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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담당 편집기자로 일하며 더 좋은 제목이 없을까 매일 고민합니다. '우리들의 삶'을 더 돋보이게 하고, 글 쓰는 사람들이 편집기자의 도움 없이도 '죽이는 제목'을 뽑을 수 있도록 사심 담아 쓰는 본격 제목 에세이. [편집자말]
제목의 이해 18회 "책 표지는 '디자이너의 독후감', 제목은요?" 글에서 "제목에 대해 어떤 별명을 지어주고 싶은가요? 그 별명에 제가 완전 '관심' 있습니다"라고 썼다. 그 질문에 딱 한 명이 응답해 주셨다. 
 
창문이다. 작가의 생각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 환한 빛으로 맞아주면 책표지를 들추게도. 마음을 끌지 못하고 차가우면 선뜻 펼쳐볼 마음이 안 생기거든요....(이하 생략)

"마음을 끌지 못하고 차가우면 선뜻 펼쳐볼 마음이 안 생긴다"는 문장을 거듭 천천히 읽으면서 '제목에도 기분이 있다면'이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제목에도 기분이 있다면? 기분이 있을까? 있을 것 같은데? 그럼 그걸 한 번 써보자, 해서 또 이렇게 하나의 글을 써본다.

기분이 드러나는 제목
 
 기분이라고 말할 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기분이라고 말할 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 픽사베이

먼저 '기분'이라는 단어의 뜻을 생각해 봤다. 기분은 뭘까. 기분이라고 말할 때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이렇게 막상 그 의미를 따져보면 태어나서 처음 듣는 말처럼 생소하고 낯설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사전을 찾는다. 머리로 생각하는 단어의 뜻과 사전에 정의된 뜻을 맞춰보는 게 은근히 재밌기 때문이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막상 내가 입으로 설명하려면 어려운 단어가 얼마나 많던지. '이게 이런 뜻이었다고?' 하며 놀라게 될 때도 있고. 사전에서 기분은 이렇게 정의되고 있다.
 
1. 명사 대상·환경 따위에 따라 마음에 절로 생기며 한동안 지속되는, 유쾌함이나 불쾌함 따위의 감정.
2. 명사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나 분위기.

이런 설명은 사실 감이 잘 안 온다. 그래서 기분이 뭐라는 건지. 더 알쏭달쏭하다. 그때 '어린이 지식백과'가 눈에 띈다. 기분이란 단어를 어린이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할까 싶어 내용을 들여다봤다.
 
기분[feeling, mood] (천재학습백과 초등 국어 용어사전)
어떤 일에 대해서 생기는 마음의 상태를 기분이라고 해요. 감정이나 느낌도 기분과 비슷한 말이지요. 즐겁다, 심심하다, 놀랍다, 부끄럽다, 슬프다와 같은 말들은 모두 마음을 나타내는 말, 즉 '기분'을 나타내는 말이랍니다.
[비슷한말] 감정이나 느낌. 

역시 쉽다. 쉽게 쏙 이해된다. 기분이 뭔지 이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펼쳐놓고 보니 확실히 알겠다. 제목에도 기분(혹은 감정)이 있다! 이런 제목들이 그렇다.

우리는 왜 전두광을 전두환이라 부르지 못하나

지난 연말 영화 <서울의 봄>이 화제였다. 관객 수가 천만을 향해 가고 있을 무렵 보게 된 글이다. 누가 봐도 영화 속 인물 전두광은 전두환인데,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명예훼손으로 처벌하는 한국의 법체계'를 피해 가기 위해 전두환으로 부르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거다.

나는 분노한다

시리즈 타이틀인데 대놓고 '분노한다'라고 말한다. 20대 청년이 정치 현수막 과열 사태를 보고 쓴 '동네 엉망으로 만드는 정치인들... 이 현수막 좀 보세요', 프랜차이즈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방관하는 국가를 지적하는 '평생 모은 돈 한순간 빼앗겨... 유명브랜드가 이래도 됩니까', 보수 정권의 언론 장악을 비판하는 "이게 뉴스냐"... 사장 바뀐 이후 KBS는 어떻게 바뀌었나까지. 따로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글쓴이의 화나고 어처구니없는 기분을 제목 한 줄에서 느낄 수 있다.

한국시리즈는 TV로 만족... 노년의 야구광은 서럽습니다

오랜 야구팬이지만 '온라인 예매' 앞에서 작아지는 노인의 현실을 담은 글로, 제목만 읽어도 서러운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공감하는 동년배들은 누구라도 눌러 볼 만한 제목이 아니었을까. 

