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마지막 근무구나."
실감이 안 났다. 새벽 4시 35분 목동역에서 6003번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갈 때만 해도 그랬다. 긴 작업복 셔츠와 검은 장갑을 착용한 김계월(60)은 아시아나항공 비행기 내부 청소를 마친 뒤 객실 가운데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코로나19 정리해고 1호 사업장' 아시아나케이오에서 해고됐다 복직한 김씨는 그렇게 퇴직을 맞았다. 지난 10월 31일의 일이었다.
"저기 제일 큰 비행기, A380 같은데..."
그로부터 딱 일주일 뒤인 11월 7일 인천공항 4층 전망대에서 김씨가 멀어지는 비행기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2014년 아시아나케이오에 입사했을 당시 처음 도입된 아시아나항공 비행기였다. "2층 구조에 좌석 수만 495석"에 달하는 대형기를 김씨는 똑똑히 기억했다. 그 비행기는 구석구석 김씨의 손을 거쳐야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이날 인천공항 한 카페에서 만난 김씨는 "노동자라는 단어에 큰 힘과 자부심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동료들을 믿고 포기하지 않은 덕에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고, 부당해고에 대한 명확한 판례를 남기게 됐다"고 소회를 밝혔다.
며칠 전인 3일엔 김씨의 퇴임식도 열렸다. 그를 축하하기 위해 50여 명의 동료들이 서울 영등포구 '비정규노동자쉼터 꿀잠'에 모였다. 분홍 한복을 입고 나온 김씨는 지난해 7월 일터에 복귀했을 때만큼이나 큰 축하를 받았다. 복직 투쟁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도, 이제 막 가까워진 동료들을 떠난다는 아쉬움에 시원섭섭했다. '고생했어', '수고했어', '건강해'라는 말에 김씨의 눈에는 끝내 눈물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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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고, 복직, 승소, 정퇴... '비행기 청소노동자' 아시아나케이오지부장의 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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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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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08'이 된 '22301'
"2014년 6월 5일, 사번 22031."
2014년 김씨는 아시아나케이오에 무기계약직(정년이 보장되지만 임금은 정규직보다 낮은 고용 형태)으로 입사했다. 아시아나케이오는 아시아나항공 자회사 아시아나에어포트의 2차 하청업체다. 하청에 재하청을 받은 김씨는 비닐봉투, 화장지, 티슈 등을 실은 버스를 타고 이동해 비행기 캐빈(객실) 청소를 했다.
해고 통보를 받은 건 2020년 5월 11일이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경영 악화를 우려한 케이오는 청소노동자들에게 무기한 무급휴직과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김씨를 포함해 무급휴직 동의서에 서명하지 않은 8명은 모두 정리해고됐다. 그 해고자들은 모두 2015년에 만들어진 노동조합(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케이오지부)의 전현직 조합원이었다. 김씨는 "코로나19 상황이 언제 끝날지, 복직까지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실상의 표적 해고를 당한 것"이라고 했다.
그날부터 긴 싸움이 시작됐다. 해고 노동자이자 현직 조합원인 6명은 해고 당일 인천 미추홀구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앞에 천막을 치고 5박 6일간 농성을 벌였다. 이후 금호아시아나 본사 앞에서도 천막 설치를 시도했으나, 종로구청에 의해 세 차례 강제 철거를 당했다. 이들은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복직을 촉구하는 천막 농성을 이어갔다. 김씨 역시 50리 행진, 오체투지, 릴레이 3000배 등에 함께하며 싸웠다.
해고노동자들은 서울·인천지방노동위원회(2020년 7월)와 중앙노동위원회(2020년 12월)로부터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냈다. 이에 불복한 케이오가 중노위에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서울행정법원 역시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다. 2022년 7월, 해고된 지 799일째 날이 되어서야 김씨는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에도 케이오는 항소에 상고까지 했지만 대법원은 2023년 2월 최종적으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2022년 7월 18일, 사번 22708."
수많은 난관을 헤쳤지만 기대한 결말은 아니었다. 김씨에게는 새로운 사번이 주어졌다. 그를 복직자가 아닌 신입사원으로 대우하겠다는 얘기였다. 이미 복직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길 위에서 정년을 맞은 동료가 3명(기노진, 김정남, 김하경)이나 됐다. 생계 등을 이유로 농성장을 떠난 동료도 생기면서 마지막에 일터로 돌아간 사람은 김씨가 유일했다.
'연대의 힘'으로 싸울 수 있었다
김씨는 2020년 2월부터 아시아나케이오지부장을 맡았다. 정년퇴직할 때 그는 그곳의 마지막 조합원이었다. 그가 일터를 떠나면서 아시아나케이오지부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오랜 투쟁 끝에 복직하고 정년을 맞았지만, 케이오는 계속해서 부당해고를 인정하지 않았다. 길 위에서 퇴직한 해고노동자들에 대해 한마디 사과조차 없었다.
법적 다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씨는 복직을 앞둔 2022년 6월 말부터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케이오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이는 과정에서 퇴거불응 및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그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음에도 회사가 이를 부정하고 있어 싸움이 얼마나 더 길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는 부당해고에 대해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다. 그때 싸움을 멈췄다면 복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투쟁도, 복직도, 정년퇴직도, 거리에서 만난 다른 노동자들과의 연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콜트콜텍, 아사히글라스,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을 떠올리며 김씨는 "연대의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가 노동자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들의 각오가 흔들리지 않도록 함께 싸워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퇴임식 때 쓴 편지에서 "정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에요. 그 희망을 멈추지 않고 다른 길에 발길을 보탤게요. 어떤 일을 하든 연대의 길을 갈게요"라고 썼다. 이제 청소노동자도, 노조 지부장도 아니지만 그의 말에는 여전히 '노동자'가 배어 있었다. 그는 반납하지 않은 작업복을 다시 꺼내 입었다. 아직 싸우고 있는 길 위의 '김계월'들을 떠올렸다.
"우리의 손과 발과 눈으로 이뤄지는 세상, 우리는 연대하고 싸울 수밖에 없어요. 구조조정과 해고로부터 우리의 일터를 지키려면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