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
요즘 대표적인 스몰토크 주제로 MBTI라는 것이 있다. '혈액형별 성격'이나 '별자리별 성격'처럼 MZ세대 사이에서 소소하게 유행처럼 번진 성격 유형 검사로 총 16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특성을 설명해준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10년 전에도 MBTI가 있었던 것 같은데 화제성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한 것 같다. 엄마도 친구들 모임에서 "그런 게 P래~" 하는 걸 보면.
우리가 MBTI를 즐기는 이유
혈액형이나 별자리와 달리 MBTI가 이토록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고 연구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혈액형이나 출생일 같이 타고난 특성만으로 성격을 규정했던 다른 성격 유형과는 달리 나름의 논리적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을 토대로 성격을 분석하는 성격 유형 검사라서 그런 것 같다(이에 대한 과학적 반론이 있기도 하지만 우선 그런 것으로 치고 이야기를 이어가보자).
처한 상황에 따라, 바뀐 가치관에 따라 매번 새로워지는 자신의 모습에 정기적으로 MBTI를 검사하기도 한다는 주변인들도 많았다. 또, 내가 나를 바라보는 MBTI와 주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MBTI가 다른 경우가 있어서 이를 비교하는 재미 때문에 MBTI를 수시로 하기도 한다고. 이런 분위기는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을 알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커져서라고 생각한다.
과거 한국은 특정한 시기, 나이에 맞춰 정해진 답을 찾아가야만 하는 사회였다. 규격에서 벗어난 삶은 주변의 눈총을 받고 이해받지 못했던 시절. 하지만 오늘날 스마트폰과 여러 매체의 발달은 다양한 삶이 존재함을 각인시켰다. 공부를 못해도,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먹고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자신만의 콘텐츠로 승부를 보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나'의 장점, 잘 하는 것, 좋아하는 것 등등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점이 모난 구석이 아니라 돈 나는 구석이 된 시대.
우린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비로소 집단적 연대만큼이나 개인 취향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 같다. 일례로 비혼을 선택한 막내삼촌은 40대가 된 지금도 누나들에게는 결혼하라는 소리를 듣지만, 그들의 자식인 우리 세대에게는 자유롭고 멋진 인생의 롤모델로 여겨지고 있다.
타인을 이해하는 훌륭한 도구
개인의 개성이 중시되는 시대, MBTI는 타인을 이해하는 훌륭한 도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모임에 잘 나오지 않거나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을 부정적으로 봤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아~ 너 I야?"라는 말 하나로 상황이 정리된다.
"I가 뭔데?"
"내향형(Introvert)을 가리키는 거야. 사람들이랑 있는 것보다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때 에너지가 충전되는 거."
I인 친구와 약속을 잡기 힘들거나, 얼굴을 자주 못 보더라도 서운해하지 않는다. 그 애는 그렇게 살아야 다음 번에 더 행복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을 테니까.
한편, 이 MBTI라는 것은 우리 집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으니. P(인식형)인 엄마와 J(판단형)인 아빠가 충돌하는 지점이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휴가나 여행 일정을 2~3주 전에는 파악해서 동선과 맛집 등을 A4용지에 뽑아두는 아빠와 달리 2~3일 전에도 갈지 말지 마음을 정해두지 않는 엄마는 함께 일정을 짤 때 종종 예민해지곤 했다.
"너희 아빤 왜 저렇게 히스테리를 부린다니?"
"엄마. 그건 엄마가 P라서 그래. 아빠는 계획을 짜는 걸 좋아하고, 그래야 안정이 되는 사람이야. 완전 대문자 J. 갈지 말지 정도만 이야기해줘도 아주 나아질 걸?"
그렇게 엄마는 아빠의 꼼꼼한 성격을 히스테리가 아니라 'J'라는 새로운 틀로 이해하게 되었다(이 사례가 친J성향의 사례로 느껴진다면, 맞다. 글쓴이가 J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은 지나친
모르는 사람과의 첫 만남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자리에서 소소한 안부인사 역할을 했던 MBTI는 의외의 곳에서도 손길을 뻗치고 있었다. 취업준비를 위해 종종 방문하는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이런 글귀가 심심찮게 보이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활동적이고 일을 계획적으로 처리하는 직원을 구하고 싶을 순 있겠으나, 어떤 자격증이나 정량적 수치가 아닌 MBTI가 '우대 사항'이 된다는 사실이 몹시 놀라웠다. 아예 MBTI 자체가 '자격 요건'인 경우도 있다.
MBTI를 자기소개서에 넣어 작성해 달라는 요구는 그나마 창의적인 발상이라고 해야 할까. MBTI 검사 결과가 제출 서류가 되는 걸 보면서 마치 MBTI가 하나의 인적성 검사처럼 변질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성격이란 옳고 그른 답이 없는 것인데도 틀에 맞춰 정답을 골라야 하는 시험처럼. 이러다 나중에는 MBTI 유형별 행동과 답변을 가르치는 학원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SNL의 <MZ오피스>에서는 기상천외하고 (나쁜 의미로)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처럼 미디어에서 그리는 MZ세대, 이른바 요즘 애들은 어딘가 상식에서 벗어나 있고 할 말은 다 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조금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MZ세대의 한복판에 있는 사람으로서 외치고 싶다. 세상엔 MZ보다 더 MZ같은 현실이 펼쳐지기도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