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출범 1년 6개월. 정부여당은 언론을 의심했다. 가짜뉴스와 허위정보로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든다고. 공영방송의 인적·소유 구성을 바꾸려 했고, 각종 정책적 조치도 뒤따랐다. 국회에서 집권당 국회의원들은 때로는 공세로 프레임을 만들었고, 때로는 정부의 조치에 힘을 실어줬다. 새 정부 1년 반을 즈음해 '그래서 한국 언론은 나아졌는가'를 세 차례에 걸쳐 진단한다. [편집자말] |
여당은 국회 과방위 소속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연일 언론 편파성과 불균형을 주장했다. 정부는 '가짜뉴스 퇴치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새로 지명된 방송통신위원장은 KBS에 대해 "재건축 수준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규정했다. 정부는 위헌 지적이 있음에도 '가짜뉴스 근절 종합계획'을 만들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대선 전 두 사람의 대화 녹취를 보도한 언론에 대한 '응징'도 있었다. <뉴스타파>와 해당 사안을 인용보도한 언론 이야기다. '허위 사실을 인용해 보도했다'는 혐의를 받은 MBC 뉴스데스크와 JTBC 뉴스룸 등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최고 수위 제재인 과징금 부과를 확정받았다. <뉴스타파>에 대해선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지자체도 언론 손보기에 발을 맞췄다. 교통방송(TBS)에 지원되던 서울시 예산은 특정 프로그램의 편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며 중단이 결정됐고, 진행자는 방송국을 떠났다. 비단 TBS뿐만 아니다. MBC와 KBS의 일부 진행자들에 대한 살생부는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된 모양새다.
따지고 보면 언론 손보기는 2022년 대통령 미국 순방 당시 발생한 '바이든-날리면 발언 보도'부터 시작된 것 같다. 대통령실은 MBC에 대한 대통령 전용기 탑승배제 조치를 단행했고, 대통령은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고 아주 악의적인 행태를 보였다"고 했다. 이에 "무엇이 악의적이죠?"라고 해명을 요구했던 기자는 이제 더 이상 정치 뉴스를 전하지 않는다.
정부는 과감했다. 공영방송의 이사장과 사장, 이사진 등의 인적 구성은 2인 체제 방통위의 결정에 의해 큰 변화를 앞둔 상황이다. 그 사이 KBS 수신료 별도 징수는 이미 실행 중이다. 준공영방송 YTN은 최근 3200억 원을 써낸 기업의 소유물이 되기 직전이다.
포털도 힘들다. 다음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응원과 관련해 중국 측 응원 클릭이 많이 발생하자 '차이나 게이트'의 진원지로 지목됐다. 여당과 보수언론이 '알고리즘 변경 의심'을 보내던 네이버에는 10월 6일 방통위 조사관이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나열하기만 해도 숨가쁘다. 중간중간 빠진 사건도 있다. 이상은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언론 분야에서 벌어진 주요 사항들을 정리한 것이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이 모든 일이 '올바른 언론' '자유민주주의에 걸맞은 언론'을 위한 여정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런 관점과 정책이 합리성을 인정받으려면 정부 출범 1년 6개월 이상이 경과한 시점에서 과거에 비해 '언론이 좋아지고 있다'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한다.
물론 '좋다'는 평가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는 주관적 지표다. 그러나 언론의 궁극적 가치와 핵심 속성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좋아졌다' '나빠졌다'는 판단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닐 듯하다. '언론'에 빅데이터상 자연스레 따라붙는 연관어들인 '언론의 자유' '팩트체크와 가짜뉴스' 그리고 '언론의 중립과 다양성' 등을 기준으로 우리 언론을 평가해보자. 정말, 윤석열 정부 이후 한국 언론은 좋아졌나.
하락하는 언론의 자유
1년 6개월 동안, 한국 언론의 자유 정도는 어떤 상태가 됐을까. 기준과 의견, 체감 정도는 각자 다를 수 있기에 구체적 근거가 중요하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각국이 처한 언론의 자유 상황을 국제적인 잣대로 통합해 파악하는 대표적 자료는 국경없는기자회(RSF)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언론자유지수(RSF World Press Freedom Index)'다. 현 시점에서는 180여 개국을 조사하고 있는데, 정치적 맥락과 법적 프레임 워크, 경제적 맥락과 사회 문화적 맥락 등 언론 자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을 국가별로 분석해 결과를 내놓는다.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권 시절 69위(2009년), 박근혜 정부에서 70위 수준까지 하락했으나, 2018년~2022년엔 41위~43위 수준으로 회복했다. 그러나 2023년 자료에 의하면, 새 정부 출범 후 한국의 언론 자유 지수는 47위를 기록했다.
