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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 1004는 날개 달린 천사다. 신안군은 천사 조각상 1004개를 세우고 있다. 섬 하나에 천사가 하나다. 그 섬들에 가면 생명이 꿈틀대고 역사가 흐르며 자연이 숨 쉬고 낭만이 넘실댄다. 미래의 역사·문화·환경 자원으로 각광 받는 신안 1004섬. 그 매력을 새롭게 만나는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와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매주 1회 집필한다.[기자말]
영산도 선착장에 내리면 마을 오른쪽에 여인이 누워 있는 형상의 산세(山勢)가 눈에 들어온다. 자연이 조성한 거대한 조각상이다. 종일 따가운 햇볕을 쪼인다고 해서 '덴볕산'이란 이름이 붙었다.

영산 마을은 바다가 육지 속으로 움푹 파고 들어온 만(灣)에 형성됐다. 영산도의 서남쪽은 흑산도가 방파제 노릇을 해 경사가 완만하고 초목이 무성하게 자란다. 그러나 동북쪽은 수억 년 동안 대양에서 밀려오는 거센 파도에 깎인 해식애(海蝕崖)가 발달해 '작은 홍도'라 불린다.
 
 이재호 화백이 재능기부를 한 벽화가 마을을 장식하고 있다.
이재호 화백이 재능기부를 한 벽화가 마을을 장식하고 있다. ⓒ 신안군
 
흑산도 서쪽에는 홍도 장도 대둔도 다물도가 있지만 영산도는 흑산도 동쪽에 혼자 떨어져 있다. 목포에서 오는 쾌속선 도착 시간에 맞추어 종선(從船)이 하루에 한 번 흑산도~영산도를 오가는 교통의 오지다. 운항시간은 10분.

영산도는 영광스런 3관왕이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신안-다도해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지역에 2013년엔 환경부 자연생태 우수마을로 지정됐다. 섬의 황금기에는 영산 마을과 액기미 마을에 90가구 400여 명이 거주했으나 섬 인구가 감소하면서 액기미 마을은 무주공산이 됐고 영산 마을에 14가구 20명이 옹기종기 산다. 보건소와 파출소, 발전소 직원을 합하면 29명. 자칫하다간 공공기관 근무자가 마을 주민보다 많아질 판이다.
   
영산도는 원래 국립공원 해제구역에 들어갔으나 주민들의 합의로 2012년 국립공원으로 남았다. 그래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섬의 우수한 자연생태와 고유문화를 살려 주민들에게 먹고 살 거리를 만들어주는 명품마을이 됐다. 명품마을은 진도군 관매도, 신안군 영산도를 포함해 지금까지 16개 섬이 선정됐다.

영산도 관광에서 영산 8경을 둘러보는 선상유람을 빼놓을 수 없다. 육지에서는 더위가 펄펄 끓는 여름 한낮인데도 바다로 나오면 서늘하다. 최성광 영산도명품마을위원장은 영산도를 찾아온 지질학자들이 영산도 해식애가 17억 년 전에 형성됐다는 조사결과를 알려줬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외아들 이름을 바다(20)라고 지을 만큼 영산도 바다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이다. 목포에서 직장에 다니는 바다는 주말에는 영산도에서 바다 낚시를 한다.
  
 뒷산 탐방로에서 바라본 영산마을 전경.
뒷산 탐방로에서 바라본 영산마을 전경. ⓒ 신안군
 
액기미는 주민들이 살지 않는 빈 마을이다. 액기미는 액운을 막는다는 뜻이다. 한창때 10여 가구가 살았던 마을에 인적은 보이지 않고 돌담과 우물, 냇물을 건너는 조그만 다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해변이 아름답고 조용하다.

부엉이 바위는 앉아서 잠을 자던 부엉이가 태풍이 오면 날아갔다가 태풍이 잦아들면 다시 찾아온다는 전설이 서린 바위다.

선상유람 코스의 절경(絶景)은 코끼리 바위. 파도가 몰아쳐 절벽에 구멍을 뚫어 섬과 바다를 잇는 아치형 돌문이 생겼다. 코끼리가 기다란 코를 바다에 처박은 형상이다. 석주대문(石柱大門)이라고도 불린다. 풍랑이 몰아칠 때 중국 배들이 석주대문 안으로 대피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홍도 울릉도 독도에도 코끼리 바위가 있지만 영산도 코끼리 바위가 가장 우람하다.

