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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치료하는 업은 소아과 의사와 가장 비슷하다는 말을 듣는다. 어린 아이가 자신이 어디가 아픈지 표현할 수 없는 점이 말 못 하는 동물과 비슷하다는 점에서 상당 부분 수긍이 간다. 통증이 심한 말이 온몸으로 아픈 것을 표현하며 병원에 내원했을 때는 어쩐지 마구 울기만 하는 어린아이 같기도 하다.

말이 내가 지금 어디가 아픈지 딱 꼬집어서 설명해 주면 정말 좋으련만 현실은 그럴 리 없으니 나는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하나씩 제거해 가며 찾아갈 수밖에 없다. 말의 신체 증상을 살피고 여러 가지 진단 장비를 동원해 문제가 있는 곳을 찾아내야 한다.
 
말 가을의 말 친구들
가을의 말 친구들 ⓒ 김아람
 
말과의 소통

하지만 아무리 탐색해 보아도 원인을 찾지 못할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마치 열이 나는 아기에게 일단 해열제를 먼저 주고 원인을 찾아가듯 증상에 대한 치료를 먼저 서두르고 다시금 다각도로 원인을 찾아 헤맨다.

이때 나는 동물과 완벽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하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와 당장이라도 연락을 하고 싶은 심정이 된다. 아니, 어쩌면 답답한 것은 동물일지도 모른다. "이 양반아. 나는 지금 허리가 아파서 움직이기 싫은데, 왜 자꾸 뱃속만 쳐다보고 있는 거야?"라며 엄한 곳을 스캔하고 있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볼지도 모른다.

한때 나는 오만가지
케이스에 대한 증상을 백과사전처럼 내 머릿속에 밀어 넣는 것이 까마득해서, 동물 언어를 번역하는 걸 배우는 게 더 빠르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쉽게도 나는 영험한 해석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임을 깨닫고, 그럴 시간에 공부나 더 하자며 책이나 다시 뒤져보게 되었지만 말이다.

얼마 전 온몸이 회색빛인 날렵한 1세 어린 말이 내원했다. 주인은 초지에 방목되어 있는 말에게 밥을 주러 갔더니 말이 밥을 먹으러 달려왔단다. 그런데 밥을 먹는 앞모습만 볼 때는 몰랐는데 말이 옆으로 돌아서니 옆구리가 전부 찢어져 있었고 주인은 기겁을 해서 병원에 데려왔단다.
 
망아지 입원한 망아지
망아지입원한 망아지 ⓒ 김아람
 
병원에 왔을 때 말은 옆구리 절반 이상의 넓은 크기로 근육이 찢어져 있었다. 다행히 큰 출혈은 없었지만 갈비뼈가 노출될 정도로 찢어진 상태가 몹시 심각했다. 호러 영화가 따로 없었다. 거기에 다리와 눈꺼풀 등 다른 곳까지 크고 작게 추가적으로 찢어진 부위가 보였다. 회색빛 털을 가진 말이어서 시각적으로도 자극적인 상황이었다.

다들 너무 놀라 있는데 태연한 건 크게 통증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말이었다. 응급 봉합 수술을 하면서, 도대체 어쩌다 이렇게 다치게 된 건지 너무나 궁금했다. 주인은 아무리 초지를 살펴 보아도 날카로운 것이 없었다고 했다. 말에게 통역기를 대서 묻고 싶었다.

"너,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다쳐서 온거야? 말아. 말을 좀 해봐라!" 당연히 나보다 주인이 원인을 훨씬 더 샅샅이 찾고 이유가 더 궁금할 것이기에, 주인이 모르면 나도 알 방법은 없다. 비밀은 말 본인만 알고 있다.

이런 일은 참 비일비재하다. 말이 아프기 시작한 시점을 추정할 때는 훨씬 더 오류가 커진다. 소아과 의사가 언제부터 아이가 힘이 없는지 물어봤을 때 사실 그것은 보호자가 어느 시점에 이상 징후를 발견했는지에 따라 대답이 다른 것처럼, 동물의 진료 역시 마찬가지다.

보호자는 분명히 오늘 아침부터 말이 갑자기 배를 아파했다고 하는데, 사실 훨씬 전부터 아팠으나 인식을 못했을 수도 있다. 당연히 말로 표현을 못 하니깐 알 도리가 없겠지만, 내 생각보다 그 범주는 아주 크다는 것을 요즘 점점 더 깨닫고 있다. 왜냐하면 말은 집 밖에서 살기 때문에 사람과 항상 함께 있지 않고, 많은 시간 동안 스스로 풀을 뜯어 먹고 가만히 있는 시간이 많기에 늘상 살펴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2차 말 전문 동물병원인 우리 병원 입원실은 상황이 다르다. 여러가지 질환으로 집중 관리를 요하는 말들만 입원해 있는 중환자실과 다름 없기에 이곳은 면밀한 관찰을 요한다. 분명 낮에는 펄쩍펄쩍 뛰며 활력이 넘쳤는데, 오후가 되니 누워서 헐떡거리는 상황도 흔하다. 그래서 이곳은 지속적인 체크와 관찰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입원 말을 관리하는 실장님은 언제 똥오줌을 쌌고, 언제 투약을 했고, 어느정도 먹었는지 꼼꼼히 기록해 주신다. 그 기록은 시간을 들여서 살펴봐야만 알 수 있는 사실이기에, 나는 내 생각보다 그 기록을 더 신뢰한다.

