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새벽 배송 중이던 쿠팡 퀵플렉스 배송기사 박아무개(60)씨가 04:44경 군포시 산본동 한 빌라 4층 복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사망은 과로사일 가능성이 크고 중대산업재해로 조사해야 한다.
쿠팡 퀵플렉스 배송기사는 쿠팡 택배배송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와 위수탁 계약을 체결한 영업점(대리점) 배송업체와 다시 위수탁계약을 체결하고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근무하고 있다. 재위탁인 셈이다.
쿠팡의 배송 업무를 담당하는 배송기사에는 쿠팡에 직접 고용되어 물건을 배송하는 '쿠팡친구(쿠팡맨)'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자회사인 쿠팡CLS와 위수탁 계약을 체결한 배송업체 소속의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배송업무를 담당하는 특수고용직 '쿠팡 퀵플렉스'가 있다.
쿠팡친구 또한 모두 정규직은 아니며 정규직(계약직 2년 근무 후 전환), 계약직(1년 계약), 수습(3개월), 일용직(프리 쿠팡친구)으로 나뉘어 있다. 쿠팡은 소위 쪼개기 근로계약을 통해 노동자들을 통제해 왔다. 다만 쿠팡친구는 근로계약을 맺은 근로자 신분으로 일하기 때문에 주 52시간 상한제 등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는다. 반면 쿠팡 퀵플렉스는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일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 규제를 받지 않는다.
쿠팡은 2018년 자회사로 쿠팡CLS를 설립하고 택배 배송 사업자 허가를 받았으나 2019년 사업자 허가를 반납한 적이 있다. 이때는 쿠팡CLS와 위수탁 계약을 체결한 배송업체 소속의 쿠팡 퀵플렉스는 소수이고 대부분 쿠팡에 직접 고용된 쿠팡친구가 다수였다.
그러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 발생해 배송 주문이 폭증하기 시작하자 2021년 쿠팡은 자회사인 쿠팡CLS을 통한 택배 배송을 본격화하게 된다.
쿠팡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면서 365일 연중무휴 배송시스템과 새벽 배송을 유지하려고 배송시스템을 쿠팡친구 중심 체제에서 쿠팡 퀵플렉스 중심 체제로 전환했다. 2년여 전부터 쿠팡은 자신이 직접 고용한 쿠팡친구 1만여 명 중 3천여 명을 쿠팡CLS 직영 소속으로 전환하고, 나머지 7천여 명을 정리했다고 한다. 대신에 쿠팡CLS와 위수탁계약을 맺은 배송업체와 쿠팡 퀵플렉스를 늘려 배송 시스템을 위탁업체와 퀵플렉스 중심으로 바꿨다.
쿠팡 퀵플렉스는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3.3% 사업소득세를 내고 주 52시간 상한제의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시간제한을 받지 않고 배송 물량을 배정할 수 있다.
쿠팡 퀵플렉스의 근로 시간
쿠팡 퀵플렉스는 주간조와 야간조로 나뉜다. 주간조는 오전 8시 출근해 2시간가량 분류 작업을 하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1차 배송을 하고 들어와 다시 분류 작업을 한 후 2회전으로 오후 3시가량 배송을 나가 빠르면 오후 8시에 마치고 늦어지면 오후 10시나 11시에야 일을 마칠 수 있다고 한다. 주간조의 하루 근무 시간이 12~15시간에 달한다.
야간조는 오후 9시에 출근해 오후 10시경 배송을 나가 1차 배송을 하고 들어와 다시 분류 작업을 하고 2회전으로 오전 3시경 배송을 나가 오전 7시에 배송을 마친다고 한다. 야간조의 하루 근무 시간이 10시간에 이른다.
근무 시간 중 별도의 식사 시간은 없다. 알아서 먹어야 하는데 시간을 절약하려고 대부분 이동하면서 차 안에서 간단한 식사로 때운다고 한다. 이렇게 1주일에 6일을 일하고 단 하루를 쉬는 구조다.
뇌심혈관 질환 산재 인정기준(노동부 고시)에서는 "상병 전 개월간(4주간)의 한 주 평균근무 시간이 64시간, 상병 전 3개월간(12주간)의 한 주 평근 근무 시간이 60시간을 초과한 경우 업무상 질병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법원은 "운전 업무는 운전 중 고도의 긴장과 집중력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사고 위험에 대한 걱정 등으로 다른 직종에 비해 직무와 관련된 스트레스가 대단히 높다"고 판시하고 있다(서울고등법원 1997.4.3. 신고 96구10975판결).
