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마다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 무기박람회인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23(서울 ADEX 2023)가 10월 17일부터 22일까지 개최됩니다. 민주 시위를 탄압하고 국내외 분쟁에서 민간인을 학살하는 국가들도 참가합니다. 2013년부터 무기박람회 반대 활동을 해왔으며, 2023년에는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 전쟁없는세상, 참여연대, 피스모모, 한베평화재단이 함께 하고 있는 '아덱스저항행동'은 전 세계 무기 산업이 초래하는 비윤리성과 인명 살상, 군비경쟁의 문제점 등을 짚어보는 글 여덟 편을 연재합니다.[편집자말] |
"베트남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 경제가 살아났습니다." - 2017년 현충일 문재인 대통령 추념사에서
올해 1월, 베트남 국영방송 브이티브이(VTV)에서는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의 문제적 발언이 다시금 전파를 탔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 응우옌티탄의 법정 투쟁기를 다룬 다큐 <평화로 가는 길>의 한 장면이었다. 2016년부터 한국 사회의 베트남전쟁 관련 문제를 지켜봤던 도안홍레 감독은 대한민국이 베트남전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2017년의 그 사건을 선택했다. 나 또한 다큐를 보면서 대통령의 발언에 담긴 한국 사회의 얼굴을 다시금 생각했다.
당시 추념사에는 "폭염과 정글 속에서 역경을 딛고 묵묵히 임무를 수행했고, 그것이 애국이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실용주의 외교를 중시하는 베트남 정부가 이례적으로 강한 유감을 표명했을 정도의 문제적 발언이었고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듬해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을 방문한 정상회담 자리에서 "불행한 역사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라고 말했다. 이 유감 표명은 대통령의 강한 의지로 추진된 것이라 전해진다. 그만큼 문재인 대통령은 베트남전 과거사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2017년 현충일 추념사에서는 그러한 발언을 했던 것일까. 베트남전 참전군인의 희생을 논하는 과정에서 베트남의 입장을 간과한 외교적 실수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당시 발언은 단순히 대통령, 청와대 그리고 정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었다. 추념사의 몇 문장 속에는 베트남전쟁에 대한 한국 사회의 윤리 의식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었다. 베트남전쟁은 그야말로 명분 없는 전쟁이어서 '인류의 양심을 시험한 전쟁', '더러운 전쟁'으로 불렸다.
때문에 한국 정부는 베트남전 참전군인들의 희생에 대해 이 전쟁이 갖는 본연의 의미를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문 대통령은 베트남전쟁 특수를 참전군인들의 희생과 결부시켜 조국 경제와 애국을 이야기한 듯하다.
여기서 정말 주목해야 할 점은 베트남의 입장이 아니라 추념사에 담긴 베트남전쟁에 대한 한국 사회 내부의 논리다. 여기에는 경제성장 만능주의가 숨어있다. 베트남전쟁이 야기한 수많은 문제와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경제가 발전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나라, 참전군인의 목숨값과 그들에게 남겨진 상처를 어떤 정신적 가치나 명분이 아닌 경제성장으로 치하할 수 있는 논리가 가능한 곳이 바로 대한민국인 것이다.
2024년은 베트남전 한국군 파병 60주기가 되는 해이다. 베트남전쟁은 한국 사회에 '잊힌 전쟁'이었고 1999년부터는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문제가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해 올해 2월에는 피해자 응우옌티탄이 국가배상소송 1심에서 승소를 거둬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20년 넘게 베트남전쟁에 대한 반성과 성찰, 진상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주요 이슈들이 민간인학살 등의 전쟁범죄에 집중된 탓일까. 500조에 달한다는 베트남전쟁 특수의 수혜자인 수많은 국민들의 책임과 도덕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성찰은 깊지 않고 그것이 2017년 대통령의 추념사에도 반영된 것이 아니었을까.
무기 수출에 당당한 대한민국, 그 기원을 생각하다
2022년 기준 한국은 무기수출 세계 8위를 달성했다. 이른바 K-방산은 최근 10년 사이에 급성장하여 문재인 정권과 윤석열 정권을 아우르며 외화를 벌어들이는 주요 국가 산업으로 성장했고 국민들에게 선전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이름으로 수출된 무기들은 어디서 어떻게 사용되고 있을까. 인도네시아는 한국이 가장 많은 무기를 수출하는 국가이며, 웨스트파푸아의 분쟁지역에 현대, 기아, 한화의 이름을 단 한국산 무기들이 사용되고 있다. 1, 2차 세계대전에 무기를 팔며 경제 호황을 누린 미국, 한국전쟁을 기회로 회생한 일본, 그리고 베트남전쟁 특수를 경험한 한국은 OECD 국가의 반열에 올라선 뒤에도 K-방산을 당당히 선전하며 전쟁을 통한 외화벌이를 자랑스러워한다.
