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지난해 9월 문재인 정부 당시 임명된 김진숙 전 한국도로공사 사장 사퇴의 단초가 됐던 '고속도로 휴게소 밥값' 인하 정책을 단 3차례 구두회의로 졸속 결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국토부는 구체적인 음식값 인하 방안을 내놓지 않아, 이른바 전 정부 공기업 사장을 찍어내기를 위한 것 아니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는 2022년 8월 원희룡 장관 지시로 도로공사와 외부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고속도로 휴게소 서비스 개선 TF(아래 휴게소 TF)'를 꾸려 고속도로 휴게소의 음식값 인하 등을 논의했다. 이후 원 장관은 지난해 8월 도로공사에 휴게소 밥값 인하를 요구했다. 하지만 김 전 사장은 회사의 영업이익 악화 등을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이러한 사실이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뒤 원 장관은 도로공사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다. 결국 김 전 사장은 원 장관의 감찰 지시 이틀 만인 지난해 9월 23일 자진 사퇴했다.
국토부 "별도 자료 갖고 회의 한 것 아닌 구두회의"
원 장관은 지난해 9월 21일 본인 페이스북에서 "조사 결과, 도로공사 측에서 이 내용을 언론에 흘리는 방식으로 개혁에 저항하려는 것이라는 강한 의심을 갖게 됐다"며 "도로공사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공공연히 정부의 개혁에 저항하는 것으로, 반드시 혁파해야 할 구태라는 판단을 하게 되어 강도 높은 감찰을 지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강원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갑)이 국토부와 도로공사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휴게소 TF는 지난해 8월 18일, 8월 25일, 9월 1일 등 총 세 차례 구두회의를 진행해 '휴게소 밥값' 인하를 결정했다. 이후 지난해 9월 15일 해당 TF를 해체했다.
'밥값 인하'를 담당했던 국토부 관계자는 "별도 자료를 가지고 회의를 한 것이 아니라 구두로 회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국토부는 김 전 사장의 자진사퇴 전에 이미 휴게소 TF를 해체했고 이후 구체적인 밥값 인하 방안을 내놓지 않은 것이다. 이후 1년이 지난 2023년 8월 기준 휴게소 매출 상위 10개 음식의 평균 가격은 2년 전 대비 11.2% 오른 상황이다.
'윤캠' 출신 도로공사 사장에 임명... "문 정부 인사 찍어내기 꼼수"
그 사이 도로공사 사장은 '윤석열 캠프' 출신으로 바뀌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월 13일, 함진규 전 국민의힘 의원을 도로공사 사장으로 임명했다. 함 사장은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윤석열 후보 예비캠프'의 수도권대책본부장을 맡았다. 임명 당시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결국 현 정부 입맛에 맞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지난 정부 인사를 찍어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허 의원은 "고속도로 휴게소 음식값을 인하하겠다던 원희룡 장관은 김진숙 전 사장이 물러난 뒤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며 "결국 윤석열 캠프 출신의 사람에게 자리를 주기 위해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공기업 사장을 찍어내기 위한 꼼수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한편, 김 전 사장의 사퇴에 앞서 권형택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사장도 특정 건설사의 신용등급을 정당한 사유 없이 상향했다는 이유로 국토부의 정밀감사 대상에 포함된 뒤 지난해 9월 4일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원 장관은 앞서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 및 공기업 사장들은 임기와 무관하게 정권교체에 맞춰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 4월 국회 대정부질문 당시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은) 나가야 된다고 생각한다"며 "정부의 정책 내지는 철학과 함께 가야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데 이게 안 되면 죽도 밥도 안 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