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리'에 진심인 막내들의 하루 일과! 본사와 현장, 둘 다 보여드림~
2023년 9월 유튜브 채널 'DL 디엘'에 게재된 영상 제목이다. 영상에는 대형건설사 DL이앤씨 본사 안전관리팀 직원들이 어떻게 건설 현장 안전을 관리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유튜브 영상 속 그들은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스마트 기술을 활용하고 드론으로 건설 현장을 점검한다. '현장에 나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보호구'를 챙기고 '신규 노동자일수록 안전 교육을 꼼꼼히' 실시한다.
'안전관리'에 '진심'이라는 건설기업, DL이앤씨. 그 건설현장에서 1년 5개월 동안 8명이 죽었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단일 기업 기준으로는 건설현장에서 가장 많은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유튜브 영상에서 '안전에 진심'이라는 영상이 게재되기 약 한 달 전인 8월 11일. 이날은 하청노동자 강보경씨의 첫 출근일이었다. 오전 10시, 그는 부산 연제구 DL이앤씨 아파트 공사 현장 6층 20m 높이에서 거실 창문 교체 작업을 하다 떨어져 사망했다.
강보경씨는 그 어떤 안전 보호구도 받지 못했다. 신입일수록 꼼꼼히 실시한다는 안전교육도 받지 않았다. 추락에 대비한 안전망은 없었던 것일까? 유튜브 영상에는 48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안전관리에 진심인 디엘이앤씨를 응원한다" 같은 반응이 대다수였다. 영상과 현실의 차이가 크게 느껴진다.
강보경씨 가족이 이 영상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래서 유가족을 만나러 갔다. 지난 10월 11일 고 강보경 노동자의 어머니 이숙련씨(76)와 누나 강지선씨(33)를 만났다. 이날은 강씨의 49재를 대신해 추모 위령재를 봉행하는 날이었다. 강씨가 죽은 지 62일째 되는 날이기도 했다. 지난해 추석에 강보경씨 가족은 따뜻한 음식을 해 먹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올해 9월 28일, 추석 연휴였던 당시 가족들은 강보경씨의 49재를 지냈다. 어머니 이씨는 연휴 내내 울었다.
불교에서 49재는 고인의 명복을 빌고, 새 생명으로 보내주는 날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강씨를 놓아줄 수도, 잊을 수도 없다. 연휴가 끝난 바로 다음날도, 모녀는 또 피켓을 들었다. 아들이 일했던 회사 앞으로 출근해 1인 시위를 했다.
자식 잃은 가족의 한... "부탁드립니다, 죄송하다고 하세요"
남은 가족들은 1인 시위를 시작하며 바쁜 하루를 보낸다. 매일 세 번씩 피케팅을 한다. 기자회견을 하러 국회를 다녀오고, 노조와 시민단체 활동가도 만난다. 분향소도 비울 수 없어 매일 가족들이 돌아가며 지킨다. 밤에 숙소로 돌아와서도 일은 끝나지 않는다. 누나 지선씨는 바로 잠들 수 없다. 지금까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글을 쓴다.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발언할 내용을 쓰고 하루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다.
지난 12일 환경노동위원회가 진행하는 국정감사가 있었다. 마창민 DL이앤씨 대표는 국감장에서 "사고를 막을 책임을 가진 원청으로서 굉장히 안타깝고 송구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다"며 "피해자와 유가족께 깊은 유감과 위로를 전한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닷새 뒤, 지선씨는 사과를 받기 위해 마 대표를 찾아갔다. 그러나 마 대표의 '사과'는 충분한 대화 없이, 몇 분 만에 끝나버렸다. 유족에 따르면 '이렇게 (개인적으로) 사과하면 되지 않느냐'며 유족들과 시민대책위가 요구한 공개 사과를 끝내 거부했다고 한다. 어머니 이씨에겐 직접 사과도 하지 않았다.
유가족을 돕고 있는 권영국 변호사는 <데일리임팩트>와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고, 사죄드린다면서도 책임을 인정한다거나 분명한 사죄의 대상이 없었다"라며 "마 대표의 사과는 미리 사과 못한 것에 대한 사죄였을 뿐, 조치를 제대로 못 해 사고가 났고 자신이 책임지고 사과한다는 내용은 없었다"고 말했다(데일리임팩트 10월 23일자 보도 <마창민 대표 유족 만나 사과... "국회 약속 지켰다").