아픈 말이 일주일 이상 입원하게 되면 그때 즈음 우리 입원말 관리 실장님은 나보다 훨씬 더 말의 상태를 자세히 표현해 준다. 가령 '어제보다 약간 활력이 줄은 것 같아요' 같은 말을 하는데, 물론 나도 신체수치를 평가하며 객관적으로 확인하기는 하지만, 실장님의 말이 단서를 빨리 찾게 해 주는데 정말 큰 도움을 준다.
 
동물병원 입원실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망아지와 어미말
동물병원 입원실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망아지와 어미말 ⓒ 김아람
 
점점 시간을 가지고 말을 이해하다 보면, 결국 더 자주 오래 보아만 알 수 있는 모든 정보와 상황이 누적이 되어서 말 못하는 말이 하고 싶은 말을 드디어 이해할 수 있는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다. 그렇게 관리자와 수의사의 정보가 합해지면, 결국 환자 각각에 대한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치가 점점 뚜렷하게 만들어진다.

그리고 입원 일수가 길어질수록 개체에 대한 이해는 두터워지며 말이 평소와 다를 때를 조금 더 세세하게 감지하기 쉽다. 비법은 딱히 없다. 그저 시간과 관심이다. 그 경지의 어느 시점이 쭉 이어지면, 어쩌면 정말 내가 동물의 언어를 이해하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입문 자격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말 못하는 어린 아이와 동물이기에, 우리는 이렇게 많은 시간을 쏟아 관찰하며 조금씩 그들의 행동으로 그들만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범위를 넓혀간다.

인간의 소통

반면에, 사람과 사람은 언어로 자신의 상황을 충분히 표현하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래서 굳이 시간을 쏟아 가면서 어린 아이 보듯이 상대의 행동을 애쓰면서 관찰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때는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동물과 사람의 소통보다도 훨씬 어려운 것 같다.

"저 사람이 왜 화가 났는지, 왜 저렇게 아무 말도 안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라는 말을 누군가 성토한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본인도 안다. 그건 사실 '나는 저 사람을 이해하고 싶지 않아. 내가 옳고 저 사람이 틀렸어'라는 숨겨진 방패막을 가진 말이라는 걸. 때로는 속으로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겉으로는 분노와 짜증을 표출하며 벽을 쳐서 들어오지 못하게도 한다.

그렇게 사람은 서로간의 상처를 주고 받아 가면서, 언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솔직히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러다 보면 소통은 난항 속으로 빠진다. 그 와중에 누가 더 사랑하는가, 누가 더 서운한가 등의 감정이 얽혀버리면 결국 온전한 관심을 주는 동력까지 잃게 되기도 한다.  

어느날 문득, 언어로 표현하기를 꺼리고 표현하는 법도 모르는 그 '사람'이 어린 망아지같아 보여서 그 마음이 갑자기 궁금한 날이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타인의 모든 행동 하나하나, 어제와 오늘의 변화, 표정의 변화를 마치 중환자실의 망아지를 보는 것처럼 살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타인에 대한 내 선입견은 철저히 배제하고, 그저 나는 '휴먼 커뮤니케이터' 직업인이며 '나의 목표는 저 사람의 행동 언어를 해석해 보는 것이다'라고 설정해 보는 것이다.

우리는 이때 모든 촉각을 열어봐야 한다. 우선 나의 시간과 관심을 그에게 내어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내 부정적 선입견까지 걸러내야 하는 사전 작업도 거쳐야 한다. 당연히 어렵다. 환상은 없다.

그렇게 나의 모든 부정의 경계를 풀고 순수한 어린 아이와 동물을 대하듯이 그저 솔직하게 감각을 열면, 정말 디테일한 몰랐던 행동이 눈에 들어오며 그 숨겨진 속살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많은 시간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고 관심을 두고 시간을 내어 그저 상대만의 행동 언어를 들어나 보는 것이다.

처음에는 하고 싶지 않겠지만, 점점 익숙하고 쌓이다 보면 어느새 '어라, 저 사람이 어제보다 좀 걸음이 무거워 보이네?'라는 것까지 감지할 수도 있다. 거기서 소통의 싹이 시작된다.

#말#동물병원#소통#동물#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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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은 제주도에 사는 말수의사입니다. 사람보다 말을 더 사랑하는 이유를 글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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