유람선 타고 섬 돌며 절경 감상

바위 구멍에서 코 고는 것 같은 바람 소리가 나는 비성석굴(鼻聲石窟)도 있다. 절벽 밑에 콧구멍처럼 굴이 두 개 뚫려 있다. 이 두 구멍이 바닷물을 끌어들였다가 뿜어내면 바람이 드센 날에는 물대포가 30m까지 나간다. 만조에는 콧구멍 바위가 물속으로 숨어버린다.

파수(把守) 바위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큰 동굴과 먹을 물이 고여 있다. 굴 입구에서 비금도 도초도가 바라다보인다. 일제 강점기에는 동굴 안에서 영산도 징용 기피자들이 숨어 살았다. 목포에서 출발해 비금 도초를 거쳐 오는 징용선이 다가오는지를 파수 보던 곳이다.

비가 올 때만 폭포가 생기는 비류 폭포, 할아버지 바위, 사자 바위, 거북이 바위, 토끼 바위도 영산도 해상투어의 볼거리.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코끼리 바위.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코끼리 바위. ⓒ 신안군

작은 새끼섬에 있는 영산등대는 앙증맞다. 섬의 아낙네들이 바구니에 돌을 담아 날라 등대를 세웠다.

영산도에서 인기를 끄는 해물은 거북손과 숭어. <삼시세끼> 같은 TV 예능 프로에 거북손이 소개되면서 일부 섬에서는 거북손 씨가 말랐다. 영산도는 외지 사람들에게 팔지 않고 영산도를 찾은 사람에게만 내놓는다.

영산도 거북손은 오래 자랄 때까지 기다렸다가 따기 때문에 크고 맛있다. 영산도의 유일한 식당 부뚜막에서 회정식을 시키면 거북손과 홍합이 서비스로 나온다. 서울에서는 구경하기도 힘든 자연산 회정식이 1인당 3만 원. 어부들이 그날 잡은 생선으로 회를 뜨니 횟감은 가격과 관계없이 운수 소관이다.

거북손은 갑각류 절지동물로 따개비의 사촌. 얼핏 보아서는 식물인지 동물인지 구분이 어렵다. 따개비처럼 거북손도 수십 개가 한데 붙어산다. 파도에 쓸려나가지 않으려고 여럿이 힘을 모아 저항하는 모양새다. 약전은 <자산어보>에서 5개 봉우리에 뿌리가 달린 모양의 거북손을 오봉호(五峯蠔)라고 이름 짓고 자세한 관찰기를 남겼다.

거북손 알에서 깨어난 노플리우즈라는 유생이 부유하다가 바위벽에 딱 붙어 성체로 자란다. 거북손을 맨손으로는 딸 수 없다. 바위에 붙은 부분을 칼끝으로 파내야 한다. 아래쪽은 중국집에서 나오는 리치 과일처럼 까면 불그스름한 속살이 드러난다. 거북손을 까먹을 때 주의하지 않으면 맞은편 사람한테 물총이 날아간다. 오봉 양쪽을 엄지와 검지로 세게 누르면 깨지면서 완전한 속살을 내놓는다.

거북손은 특별한 요리법이 필요 없고 물에 살짝 데치면 된다. 즙에서 바다 냄새가 물씬 난다. 쫀득거리는 고기 자체가 조미료다. 약간의 간장 양념과 참기름을 무쳐 먹어도 좋다. 거북손을 우려낸 국물로 라면을 끓이면 천하별미. 머리 부분이 거북의 손을 닮아 거북손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거북손이 절벽에 달라 붙어 있다.
플랑크톤을 먹고 사는 거북손이 절벽에 달라 붙어 있다. ⓒ 신안군
 
 영산도 부뚜막 식당에서 내놓는 거북손.
영산도 부뚜막 식당에서 내놓는 거북손. ⓒ 황호택
  
자연산 홍합은 주문이 많이 들어 오지만 봄 2주, 가을 2주만 채취한다. 홍합자원을 보호하고 제값을 받기 위해서다. 자연산과 양식은 한눈에 구분이 된다. 양식 홍합은 껍질이 깨끗하고 자연산 홍합에는 해조류의 때가 끼어 벗겨지지 않는다.

6월 말부터 8월 초까지 채취하는 미역은 파도가 셀수록 품질이 좋다. 영산도의 여인들은 거친 파도를 뚫고 아슬아슬한 갯바위로 올라가 낫으로 미역을 채취한다. 봄철이면 영산도 해변에 '물 반 고기 반' 숭어 떼가 몰려온다. 숭어는 추운 겨울에는 깊은 바다로 내려갔다가 봄이 되면 떼를 지어 강 하구나 연안으로 몰려와 산란을 한다. 봄철 영산도에는 숭어 관광객도 많다.
  
