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화려하게 무리 지어 핀 모습을 보면 장관이다. 유채꽃밭, 메밀꽃밭 부럽지 않을 만큼 예쁘다. 하나하나 들여다봐도 예쁘다. 그런데 이렇게 예쁜 것을 보며 마냥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없다. 예쁨 뒤에 숨어있는 욕심 때문이다.
요즘 숲과 들, 길가, 마을 공터 가리지 않고 하얗게 무리 지어 핀 미국쑥부쟁이와 서양등골나물 이야기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쑥부쟁이는 미국에서 온 쑥부쟁이고, 서양등골나물은 서양에서 온 등골나물이란 뜻이다. 이는 우리나라에 이미 쑥부쟁이가 있고, 등골나물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쑥부쟁이는 국화과 식물로 대부분 가을에 보라색 꽃이 핀다. 진하고 엷은 차이는 있지만 다들 아름다운 보라색이다. 꽃은 우리가 들국화라고 부르는 모양으로 구절초, 벌개미취, 개미취, 참취와 비슷하게 생겼다.
여기에 잎이 쑥을 닮아서, 꽃은 부지깽이나물을 닮아서 둘이 합쳐져 쑥부쟁이가 되었다는 속설이 있다. 반면 미국쑥부쟁이는 꽃 모양은 비슷하지만 크기가 확연하게 작고 흰색이다. 언뜻 보면 아이들이 달걀꽃이라 부르는 개망초와 비슷하다.
등골나물은 살짝 말랐을 때 등나무꽃 향기가 나서 붙여졌다는 이야기와 잎 가운데가 등골처럼 고랑이 있어 그랬다는 설이 있다. 아무튼 뒤에 '나물' 자가 붙어 어린 순을 나물로 먹는다.
등골나물과 서양등골나물을 비교하면 서양등골나물 꽃이 더 화려하다. 솔직히 등골나물 꽃은 삐쭉삐쭉 길고 작게 생겨 그리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여럿이 무리 지어 하얗고 동글동글하게 핀 서양등골나물 꽃에 더 혹한다.
그런데 미국쑥부쟁이와 서양등골나물은 이름은 살짝 다르지만 고향은 같다. 둘 다 북아메리카에서 왔다. 미국쑥부쟁이는 한국전쟁 중에 들어왔다고 하고, 서양등골나물은 그보다 조금 늦게 들어온 듯하다.
1978년 서울에서 처음 발견된 서양등골나물은 급속도로 퍼져 지금은 중부지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식물이 되었다.
이 둘은 고향이 같다는 것 외에 외국에서 와 우리나라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미국쑥부쟁이는 길가나 공터 가리지 않고 자라고 있고, 서양등골나물은 약간 그늘진 숲 언저리에서 많이 발견된다.
낯선 터에 자리 잡아 견디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번식력과 생존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다 보니 그곳에 살아왔던 우리 자생식물들이 밀려나 설 자리를 자꾸만 잃어가고 있다.
그만큼 생태계의 다양성이 떨어지고 있음을 뜻한다. 예쁨 뒤에 가린 욕심이 불러온 결과다. 미국쑥부쟁이 등은 정부가 생태계 교란 야생생물로 지정해 법으로 규제, 관리하고 있다.
평소 아이들에게 꽃을 꺾는 것을 그리 권장하지 않는다. 예쁘다고, 갖고 싶다고 꽃을 꺾게 되면 곧 시들게 되고, 그 아름다움은 절대 다시 볼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계속 보고 싶으면 예쁘게 놔둬서 열매를 맺고 씨앗을 만들어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이 둘은 다르다. 특히 미국쑥부쟁이는 꽃이 줄줄이 달린 가지 채 꺾어 화병에 꽂아두기도 하고, 줄기를 길게 엮고 감아서 아이들에게 화관으로 씌워주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과 이야기한다. "이 꽃을 꺾어도 될까? 꺾어야 할까?" 생태계 교란에 대해 인위적 간섭을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예쁘면 다 용서된다'라는 말이 있다. 외모지상주의의 단순하고 과격한 발상이다. 어떤 사람들은 두 꽃이 보기에 예쁘기에 일부러 심어 가꾸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몰라서 그런 것일 테지만 안 될 말이다.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많은 부분에서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미국쑥부쟁이와 서양등골나물을 떠올려 보자. 두 꽃의 화려함 뒤에 숨은 욕심 때문에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들이 많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협동조합 숲과들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