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유가족들이 참사 당시 경찰 내부 보고서 삭제를 지시한 혐의를 받는 박성민 전 서울경찰청 정보외사부장 등의 엄벌을 촉구했다.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는 23일 오후 1시 30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법원 앞에서 기자브리핑을 열고 "참사 전 경찰 내부에서 안전 문제를 언급한 정보 보고서가 다수 작성됐음에도 경찰이 대책을 세우지 않은 이유를 규명하는 것은 참사의 진상규명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며 "박 전 정보부장 등 정보 경찰에 대한 신속한 재판 진행과 엄중한 처벌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경찰, 위험성 인지하고도 대책 세우지 않은 것"
경찰관을 꿈꿨던 딸 고 유연주씨를 잃은 유형우씨는 "(당시) 각종 언론에서 수십만 명의 인파가 운집할 것을 예상했고 경찰은 인파 관리와 각종 불법행위에 대비하기 위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10월 29일 당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좁은 골목에는 인파를 관리하는 경찰 대신 마약 수사를 위한 사복 경찰이 배치됐고 결국 참사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누구 한 명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경찰은) 오히려 참사 발생 전에 작성했던 '가을 축제·행사 안전관리 실태 및 사고위험 요인 보고서'를 삭제하라고 지시하며 강 건너 불구경하듯 이 참사를 바라보고 있다"면서 "어쩔 수 없이 지시에 따른 일선 경찰들과 참사의 진상규명에 협조하려는 당신의 동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이태원참사대응TF 소속 천윤석 변호사는 "2022년 핼러윈과 관련해서 경찰 내부에서는 안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7건이나 작성했고, 그중에는 참사가 발생한 해밀톤호텔 골목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위험성을 경고한 보고서도 있었다"면서 "경찰은 분명히 사고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는데도 대책을 세우지 않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당시) 이태원 지역 담당 정보 경찰은 현장에 나가 관리하겠다고 했지만, 김진호 당시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이 막았고 서울경찰청 정보부 수장이었던 박 전 정보부장은 각종 정보보고서 삭제를 앞장서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직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참담하다"며 "재판부는 이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와 유족들의 참담한 마음을 헤아려 엄정하게 재판을 진행해달라"고 전했다.
박성민, 유가족 시위에도 대답 없이 법정으로
유가족들은 기자브리핑을 마친 뒤 서부지법 입구에서 '박성민 등 정보 경찰 엄벌하라', '정보 경찰의 증거인멸 행위 규탄한다', '정보 경찰의 진상조사 방해 행위 규탄한다' 등의 손팻말을 들고 박 전 정보부장 등의 엄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공판을 4분 앞두고 출석한 박 전 정보부장은 입장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고 법정으로 향했다. 유족들 역시 박 전 정보부장을 향해 "정의로운 경찰관이 되어달라", "아이들을 생각해달라"고 외쳤으나,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발걸음을 옮겼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배성중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2시 박성민 전 정보부장과 김진호 전 정보과장, 곽영석 용산경찰서 정보관 등에 대한 5차 공판을 진행했다.
박 전 정보부장과 김 전 정보과장은 지난해 용산경찰서 정보관이 이태원 참사 전 작성한 이태원 핼러윈 대비 정보 보고서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공공전자기록 등 손상교사)를 받고 있다.
앞선 공판에서는 이들로부터 보고서 삭제 명령을 받았다는 용산경찰서 정보관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관련 기사 : 이태원 참사 후 '삭제 지시' 받은 정보경찰, "찝찝했다" 털어놓은 이유 https://omn.kr/253xj) 지시를 받고 보고서를 삭제한 곽 정보관은 공소사실을 전부 인정했으나, 박 전 정보부장과 김 전 정보과장은 공소사실을 모두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