이처럼 한국의 언론 자유가 후퇴 기조로 돌아서고 있음은 이미 2022년 보고서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국경없는기자회 웹사이트에 게시된 2022년 한국 편 보고서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언론을 대하는 '적대적인 움직임(president's hostile moves against public media)'에 대해 상세히 명시하고 있다. 물론 본문에는 대통령과 똑같은 기조를 보이는 집권당의 활약도 설명해놨다.
대통령실의 '바이든-날리면' 사건 대응이 언론에 끼친 영향
RSF 보고서가 대표적으로 언급한 사안은 당시 국민의 약 63.2%가 욕설로 들린다고 대답했던 그 유명한 '바이든-날리면 사건'이다. RSF 보고서엔 이 사건의 경과는 물론 대통령실의 비상식적 대처까지 설명해 놨다.
특히 MBC와 해당 기자에 대해 대통령실과 정부가 취한 조치를 놀라울 만큼 상세히 싣고 있다. 이 보고서는 대통령실이 MBC의 보도에 대해 '심각한 국익 침해(causing serious harm to national interests)를 저질렀다'고 보고, 이에 따라 '11월 9일 시작된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서 전용기 탑승을 금지했다(the President's office banned MBC's journalists from boarding the presidential plane)'는 점을 기술했다.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해 대통령의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은 무기한 취소됐으며, 그해 11월 20일엔 도어스테핑이 열리던 곳에 높은 벽이 설치돼 그 뒤로 누가 출입하는지 볼 수 없게 만들었다'(it installed a wall in front of its pressroom)는 것도 적시했다.
더불어, 국민의힘 의원들의 MBC와 기자들에 대한 압박과 항의 그리고 해당 기자가 정부 지지자들에 의해 살해 협박을 받은 사실까지 명시해놨다.
RSF 보고서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이후 대한민국의 외교부가 바이든-날리면 보도를 진행한 수백 군데 언론사 중 하나인 MBC를 콕 집어 소송을 제기한 사실도 있다. 국경없는기자회의 한국편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난다.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선도하는 국가 중 하나인 대한민국은, 2022년 국경없는기자회의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선 180개국 중 43위를 차지했다 (South Korea, one of Asia's leading democracies, ranks 43rd of 180 countries in the 2022 RSF World Press Freedom Index)."
나라 밖에서 '자유' 설파하는 대통령
언론 자유와 관련해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사건은 최근 국내에서 관찰됐다. 세계 언론동향을 매년 파악하는 또 하나의 국제적 자료인 영국 로이터저널리즘 연구소 발간 디지털뉴스리포트는 한국언론재단이 한글판으로 만들어 매년 국내에 배포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유독 올해 재단이 발행한 보고서에는 예년에 없던 변화가 발견됐다.
원문 보고서의 한국 영역 중 언론사별 대중이 느끼는 신뢰도 순위에 대한 정보가 통째로 사라진 채 한국판이 제작된 것이다. 올해 조사에서 한국인이 가장 신뢰한다고 대답한 언론사 1위는 MBC였고, 심지어 지난해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할 정도로 증가세를 보였다는 사실이 원문에는 포함돼 있었다.
신뢰받는 언론사 순위에는 현재 지분매각 단계 중인 YTN과 정부로부터 편향적 언론으로 지목돼 '재건축'이 필요하다고 취급받는 KBS가 올라가 있기도 하다. 이 사안과 관련해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단에 해명을 요구했고, 국정감사에 출석한 남정호 언론진흥재단 미디어본부장은 "조사대상의 표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 (중략), 로이터에서 모집하는 표본은 온라인에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만 되어 있었으며 (중략), 온라인에서 가입한 사람들은 젊은 분이라든지 어떤 성별 별로 한쪽으로 몰려있기 때문에 문제가..."라는 답을 내놨다.
로이터 저널리즘연구소가 이미 전체 보고서에 포함된 방법론(Methodology) 영역에서 "인구통계학적 불균형에 대해서는 보정 과정을 통해 해결(weighted to targets based on census)"했음을 명시했는데도 말이다.
사실 최근 미디어 영역에서 실시하는 설문조사 중 오프라인을 통하는 사례가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기도 하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병합할 경우 통계 처리에 있어 또 다른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원칙 또한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도 간다. 이와 함께 재단 측은 국정감사에서 진행한 답변을 통해 유튜브를 포함한 디지털 플랫폼을 가장 자주 그리고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한국 대중에 대한 몰이해도 드러냈다.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이미 95% 이상으로 압도적이다. 단순히 '온라인에 있는 사람들만 표본이라 신뢰할 수 없어 보고서에서 들어냈다'는 해명은 합당하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은 해외 순방 시 연설을 하거나 대담·강의 등을 할 때 '가짜뉴스·허위정보 등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며 자유를 수호해야 한다는 뉘앙스로 말하고 다닌다. 그러나 실상 자국 내에서의 언론 자유는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모양새다. 윤석열 정부 1년 반, 언론의 자유는 과연 나아졌는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유현재씨는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