쿠팡 퀵플렉스들은 평균적으로 주간조는 1주일에 72~90시간, 야간조는 60시간 일 한다는 것이다. 야간이 몸에 주는 피로도 등을 고려해 야간노동시간을 주간노동시간의 1.3배로 보는데, 그렇게 되면 야간조의 근로시간은 78시간에 이른다. 업무상 과로를 야기하는 장시간 근로가 아닐 수 없다.
물건을 배송하는 마지막 기지인 전국의 쿠팡CLS 캠프에 영업점(대리점)을 두고 영업점의 관할지역을 구역으로 나누고 나눈 구역들에 대해 수십 개의 배송업체들에 배송을 위탁하는 방식으로 배송 업무가 이루어진다.
쿠팡CLS은 1주간 수행률로 각 배송업체에 대한 업무 평가를 하고, 정해진 수행률을 충족하지 못한 업체에는 이른바 클렌징(Clensing)이라 부르는 업무 구역 회수를 하고 공개입찰에 붙여버림으로써 해당 배송업체는 계약을 해지당하고 그에 속한 퀵플렉스는 사실상 해고된다.
그 업무 수행률 기준을 애초에는 75~85%로 정했다가 현재는 95%로 높였다고 한다. 1주 7일을 100%로 잡으면 6일을 일하고 1일을 쉬는 경우 86%를 충족할 수 있다. 95%를 맞추려면 (배송기사들의 경우 1주 6일 일하고 1일을 쉬므로) 백업 기사를 두어야 가능한데, 영업점에 속한 배송업체들 중 작은 배송업체들은 몇 명 정도로 배송기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백업 기사를 두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면 배송기사들이 더 빠른 배송으로 실적을 채워야 하는 구조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수행률 기준 미달로 업무가 회수되므로, 쉴 틈 없이 주간조 하루 12시간 이상, 야간조 하루 10시간씩 뛰다시피 배송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새벽 배송 중 쓰러져 숨진 쿠팡 배송기사는 야간조에 속해 야간배송을 하던 쿠팡 퀵플렉스다. 하루 10시간, 1주 60시간의 야간노동, 야간노동의 강도를 고려할 때 주간 근무 78시간에 해당하는 시간을 매주 근무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미 과로사 기준을 초과한 노동을 일상적으로 계속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주간조이든 야간조이든 쿠팡 퀵플렉스들의 근무 시간은 모두 과로사 기준을 초과하고 있다. 이 상태에서 박씨는 새벽 배송 중 한 빌라 4층 복도에서 쓰러진 것이다. 택배노조는 박씨의 죽음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쿠팡 배송시스템을 고려할 때 필연적인 사고라고 하고 있다.
적반하장격의 쿠팡 주장
그럼에도 쿠팡은 형식적인 법 논리를 이용해 오히려 쿠팡 책임을 주장하는 언론과 노조를 겁박하고 있다.
쿠팡은 자신의 '쿠팡 뉴스룸'에서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을 중단해 주기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아래와 같은 글을 올리고 기자들에게는 일일이 문자를 발송했다.
고인은 쿠팡 근로자가 아닌 군포시 소재 전문배송 업체 A물산 소속 개인사업자로, 경찰이 현재 사망 원인에 대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쿠팡 근로자가 아님에도, 택배노조는 마치 당사 소속 배송기사가 과로사한 것처럼 허위주장하고 있습니다. A물산에 따르면 근무기간 동안 고인은 실제 주평균 52시간 일한 것으로 확인되며, 평균 배송 물량 또한 통상적인 수준을 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사실 여부 확인도 이루어지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보도되지 않도록 유의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쿠팡의 주장은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면피성 겁박으로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 쿠팡 퀵플렉스와 쿠팡친구가 하는 일은 다르지 않다. 각 캠프에서 쿠팡이 제공한 차량에 물건을 싣고 소비자 집까지 배송하는 일이다. 예전에 쿠팡친구가 하던 일을 이제는 주로 쿠팡 퀵플렉스들이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쿠팡 퀵플렉스는 자유롭게 영업하며 스스로 사업을 운영하는 자가 아니라 전적으로 쿠팡CLS가 정해주는 배송 물량에 구속되어 배달 노동을 제공하는 자일 뿐이다. 그 실질은 개인사업자가 아니라 근로자이다. 쿠팡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배송업체를 끼고 근로자를 개인사업자로 둔갑시켜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고인이 쿠팡 근로자가 아니라 전문배송업체 A물산 소속 개인사업자라는 주장은 형식적으로는 맞을 수 있으나 실질은 고인이 쿠팡의 물건을 배송하는 근로자라는 점에서 도급인 쿠팡에 책임이 있다(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에서는 도급인의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둘째, 백번 양보하여 쿠팡이 주장하는 것처럼 고인이 근로자가 아니라 배송업체 소속 개인사업자라고 하더라도 책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77조 제1항에서는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근로자와 유사하게 노무를 제공하여 업무상의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있음에도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지 아니하는 사람으로서 다음 각호의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사람(이하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 한다)의 노무를 제공받는 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하여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산업안전보건법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일명 특수고용직노동자)로부터 노무를 제공받는 자에 대해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하여 필요한 보건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쿠팡 퀵플렉스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에서 정한 택배원으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다. 그러므로 이들로부터 노무를 제공받는 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하여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여야 한다.