이 외에도 알고 보면 그게 다 감정이 드러나는 제목이었구나 싶은 문장은 지금 포털 사이트 뉴스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날의 기분과 감정이 표정에 다 드러나는 사람처럼 좋으면 좋은 대로, 화나고 억울한 대로, 슬프고 비통한 감정을 담은 제목들. 그걸 마주하고 있자면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든다.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한 현실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사람들이 뉴스 기사를 굳이 챙겨보지 않는 이유가 어쩌면 보고 싶은 걸 더 많이 보고 싶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감정은 피하고 싶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하지만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인생을 살면서 좋은 일만 보고 듣고 경험할 수만은 없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폴 에크먼이 인류의 보편 감정으로 꼽은 '기쁨, 슬픔, 혐오, 분노, 놀람, 공포'를 시시때때로 겪으며 사는 게 인생이다. 그 외 수많은 다른 감정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면에서 보자면 뉴스 역시 인간의 삶을 다루는 일이기에 감정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제목이 글의 얼굴이라면 그 표정에 다양한 감정을 불어넣어 독자에게 끌리는 혹은 독자가 궁금하게끔 포장하는 것도 나의 일일 테고.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제목은 독자가 글로 들어가기 전 일종의 문 역할을 한다.
제목은 독자가 글로 들어가기 전 일종의 문 역할을 한다. ⓒ 픽사베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제목의 이해 20회 "20년 차 편집기자가 물었더니... AI의 뭉클한 답변" 글에서 인공지능(AI) 편집기자가 나의 여러 질문에 공통적으로 답한 내용이 있었다. 바로 '감정'에 대한 것이었다. 

"제목에 대해 시민기자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뭘까?"라는 질문에는 "감정과 호소력(글의 제목이 감정과 호소력을 담아내는지 여부를 궁금해한다)"이라고, '감정에 호소하는 제목'을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감정에 호소하는 제목은 독자의 감정적인 반응을 자극하여 글을 읽게 만들고 관심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좋은 제목은 뭐라고 생각해?'라는 질문에는 '감정적인 연결과 공감(긍정적인 감정이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단어나 문구를 사용하여 독자들과 감정적인 연결을 만듦)'이라고 답했고, 편집기자가 좋은 제목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게 있다면 '긍정적인 감정과 호기심 유발(긍정적인 감정과 호기심은 독자의 관심을 끌고 기사를 읽도록 유도합니다. 그것을 유발하는 단어, 문구, 질문 등의 활용 방법에 대해 안내해 주세요)'이라고 말했다. 

정리하면서 다시 읽어보니 제목과 감정(기분이나 느낌으로도 말할 수 있겠다)은 좋은 시너지를 내는 파트너 같다. 잘 다루면 독자의 시선을 끌 수 있으니까. 논쟁적인 사건이나 이슈가 터졌을 때 딱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과감하게, 감정을 담아 지은 뉴스 제목을 보면 홀리듯 들어가게 된다는 독자의 마음도 이런 이유일 테다.

반면 제목이 감정이나 기분을 드러내지 않을 때도 있다. 사회생활을 오래 하면 자연스럽게 사회적 가면을 쓰게 되는 것처럼 제목도 그럴 때가 있다. 불안을 조장하지 않고, 선동하지 않는 노력들이 그렇다. 특히나 기사와 같은 공적인 글에서는 더욱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물론 반대로 하는 사람도 있다. 불안을 조장하고 선동하는. 독자가 제목에 선동당하지 않으려면 기사의 내용을 끝까지 확인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짜뉴스가 많아졌지만 귀찮고 바빠서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고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다. 그래서 더욱 출처나 원문을 확인하며 읽는 습관이 점점 더 강조된다.

제목은 독자가 글로 들어가기 전 일종의 문 역할을 한다. 열어 볼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좋은 문지기가 되고 싶다. 나아가 사는이야기를 편집하는 사람으로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제목을 보고 글을 읽은 독자가 '이런 글은 나도 한번 써볼까?' 하는 마음을 품어 보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독자에서 쓰는 사람으로, 함께 읽고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내가 편집기자로 일하며 바라는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쓰는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도 함께 커졌음은 물론이다. 늘 그렇듯 함께 쓰고 읽는 2024년이 되길 소망한다.

#제목의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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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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