전쟁이 없는 상황에서 가성비 높은 한국산 무기를 구매해 자국의 국방을 든든히 하는데 만족한 나라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그 나라의 진정한 평화에 기여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주변국가들과의 군비 경쟁을 초래하고 전쟁 위기 조성에 기여한 것이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군수산업의 급성장을 용인하고 국가적 선전을 허용하는 한국 사회의 무감증이다. 기후 문제를 보면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소비자들에게 기후 악당으로 비치지 않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기업들이 미래 비전과 사업 계획을 수정하고 있으며 삼성물산의 경우는 2020년에 석탄 관련 신규 투자와 사업을 전면 중단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군수산업과 무기 수출 문제는 그렇지 않다. 일찍이 한국의 군수산업은 자국의 안보를 위한 무기 개발과 생산의 수준을 넘어서 그야말로 기업들에 의한, 기업들을 위한 산업이 되었다. 무기 수출을 통한 군수산업은 다른 나라의 분쟁과 전쟁 위기를 수요로 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비판의 소지가 크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의 없어 대기업의 중공업 계열사들이 아무런 이미지 타격 없이 무기의 개발과 수출에 열을 올렸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K-방산이라 칭하며 국가 비전 사업으로 선전까지 한다. 어째서 군수사업과 무기 수출 문제는 한국 시민들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할까.
물론 군수산업과 무기 수출에 대한 무감증은 이 분야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미국, 영국, 독일 사회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보이는 무기 수출에 대한 노골적인 자화자찬은 그 정도가 심각하다. 장기화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속에서 인접국인 폴란드가 높아진 위기감 속에서 한국의 무기를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민들의 눈물 그리고 유럽인들의 불안과 공포 속에서 대한민국의 방산업체들이 쾌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이러한 부도덕한 무기 장사에 아무런 비판적 여론이 없는 것일까.
60년 전 자국의 청년들을 머나먼 나라의 명분 없는 전쟁에 파병해 경제 성장을 이룩했지만, 이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부족했던 대한민국은 또다시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국제적 전쟁 위기 속에서 세계 무기 시장의 거상이 되어버렸다. 군수산업에 무비판적인 이유를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러한 원인의 기원에 베트남전쟁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국 사회가 베트남전쟁을 철저하게 반성했더라면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의 해외 파병의 역사를 이어가지 않았을 것이고, 다른 나라의 전쟁을 기회로 외화를 벌고 이를 자랑스러워하는 정도가 그나마 덜하지는 않았을까. 자국민을 파병해 돈을 번 것이 부끄럽지 않은 나라이니 무기 수출로 인한 외화벌이에 열광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자조를 해야할 상황이다.
양지로 나온 무기, 최대 방산 전시회 아덱스가 창피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황석영은 베트남전쟁에 참전했고 이를 바탕으로 장편소설 <무기의 그늘>이라는 역작을 남겼다. 리얼리즘의 대가인 황석영은 포탄이 작렬하는 전투 현장이 아닌 PX를 배경으로 한 베트남전쟁 당시의 블랙마켓을 소설의 중심 이야기로 다루었다. 제목에서도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작가는 무기의 그늘 속에서 벌어지는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과 인간의 탐욕을 폭로했고, 이것을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한국 사회가 성찰해야 할 지점으로 한국 문학사에 남겨놓았다.
베트남전쟁 당시에는 그늘에 머물러 있던 무기와 자본주의의 야욕이 이제는 양지로 나와 엄청난 규모의 전시회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의 여러 방산 전시회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아덱스다. 10월 16일부터 시작된 2023년 아덱스 전시회에는 35개국의 550개 업체가 참여했다.
2년 전과 비교할 때 참가국·업체 규모가 20% 늘었고, 실내 전시관 규모도 17% 확대되었으며 비즈니스 관련 상담액도 20억 달러가 증가해 250억 달러(약 33조 원)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아덱스는 단순한 무기 거래 시장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군수산업을 선전하고 당위성을 전파하는 장소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아덱스에서는 일반인의 방문을 허용하는 퍼블릭 데이도 이틀간 진행되는데 올해 전시회의 총 방문객이 무려 29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주최 측은 밝혔다.
창피하다. 아덱스에 전시된 무기들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거나 전쟁 위기를 품고 있는 지역의 어딘가로 팔려 가길 노골적으로 희망하고 있는 전쟁 자본주의의 얼굴들이다. 그늘에서 양지로 너무도 당당히 나온 무기들의 축제에 무감한 한국 사회가 과연 인권과 평화를 중시하는 나라라 할 수 있을까.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으로 전시된 무기 앞에서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경제성장의 이름으로 긍정되는 방위산업, 군수산업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전쟁의 고통과 전쟁 위기로 돈을 벌어 부유해진 나라는 결코 평화로울 수 없다. 한국이 베트남전쟁으로 가난에서는 벗어났을지 모르나 그로 인한 수많은 불행과 죄의식을 지금까지도 끌어안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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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권현우 한베평화재단 평화활동가이며, 이 글은 단체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