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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마을에서 차안에서 그린 그림이다. 스케치북 2장을 붙여 그렸다. 180도 파노라마 시점의 그림이 되었다. ⓒ 오창환
 
그림과 사진이 다른 점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측면이 있겠지만 회화적인 면에서 본다면 이렇다.

사진은 아주 짧은 시간(예를 들면 100분의 1초)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그것을 정지시켜서 만든다. 반면에 그림은 한 순간의 포착이 아니고, 그림 그리는 시간이 쌓이고 포개져서 만들어진다. 화가는 대상을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계속 바라보면서 그리게 되는데, 이렇게 화가가 바라보는 시간을 차곡차곡 쌓은 결과가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화가의 시간이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진은 하나의 렌즈로 한 곳에 순간적으로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정확하게 소실점이 모아진다. 반면에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시점으로 대상을 보기 때문에 사진과 달리 정확한 소실점이 형성되지 않는다.

인간의 눈, 카메라의 눈

사진을 찍어서 그것을 그리게 되면 카메라의 눈이 인간의 눈을 대신하게 된다. 그것은 시간의 축적이라는 그림의 본질에서 보면 많이 아쉽다. 화가가 대상을 오랫동안 보고 그리는 것을 활어회라고 한다면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생선통조림이라고나 할까.
 
양지마을 전경. 오른 쪽에 수락산이 보인다. 계획된 달동네라 한 쪽에 주차를 하고도 차가 지나다닐 수 있다. ⓒ 오창환
 
일요일 아침 어반스케치 모임인 '선데이서울'이 이번 주에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 양지마을에서 모이기로 했다. 

양지마을을 비롯한 당고개역 인근의 달동네들은 1960년대 서울의 판자촌을 철거할 때 정부가 준 부지에 형성된 마을이다. 이 마을들은 무질서하게 형성된 여느 달동네와 달리 도시 계획에 입각하여 만들어진 '계획적인 달동네'다. 원래 8평에서 10평 넓이의 집 4개를 붙여 사각형으로 주택부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차로 동네를 돌아다니기에 무리가 없다.

재개발 얼마 남지 않은 곳을 그림으로 남기다

당고개역 인근의 마을들이 이미 많은 지역이 재개발이 되었다. 동네 주민들의 말씀을 들으니 양지마을도 재개발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아침 8시 집결인데, 날씨도 춥고 대중교통도 불편해서 차를 갖고 갔다. 외곽순환도로를 이용하면 집에서 그리 먼 거리는 아니다. 상계 3동 4동 주민센터 뒤쪽으로 올라가니 양지마을이 나온다. 먼저 온 스케쳐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반갑게 인사를 하고 나도 그림 그릴 곳을 찾았다.

그런데 날씨가 워낙 추워서 그냥 차 안에서 그리기로 했다. 차에서 그리는 경우 따뜻해서 좋은 반면, 멋진 풍경이 있는 곳에 주차할 곳을 찾기 어려운데 마침 좋은 풍경이 있는 자리를 발견하고 차를 세웠다. 이 마을 이름이 양지마을인 이유는 수락산 자락 남쪽 기슭에 위치해 있어 해가 잘 들기 때문일 것이다. 건너편에는 불암산이 보이고 불암산 기슭의 또 다른 달동네와 그 달동네를 일부 개발한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차에 앉아서 핸들이며 대시보드며 룸미러 등 자동차 안과 창 밖의 불암산과 양지마을 전경을 그렸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보니 스케쳐 두 분이 앉거니 서거니 하며 불암산 자락을 그리고 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추워진 날씨 때문에 나처럼 차에 동승해서 그림을 그리는 스케쳐가 눈에 들어온다. 이 모든 것을 한 장에 그리니까 나의 그림은 자동차 내부와 외부가 보이는 180도의 파노라마 그림이 되었다.

그림은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을 평면에 옮기는 것이고 그렇기에 '카메라의 눈'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다. 그 점이 바로 그림의 매력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인간의 눈으로 대상을 보는 원칙에 가장 충실한 그림이 어반스케치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어반스케치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 점인 듯하다.

첫 번째 그림을 마치고 모둠 사진을 찍었다. 다들 너무 떨어서 당고개 인근의 칼국수 집에 가서 이른 점심을 먹고 다시 양지마을로 올라가서 한 장씩 더 그리고 해산했다.
      
경인미술관 입구에 보이는 여인 석상을 잉크 그림으로 10분만에 그렸다. ⓒ 오창환
 
며칠 전에는 어반스케쳐인 송인향님 개인전을 보러 인사동 경인미술관으로 갔다. 경인미술관은 인사동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갤러리로, 1983년 설립된 이래 예술인의 문화공간으로도 외국인들의 관광 명소로도 널리 알려진 곳으로, 총 550 여평의 대지위에 6개의 전시장이 있다.

송인향님은 경인미술관에서 가장 작은 전시관인 아틀리에 전시실에서 개인전을 했는데 무려 2년 전에 그 전시실을 계약하였다고 한다. 주부이자 엄마인 인향님이 바쁜 가운데서도 그린 열정적이고 실험정신이 가득한 그림들을 보고 작은 감동이 밀려왔다. 
 
경인미술관 파고라에서 여인석상 뒤에서 그린 그림. 파고라 난간에 가려진 부분은 펜선으로만 처리했다. ⓒ 오창환
 
왼쪽은 경인 미술관 입구에 있는 여인 석상. 오른쪽은 파고라에서 여인 석상을 그리는 과정 사진이다. 이렇게 여인 석상의 뒤에서 그리면 그림속의 여인이 화가의 눈을 대신한다. ⓒ 오창환
 
대상을 보는 방식, Ways of Seeing 

경인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만나게 되는 풍만한 여인 석상이 있다. 언젠가 한번 그려보고 싶었는데 송인향 님 전시를 보고 여인 석상 뒤의 파고라에서 스케치 북을 펼쳤다.

파고라의 프레임을 일부 그리고 여인의 뒷모습을 그렸다. 이렇게 그리면 그 여인의 시야가 작가의 시야를 대신하는 구도가 된다. 유명한 손만두집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 바닥에 나뒹구는 붉은 낙엽들이 보인다. 게다가 전시 중인 인향님 스티거를 내 그림 위에 붙이니까 마치 내가 지붕 위에 고양이를 그려 넣은 것 같다. 작은 그림이지만 스토리가 있다.

나는 파고라에서 앞을 보고 그리기도 했지만 목을 빼고 파고라 난간 아래를 보고 석상의 아래 부분도 그렸다. 이런 것이 카메라의 눈과 달리 화가의 눈으로 보고 그리는 그림이다. 단 파고라와 겹치는 부분은 채색을 하지 않고 펜선으로만 처리했다.    

나는 그림 그릴 때마다 대상을 보는 방식(Ways of Seeing)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집착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또한 그림 그리는 재미이기 때문이다. 
태그:#어반스케쳐스, #양지마을, #경인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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