쿠팡 퀵플렉스로부터 실질적으로 노무를 제공받는 자(중간인력관리업체에 불과한 배송업체가 아니라)는 쿠팡CLS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쿠팡CLS는 쿠팡 퀵플렉스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하여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여야 한다. 그러나 쿠팡CLS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배송업체에 불리한 계약과 클렌징 제도 등을 통해 과로사 기준을 초과하는 배송업무를 부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필요한 보건조치를 하여야 하는 의무를 위반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셋째, 쿠팡 퀵플렉스 배송기사의 사망이 업무상 과로로 인한 사망일 경우 중대산업재해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대검찰청 중대재해처벌법 벌칙해설에서도 "과중한 업무나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뇌심혈관계 질환 등이 발생하여 종사자가 사망에 이른 경우, 작업 또는 그 밖의 업무의 내용과 방식에 유해·위험 요인이 원인이 된 것이라면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산업재해에 해당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중대재해처벌법상의 중대산업재해에도 해당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34쪽)라고 적시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안전보건 확보의무로서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종사자의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 및 규모 등을 고려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법 제4조제1항)고 정하고 있다.
위 대검찰청 벌칙해설에서 경영책임자로서 과로를 예방하기 위해 경영적 차원에서 인력·예산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것은 전형적인 안전보건 확보의무의 내용으로 포함될 수 있다(34쪽 각주65)고 적시하고 있다. 그리고 중대재해처벌법은 종사자에는 "도급, 용역, 위탁 등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그 사업의 수행을 위하여 대가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자"가 포함되며, 수급인의 근로자는 물론이고 수급인의 노무제공자도 포함된다고 정의하고 있다(법 제2조제7호).
따라서 쿠팡CLS 경영책임자는 쿠팡 퀵플렉스의 안전·보건상 유해 또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 사업 또는 사업장의 특성 및 규모 등을 고려하여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지게 되므로, 수사당국은 이번 박아무개씨의 사망과 관련하여 쿠팡CLS의 경영책임자가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이행하였는지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수사해야 한다.
고인의 사인과 장시간 야간노동의 인과관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쿠팡 퀵플렉스 배송기사 박아무개씨를 부검한 결과 박씨의 심장이 비대져 있었다는 부검 구두 소견을 경찰에 전달한 것으로 보도됐다. 국과수는 심근경색이 꾸준히 진행됐고, 혈관이 전반적으로 막혀 있던 점, 심장이 비대해진 상태인 점(박씨의 심장은 300그램 정도인 일반인의 2배가 넘는 800그램 정도)을 확인해 전달했다고 되어 있는 바, 심근경색으로 인해 심장이 비대해져왔음을 의미한다.
산업재해보상법에서는 업무상과로와 관련이 있는 뇌심혈관 질환을 명시하고 있는데, 심근경색은 대표적인 뇌심혈관 질환이다. 따라서 쿠팡 퀵플렉스의 장시간 야간노동과 심근경색 사이의 인과관계를 조사해야 한다.
장시간 야간노동과 심근경색의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면, 쿠팡CLS은 노무를 제공받는 자로서 노무제공자(쿠팡 퀵플렉스)의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보건조치의무(산업안전보건법)와 도급인(위탁자)으로서 종사자의 보건상 유해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보건 확보의무(중대재해처벌법)를 위반했을 가능성이 크다.
산재 해당 여부를 넘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철저히 수사해야 하는 이유이다.
[관련 기사]
[단독] '퀵플렉스 사망' 관련 없다는 쿠팡, 매일 아침 업무지시했다 https://omn.kr/260pr
'김범석·강한승 나와라'... 쿠팡 퀵플렉서 사망, 엄중하게 보는 국회 https://omn.kr/260l4
[단독] "싫으면 나가라" 쿠팡 대리점, 일방적 택배 수수료 인상 https://omn.kr/25x5n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변호사로 쿠팡대책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