳐서 주겠다는 사회
최근 언론매체들은 끝없이 추락하는 출산율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이 추세대로면 한 해에 20만 명 이하의 아이들만이 태어날 거고, 그 미래는 곧 재앙일 것이라는 예측들. 그 대책으로는 으레 주택 제공, 출산장려금 증액, 보육시설 신설, 경력단절여성의 사회 복귀 지원 같은 얘기들이 나온다.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권리, 개인의 일상이 노동에 잠식되지 않을 권리, 모두가 평등하게 쉴 권리는 오직 경제적 지원만을 논하는 해결책들에 밀려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정말 경제적 지원을 늘리면 출산율은 알아서 오를까? 행복엔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을 돈으로 쳐서 주겠다는 해결책이 과연 가족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을까? 사실 아이에게는 입학식 날 엄마아빠와 먹는 짜장면이나 가족들끼리 물장구를 치며 노는 일이 더 소중할지도 모르는데.
장시간 노동을 독려하는 정책은 그대로 둔 채 경제적 지원 확대만으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은, 이 땅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가정과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가늠할 수 있다. 장시간 노동으로 사람들을 일터에 묶어놓고 그렇게 몰수된 가정의 일상을 돈으로 채워주겠다는 발상 안에 아이와 부모의 행복이 들어설 틈은 과연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