 숭어는 회를 떠 먹어도 좋고 구워 먹어도 맛있다.
숭어는 회를 떠 먹어도 좋고 구워 먹어도 맛있다. ⓒ gettyimagesBANK
 
영산포와 영산강이 영산도에서 유래된 사연

고려 충렬왕 시절 경주 최씨 최국희가 영산도에 들어온 입도조(入島祖). 영산도는 흑산도 인근에 사는 최씨들의 발원지다. 마을 위쪽에 최(崔)씨 제유각(祭遺閣)이 있다.

영산강과 나주 영산포라는 이름은 영산도에서 유래됐다. 조선시대 왜구들이 발호해 식량을 털어가자 섬을 비워 무인도를 만들었다. 이때 나주로 이주한 영산도 주민들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나주평야를 흐르는 강을 영산강, 나주에 있는 포구를 영산포라고 불렀다.

영산 마을을 둘러보는 데 두 시간 정도 걸린다. 채마밭, 캠핑장, 원두막, 교회… 폐가를 리모델링한 '전교1등 도서관'은 이름이 근사하다. 영산분교의 학생이 한두 명뿐이니 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은 모두 전학년 1등 아니면 전교 1등이었다.

영산분교는 학생 수가 자꾸 줄어들다가 2020년 마지막 학생이 졸업하면서 폐교의 운명을 맞았다. 3년째 학생이 없는 학교 운동장에서는 잡초가 자라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죽은 나무나 바위에 붙어 자라는 멸종위기종 2급인 석곡 군락지가 있다. 키는 20cm 정도이고 잎은 어긋난다. 5~6월에 흰색이나 연분홍색의 꽃이 원줄기 끝에 핀다. 마을 주민들이 집에서 소장하는 석곡을 모아 50평가량 조성했다.
화가 이재호 씨가 재능기부를 해 마을의 낡은 시멘트 벽 담장에 벽화를 그렸다. 작은 골목길로 찾아다니며 숨은그림찾기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흑산도에서 가장 멋진 집은 백년(百年)가옥. 중장기 체류를 희망하는 외지인에겐 임대를 한다. 구달홍씨가 1905년에 태어나 94세인 1999년까지 거주했던 집이다. 구씨는 침술이 뛰어났고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희귀종 난 석곡이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모습.
희귀종 난 석곡이 바위에 뿌리를 박고 자라는 모습. ⓒ 신안군
   
영산도 주민들은 바닷가 절벽 틈에서 자라는 소나무들이 죽어가는 것을 가장 안타까워 한다. 영산팔경(永山八景) 중 으뜸인 당산창송(堂山蒼松)의 소나무들이 솔껍질깍지벌레에 시달리고 있다. 당산 일대에 있는 푸른 소나무 숲은 영산마을의 얼굴.

죽은 나무를 자르면 흰 벌레가 기어 나왔다. 암컷 유충이 소나무 가지에 침을 꽂아 수액을 빨아먹어 소나무 수피가 적갈색으로 말라 고사했다. 신안군도 방제사업을 10년 넘게 벌이며 소나무를 살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영산도 새끼섬의 해식애 위에 서 있는 꼬마 등대.
영산도 새끼섬의 해식애 위에 서 있는 꼬마 등대. ⓒ 황호택
  
산상(山上) 투어를 하려면 마을 왼쪽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관광객들이 계단 앞에서 얼쩡거리면 잡종 진도견 '쫑'이 뛰어나와 안내를 맡는다. 계단을 조금 오르면 당집이 있다. 하당(下堂)은 배, 어장, 해초를 관장하는 김첨지 영감을 모신다. 상당(上堂)에는 흑산도 진리 본당에서 처녀 신을 모셔왔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영산도 마을이 아늑하게 다가온다. 흑산도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落照)를 전망대에서 바라보노라면 사바세계의 괴로움을 다 잊어버린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서부사무소, <영산도 명품마을 마을지>, 2015
정약전 저/권경순 김광년 옮김, 《자산어보》, 더스토리, 2022
김준, 《바다인문학》, 인물과사상사, 2022


#신안천사섬#영산도#거북손#꼬끼리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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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탐사보도로 한국기자상을 두해 연속 수상했다. 저서 '박종철 고문치사와 6월항쟁'은 언론 지망생들의 필독서 반열에 들었다. 시사월간지 신동아에 황호택이 만난 사람을 5년 5개월동안 연재하고 인터뷰 집을 7권 펴냈다. 동아일보 논설주간,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를 지냈고 현재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 대학원 겸직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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