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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법원
대법원 ⓒ 이희훈
 
인근 공장에서 위험한 화학물질이 누출되자 작업을 멈추고 근무지에서 대피한 노동자에게 회사가 징계를 내린 것은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회사의 징계가 정당하다고 본 1·2심을 뒤집은 것으로, 작업중지권을 이유로 회사가 노동자를 징계할 수 없다고 본 첫 대법 판결이다. 현장에서 아직 보편화되지 않은 노동자의 작업중지권을 법원이 폭넓게 인정했다는 평가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9일 조남덕 금속노조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콘티넨탈) 지회장이 회사를 상대로 낸 징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회사 측 손을 들었던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조 지회장이 소송을 제기한 지 무려 6년여 만이다.

콘티넨탈은 자동차 계기판 등을 제조하는 업체다. 지난 2016년 7월 26일 이 회사가 위치한 세종시 부강산업단지 내의 한 안경렌즈 제조업체 KOC솔루션 공장에서 '티오비스'라는 위험 물질이 가스 형태로 유출됐다. 콘티넨탈 공장은 사고 지점에서 불과 200미터 떨어진 곳이었고, 매스꺼움과 어지럼증을 느끼는 주변 동료들이 나오자 조 지회장은 고용노동부와 사측에 연락해 조치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대피조치가 이뤄지지 않자 조 지회장은 조합원 20여 명과 함께 공장에서 대피했다.

회사는 조 지회장 등에게 공장에 돌아와 다시 일을 시작하라고 시켰고, 노동자들은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회사는 조 지회장에게 해고 직전 단계인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조 지회장은 이 징계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1·2심은 회사의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사후조사 결과, 누출 지점 10미터 이상의 거리에서 독성 화학물질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급박한 위험이 없었다고 봤다. 산업안전보건법 52조엔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돼있다.

대법원 첫 판례… 조남덕 지회장 "더 당당하게 거부할 수 있길"

이번 대법원 판결은 노동자의 작업중지권 행사가 회사의 징계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첫 사례여서 의미가 크다. 사건을 맡은 이두규 금속노조 법률원 변호사는 선고 직후 통화에서 "만일 정체 모를 화학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 노동자들이 대피한 것이 징계사유가 된다면 작업중지권이 크게 위축될 수 있었다"라며 "1·2심과 달리 작업중지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단은 유의미한 진전"이라고 했다.

금속노조는 입장문을 내고 "늦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대법원이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노동자의 권리를 확인했다"라며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인 작업중지권을 보편적 권리로 확장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사건 당사자인 조남덕 지회장 역시 통화에서 "작업중지권이 노동자들의 보편적 권리가 될 수 있는 첫출발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1·2심에서 모두 패소해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다는 조 지회장은 이날도 공장에서 일을 하다 대법원 판결 소식을 접했다.

"혹시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다른 노동자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사실 너무 걱정을 많이 했다. 지금도 법에는 작업중지권이 있지만, 현장에선 사실상 못 쓴다고 보는 게 맞다. 그만큼 회사는 공장 라인 세우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심지어 바로 앞에서 화학물질 유출사고가 났는데도 '사람 죽은 것도 아닌데, 라인 세웠다가 피해 보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는 말을 공공연하게 한다.

우리가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은 건 맞지만, 그것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까지 내가 일하겠다고 한 건 아니지 않나. 이번 계기로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더 당당하게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고,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관련기사] "화학물질 유출돼 대피했더니 정직 3개월"... 대법 판단은? https://omn.kr/26c6n

#작업중지권#거부할권리#대법원#콘티넨탈#조남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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