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로 여자의 마음을 비유하자면, 꽃은 피지만 덩굴이 뒤틀린 등나무와 같다. 소년은 가시가 있지만 처음 핀 매화꽃처럼 형언할 수 없는 깊은 향기가 있다. 그러므로 이런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여자를 버리고 남자에게 가야 할 것이다.
남색도(男色道)의 심오함을 홍법대사(弘法大師, 774-835)가 널리 퍼트리지 않은 것은 인간의 씨가 마르는 것을 애석하게 여겨 말세의 남색을 내다보셨기 때문이다. 한창때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 어찌하여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의 남자주인공은 많은 금과 은을 여러 여자에게 써 버렸을까? 진정한 유흥은 남색(男色)뿐이다. 다양한 남색을 이 책 <남색대감(男色大鑑)>에 빠짐없이 기록하기 위해서 나니와만(難波灣)의 해초를 채취하듯 많은 소재의 글을 수집하였다" -제1권 1화 가운데-
이는 이하라 사이카쿠의 저서인 <남색대감(男色大鑑)>의 제1권 1화 끝에 나오는 남색(男色) 예찬(?) 글의 일부다.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 1642-1693)는 <남색대감(男色大鑑)> 외에도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 등을 써서 에도시대(1603-1868)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한 인물이다.
<남색대감>은 불가(佛家)나 무가(武家)사회에서 정당한 애욕으로서 용인되었던 남색을 주제로 한 소설로 이 책은 지난 8월 31일, 한국어판 번역본이 지식을 만드는 지식(지만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책을 쓴 사람들은 한국외대에서 일본고전문학을 연구ㆍ강의하는 교강사들의 모임인 <일본고전명저독회(지도교수 문명재)>에서 펴낸 것으로 모두 8권 40화 가운데 이번에 펴낸 무사편(武士編)에는 제1권부터 제4권까지의 전반부 20화를 담았다. 아울러 원전의 삽화 20컷과 대표 역자인 문명재 교수의 논문 <일본 고전으로 본 남색(男色)과 지고(稚兒)>를 부록으로 실어 한국인 독자의 작품 이해를 돕고 있다.
"어느 때는 흐트러진 채 잠들어 있으면 베개를 고쳐 베어 주시고 내 벌어진 가슴을 속에 입은 흰 고소데(小袖)로 가려 주셨다. 또 바람이 불면 감기라도 걸릴세라 걱정하시는 마음 씀씀이가 꿈결에서도 느껴져 분에 넘치는 사랑이 두렵기도 했다. 잠에서 깨면 '우리 둘 말고는 듣는 이도 없다' 하시며 집안의 대사, 큰 도련님에게도 말씀하시지 않은 일들까지 들려주셨다. 또한 서로가 푸른 소나무처럼 변치 말자시며 내 옆얼굴에 난,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작은 사마귀까지도 신경이 쓰이신다며 손수 솔잎 바늘로 떼어 주셨다. 이래저래 감사한 일만 가득한 세월을 살아왔다. 이 은혜, 지금이라도 영주님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세상이 금지한 일인 걸 알지만 주인님을 따라 깨끗이 죽으려 마음먹고 있었다." -제2권 1화 가운데-
이는 제2권 1화 가운데 영주(領主)와 남색 대상인 미소년(가쓰야)의 사랑을 절절하게 묘사한 대목이다. 그러나 남색이든 여색이든 간에 달콤한 사랑은 그리 영속되는 것은 아닌 듯, 영주는 또 다른 남색 대상인 미소년에게 마음을 주고 만다.
"내 꽃다운 자태, 지금이 절정이라 조금은 자만했는데 분하구나. 지난달 초순부터 지가와 모리노조(千川森之林丞)에게 주인님의 마음이 옮겨 가시니, 세상만사 믿을 게 없어 늦가을비 내리는 10월 3일에 자결하리라 마음먹었다." -제2권 1화 가운데 -
위 내용은 '영원히 유지 될 것 같던 관계'가 영주님의 배신으로 깨어진 것을 안 첫째 애인(미소년)의 독백이다. 남색 관계에서도 사랑의 배신은 흔하다. 그러나 미소년은 자결하지 않는다. 자결하지 않는 또 다른 복마전으로 소설은 흥미를 더한다.
이번에 한국어 번역본으로 펴낸 <남색대감(男色大鑑)>은 말 그대로 '남자가 남자를 성의 대상으로 삼은 것' 으로 작가인 이하라 사이카쿠의 출세작인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이 '남자가 여자를 성의 대상으로 삼은 것', 곧 호색(好色) 이야기에서 남색(男色) 이야기로 작가의 관심과 주제가 확장되고 있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다.
일본의 남색에 관한 역사는 <일본서기>(720) 기록에서 엿볼 수 있을 만큼 그 역사가 길다. 이러한 남색의 역사가 처음부터 '수용' 된 상황은 아니었다. <왕생요집(往生要集), 승려 겐신 지음, 서기 985년>의 경우 남색은 경계의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보면 당시 남색 관계를 가진 자가 사후에 가는 곳은 다고뇌처(多苦腦處)라는 지옥으로 이곳은 불꽃에 타는 남자의 몸을 안고 온몸이 녹아서 죽게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에도시대로 들어서면 상황은 달라진다. 에도시대는 그야말로 색(色)과 관련한 자유분방한 시대였음을 <남색대감(男色大鑑)>같은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번에 한국외대 <일본고전명저독회>에서 펴낸 <남색대감(男色大鑑)>은 혹독한 '코로나19'로 모든 모임이 통제된 가운데 매달 비대면 모임을 대신해 가며 회원 각자가 맡은 부분의 번역을 발표하여 최종 마무리한 작품이다. 기자 역시 이 모임의 회원으로 그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여 에도시대의 '남색'에 관한 공부를 해보는 기회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