사과(謝過). 사전을 찾아보니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빎'이라는 뜻이다. 사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잘못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셋째, 재발 방지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이런 조건을 만족해도, 상대가 사과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건 '사과'가 아니다.
"지금이라도 죄송하다고 하세요. 꼭 부탁드립니다."
지난 4일 기자회견에서 어머니 이씨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어머니는 회사에게 사과하라고 '부탁'했다. 어머니 숙련씨에게 사과란 어떤 의미일까. 사과를 부탁한다는 건 어떤 마음일까.
그동안 회사는 시위하는 모녀를 시끄럽다며 관청에 신고를 했다. '안전관리'에 진심이라는 홍보 영상을 만들면서 공개 사과는 하지 않았다. 정말로 미안하다면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어머니 숙련씨와 누나 지선씨는 DL이앤씨가 만든 영상을 봤다.
'안전관리 진심' 영상 본 유족들의 반응은...
유족들은 "말뿐인 안전"이라며 "차라리 정말로 이렇게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아들은 세상을 떠났지만, 앞으로 더 이상 새로운 피해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누나 지선씨는 DL이앤씨 마창민 대표 앞에서 자기 몸에 물을 끼얹었다.
"차마 높은 분한테 물을 끼얹을 수 없어 저한테 물을 부어버렸습니다. 제 말을 계속 이해를 못 하시더라고요. '어머니랑 제가 두 달 동안 운다고 이 꼬라지로 지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죠' 하며 물 두 병을 뿌렸습니다."
모녀는 사고 이후로 본가에 내려간 적이 없다. 모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계획은 없습니다. 그냥 하는 거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사실 통영에 갈 데도 없어요. 만날 사람도 없고. 이제 동생도 없는데. 그래서 여기 계속 있는 거죠. (1인 시위가) 앞으로 몇 달이 걸릴지 몰라요."
"이 일 겪고 나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 아들 얼굴로 보입니다. 밖에 다녀오면 아들 사진에 대고 '누나랑 엄마 갔다 왔다, 아가'라고 말해요. 근데 가슴이 찡해요. 가슴에 사진을 품고 '혼자 외로웠지, 혼자서 외로웠지' 해요. 그냥 사진 한 장 숙소에 놓고 나갔다 왔는데도, 아이를 떼어 놓고 나오는 것 같아요. 참 그게 안 됐더라고. 사진인데도 또 사람을 두고 간 것처럼. 아직까지 애를 못 잊나 봐요."
엄마는 말한다. 누나 지선씨는 엄마와 아들 사이가 누구보다 특별했다고 말한다.
"엄마는 남편 없이 혼자 아이 둘을 키웠어요. 그래서인지 별것 아닌 걸로 트집 잡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시비를 걸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동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어요. 항상 엄마 옆에 딱 서 있었어요. 시비 거는 사람들이 어른이니 뭐라고 차마 화를 낼 수는 없었나 봐요. 그냥 자기가 엄마 옆에 그렇게 딱 있으면 시비를 덜 걸겠거니 생각한 거죠. 그래서 더 엄마가 버텼죠. 아들을 보면 든든하니까."
속이 깊은 동생이라고 말하는 누나는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제 모녀는 그들의 곁을 든든히 지켰던 강보경씨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지난해 1월 이후 현재까지 DL이앤씨에선 7건의 사고로 총 8명이 죽었다. 7건의 사고 모두 수사 중인데, 검찰에 송치된 사건은 아예 없는 상태다.
유족들은 이번 사고는 단순한 합의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누나 지선씨는 "저는 여덟 번째, 아홉 번째가 안 나오길 바라지만, 꼭 나온다고 보거든요. 연쇄 살인자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저희가 길거리에 나오는 마지막 유족이었으면 좋겠어요. 아홉 번째, 열 번째가 나올 거지만, 그분들은 거리로 나오지 않고도 사과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향진 기자의 블로그 <이향진 기자의 산재 로그온>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