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화요일, 입동을 하루 앞둔 이날 쌀쌀해진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른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울 2호선 구의역 앞에 모였다. 이들은 공공운수노조와 서울교통공사노조 주관으로 진행된 '공공교통 다크투어' 참가자들이었다. 이날 참가자들은 버스를 타고 사회적 참사 장소인 구의역, 신당역, 이태원역, 신길역 네 곳을 순회했다.
각각의 역에 도착할 때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올라탔다. 역마다 한 시간 반 정도 머물며 헌화와 묵념을 하고 참사가 일어난 이유에 대해 토론했다. 원치 않는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일곱 시간 동안 끊이지 않았다. 참여자들은 시종일관 진지함을 잃지 않았다.
'왜 참사가 일어나고 억울한 죽음이 발생했는가?'는 토론의 주제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 문제는 9일 저녁 파업을 시작한 서울교통공사 노조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노조는 2천 명이 넘는 공공인력 감축 계획에 반대하는 파업을 시작했다. 적자와 비용 문제로 공공 인력을 축소하면, 시민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신당역 살인사건, 10·29 이태원 참사, 신길역 휠체어 리프트 추락사고... 투어 대상 지역에서 발생한 참사 원인을 분석하면, 결국 인력 부족 문제와 닿아 있다. 이 모든 참사는 충분한 안전 인력이 있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도 인력 문제로 안전 사고 위험을 우려하는데, 공공인력 축소 계획이라니. 참사 현장에서 생각해 보니 참사 원인은 복잡하지 않았다.
첫 번째 코스, 구의역
개찰구를 통과하는 여행자의 손에는 국화꽃이 들려 있었다. 구의역 9-4 승강장에 멈춰 꽃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였다. 한 청년노동자가 죽은 곳이다.
"생각보다 죽음이 가깝다."
다크투어에 참석한 정성용 공공운수노조 쿠팡 물류센터지회 지회장이 구의역 발언대에서 한 말이다. 그의 말대로 죽음은 생각보다 우리 발끝 가까운 곳에 있었다.
2016년, 이곳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하청노동자 19세 김군이 달려오는 전동차에 치여 사망했다. 스크린도어 수리 시에는 2인1조로 근무해야 한다는 수칙이 있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원·하청 계약사항에는 '고장접수 1시간 이내 현장출동 하지 않을 경우 패널티 부과 조항'이 있었다. 그 때문에 김군은 혼자서 작업을 강행해야 했다. 만약 김군의 옆에 누군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전동차가 들어오고 있다고 알려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김군은 올해 27살의 청년이 되었을 것이다.
구의역 참사 이후, 김군의 동료들은 비로소 2인 1조 규정을 지킬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인력이 부족해 2인 1조 근무가 지켜지지 않는 곳도 많다.
스크린도어는 시민을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다. 김군은 안전장치를 고치다 죽음을 맞았다. 시민을 지키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김군과 같은 안전 인력의 안전이 위험해지면, 시민 안전도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코스, 신당역
다음 다크투어 장소는 신당역 10번 출구 앞이었다. 2022년 신당역에서는 역무 노동자가 순찰 중 스토킹범의 습격을 받아 사망했다.
경찰도 2인 1조로 순찰한다. 참사 현장에는 무수한 '만약'이 남겨졌다. 만약 스토킹 피해자가 제대로 된 보호를 받았다면? 만약 가해자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지 않았다면? 만약 두 명이 순찰을 했다면…
다크투어에 참석한 이수정 서울여성회 활동가는 "피해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남기 위해서, 비상벨을 눌렀다. '만약 2인 1조 근무였다면, 바로 대처가 가능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인력을 감축하면서 이런 사건들이 발생한다. 앞서 말한 구의역에서부터 계속 이어져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비용이 아닌 사람 중심의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발언했다.
권오훈 공공운수노조 인권국장은 이수정 활동가의 발언을 이어갔다.
"사건 발생 후에 저와 함께 근무했던 직원도 순찰 중 화장실에서 습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저도 역무원이 되고 나서 두 차례 폭력을 경험했다. 이런 일들이 거의 하루에 한 건씩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공사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발생 후 '역 직원 2인 1조 순찰 강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직원들은 여전히 '나 홀로 근무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신당역 사건은 스토킹 범죄만이 아니다. 살해 당시 역무 노동자는 '순찰 노동' 중이었다. 왜 순찰을 할까? 시민 안전을 위해서이다. 안전을 책임지는 노동자가 위협에 처한다면? 시민 안전은 누가 책임질까? 안전 인력이 안전해야 시민 안전도 가능하다.
서울교통공사는 적자를 줄이는 취지에서 2000명 인력 감축 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시민 안전과 시민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노동자의 안전이 있을까?
