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설계 수명 만료를 눈 앞에 둔 전남 영광 한빛원전 1, 2호기의 수명연장을 위해 원전 운영사 한국수력원자력이 '방사선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영광군을 비롯한 관련 지방자치단체에 제출하자 지역사회 반발이 커지고 있다.
"호남권 주민 500만명 안전 걸린 문제, 왜 정부 맘대로 하나"
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은 11일 광주광역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원전사업자 한수원을 향해 한빛 1, 2호기 수명 연장 절차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단체는 수명연장 방침을 정한 정부를 향해서는 "주민 동의 없이 핵발전소 수명연장 일방적으로 강행한다"고 비판했다.
초안을 접수한 지자체를 향해서는 "광주·전남·전북주민 500만 명의 생명과 안전이 걸린 중차대한 문제"라며 "엉터리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주민에게 공람시키지 말고, 한수원에 즉각 반려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단체는 지난 10일 영광을 비롯한 원전 인접 지자체에 한수원이 제출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의 문제점을 다수 지적했다.
단체 측 지적과 비판에 대해 한수원 측은 일부는 사실관계가 틀렸고, 또 일부는 수명연장을 위한 절차가 1~3년 가량 걸리므로 이 과정에서 충분히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 중대사고 대비 계획 없어"
기자회견에서 단체는 우선 "초안이 제출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는 핵발전소 운영 과정 혹은 사고 등으로 인해 방사선이 주변 환경과 사람에 미치는 영향을 미리 예측하고 평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원전 사업자가 제출한 초안에는 만약의 사고를 대비한 예측 자료와 유사 시 주민 보호 대책이 포함돼야 하지만, 이번 초안에는 그런게 없다. 심각한 문제가 한두개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제출된 초안에 '원전 중대 사고를 상정·반영하되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1986년 체르노빌,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같은 중대 사고를 상정한 뒤 주민 피폭, 대피경로, 건강 영향, 사망자 규모 등을 분석해야 하는데 중대 사고는 아예 발생하지 않는 것으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은 작성됐다고 단체는 밝혔다.
원전 중대 사고가 초안에 제대로 상정되지 않다 보니, 주민대피·보호 대책 역시 크게 미흡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방사선이 부지 경계에 머물고, 방사선 주민 영향 역시 '기준치 이하로 법적 기준치를 모두 만족한다'고만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체 측은 "핵발전소 사고는 미리 준비하고 계획해도 주민 대피와 보호가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인데, 아예 준비도 계획도 없이 어떻게 그 상황을 대처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깜깜이 추진...정보 공개해야 검증할 것 아니냐"
수명연장 절차 관련 정보가 주민, 시민단체 등 지역사회에 제대로 제공되지 않고 관련 절차가 추진되고 있다는 점도 단체는 지적했다.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과 연계돼야 할 각종 문서가 심사 중에 있고, 일부는 주민 등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초안 작성 시 적용된 기술기준을 두고는 단체와 원전 측 주장이 맞섰다.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초안 작성 시 최신 기술기준을 적용하도록 관련 법령은 규정하고 있지만, 이번 초안의 경우 1990년대 한빛 5, 6호기 건설 당시 기준이 적용됐다고 단체는 주장했다.
반면 한국수력원자력 한빛본부 측은 "1990년대 기술기준이 아니라 2016년, 2019년 각각 완공된 울산 새울원전 1, 2호기 건설 당시 기술기준을 적용했다"며 "적용된 기술기준은 국내 규제기관의 현재 지침에 맞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에 제출된 초안은 규제기관에 올리기 전 주민 의견 수렴을 위한 것으로, 규제기관 제출 전과 제출 후 심사 과정에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며 "1~3년 가량 이어질 관련 절차 추진 과정에서 각계의 의견을 충실히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지자체, 절차 중단 위해선 엉터리 초안 반려해야"
한빛원전 방사능비상계획구역에 포함된 지자체는 광역지자체 2곳(전라남도, 전라북도)과 기초지자체 6곳(영광군, 함평군, 장성군, 무안군, 고창군, 부안군)이다.
이들 지자체는 한수원으로부터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초안을 접수한 지난 10일부터 10일 간 초안을 검토하고 수정·보완을 요구할 수 있다.
한빛 1, 2호기는 각각 1986년과 1987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따라 이들 원전은 40년 설계수명을 마치고 오는 2025년과 2026년에 문을 닫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설계수명 만료를 앞둔 노후원전에 대한 설비 보수와 규제기관 심사를 거쳐 수명을 10년 늘려 계속운전하는 방향으로 정부 정책이 180도 변경되면서 원전 소재 지자체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