세 번째 코스, 이태원역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에 버스가 정차했다. 작년 10·29 참사 현장인 '기억과 안전의 길' 위에 의자가 놓여졌다. 이태원 거리는 한산했고 거리 벽면에는 시민들이 적은 추모글이 가득했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한복판에서 158명이 압사를 당했다. 경찰과 공무원이 군중 밀집을 통제하지 못해 생긴 일이다. 시민들은 참사 현장에서 목이 쉬어라 혼자 외쳤던 경찰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옆에 한 명만 더 있었더라면…
10·29 참사는 공적 자원을 어떤 기준으로 배분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사건이었다. 사고 당일 투입된 경찰 인력은 137명이었다. 그중 마약단속을 위해 투입된 수사 경찰이 50명이었다. 직전년도인 2021년엔 85명의 경찰과 기동대 3개 중대(180명)이 배치됐다. 2021년에는 8만여 명, 2022년에는 13만여 명(지하철 탑승 기록 기준)이 이태원에 모였다.
아직 우리는 체계적이고 구조적인 원인을 분석한 보고서를 받지 못했다. 경찰과 공무원 배치 기준에서 핼로윈 축제 안전 문제는 몇 번째였을까? 도대체 누구를 보호하려고 정부와 지자체와 경찰은 배치되었을까?
10·29 참사 피해자와 유족들은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책임을 지우는 건 원인이 밝혀진 후의 일이다. 왜 죽었는지 알아야 미래의 참사를 막을 수 있다.
피해자 고 이상은씨의 어머니 강선이씨는 "공무원들이 본인들의 기본적인 책무를 다했다면, 이 길이 막힌 길이 되진 않았을 것"이라며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 길에 와주신 건, 이러한 참사를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같이 고민하기 위함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길에 '기억와 안전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처럼 '기억하는 일'이 첫 번째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다들 잊지 말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다시 아픔을 겪지 않게 되는 그런 기억이었으면 한다."
강선이씨가 말하는 '기본적 책무'는 시민 안전을 최우선 기준으로 경찰과 공무원을 배치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네 번째 여행코스, 신길역
신길역 환승구간의 에스컬레이터는 무척 가팔랐다.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많은 승객이 손잡이를 꼭 붙잡고 있었다. 이 경사진 구간을 통과하는 데 비장애인은 20초가 걸리지만, 장애인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권오훈 국장의 말에 의하면 과거에 리프트를 이용하려면 거의 1시간이 걸렸다.
2017년 신길역에서 장애인 고 한경덕씨가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기 위해 역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 계단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역사 내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지하철을 타려면 역무원을 불러야 했다.
참사 이후 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투쟁으로, 신길역에는 비로소 엘리베이터가 생겼다. 그 앞에는 이 참사를 계기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는 내용의 동판이 세워졌다. 동판 아래에 마지막 국화꽃을 내려놓았다. 사람들은 한참이나 동판에 새겨진 문구를 들여다보았다.
이웃 나라 일본은 '교통배리어프리법' 제정 후, 역무원이 장애인 이동 보조를 위해 역사에 항상 대기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은 장애인이 편하게 이동해야 한다는 것 외에 중요한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살아서 안전하게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는 권리이다.
장애인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죽을 수 있다는 사실. 이것 하나만으로 장애인 지하철 출퇴근 시위를 이해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 설치와 장애인 이동 보조 인력 고용은 시민의 생명과 직결된다. 돈을 아끼기 위해 인력을 줄이고 설비 투자를 늦추면,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명만 더
사회적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한 적절한 공공 서비스가 필요하다. 공공 서비스를 전산망과 기계로 대행할 수는 없다. 지하철표 구매는 자동 발매기로 대행할 수 있지만, 시민 안전 업무는 사람이 해야 한다.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필요한 일이다. 그것도 전문 인력의 추가 투입이 절실하다.
현실적으로 전문 인력 투입이 힘들다면, 2명 이상이 안전 업무를 수행하게 해야 한다. 감시 카메라에서 전송하는 동영상으로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2명 이상이 순찰업무를 나가고 그 동안 한 명은 사무실에서 동영상을 보고 있어야 참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공공 서비스를 담당하는 노동자가 안전해야 시민도 안전할 수 있다. 노동자 안전은 시민 안전과 직결된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경영합리화를 위해 2026년까지 공사 직원 2211명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교통공사의 일은 공공 영역이다. 공공서비스는 효율과 비효율의 문제, 나아가 비용의 문제가 되면 안 된다.
다크투어에 참여한 이나래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모든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기준으로 한 지하철 운영이야말로, 2016년 구의역 김군의 사고를 재반복하지 않는 길"이라며 "생산성과 효율성이라는 시장화 논리를 앞세우는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싸움과 함께, 위계와 폭력을 만들고, 존엄과 평등, 그리고 안전을 무너뜨리는 체제에 대항해 어떻게 함께 맞서 싸울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교통공사 노조 파업은 단순히 노동자 임금, 노동조건 개선이 목표가 아니다. 노조원들은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번 파업이 우리 모두와 무관하지 않은 이유다. 남의 일이 아니다. '만약' 인력감축을 막지 못하면, 이 다크투어는 영원히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 한 명만 더 있어도 시민, 장애인 등, 그 누구든지 길에서 죽을 가능성은 줄어든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응원이 필요한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향진 기자의 블로그 <이향진 기자의 산재 로그온>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