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수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다. 9월 발표에 따르면 올해 세수가 예산보다 59조 원이 덜 걷혔다. 10월 한국은행에서 국회로 넘긴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한국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은 113조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유는 경기침체 탓이라고 하지만 법인세와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인하, 반도체 산업 시설에 투자한 대기업에 대한 감세 등의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헌데 정부는 복지와 공공 인프라 지원 예산 삭감으로 이 위기를 벗어날 모양이다. 2024년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 중에서도 특히 약자와 노동자를 돕는 공공 인프라에 대한 예산삭감이 몹시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건복지부는 2024년 사회서비스원 운영 예산 중 지자체 보조금 148억 3400만 원을 삭감하였다. 고용노동부에서 민간위탁을 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산하 지역 거점 센터는 전국에 9곳, 소지역센터는 35곳이다. 올해 정부 지원 예산은 71억 800만 원이지만, 내년부터는 전액 삭감했다. 지방 고용노동관서와 산업인력공단을 통해 직접 수행하는 방식으로 개편해 운영한다는 입장이지만 이에 배정된 예산은 기존 예산의 절반에 불과하다.
고용노동부가 민간위탁으로 운영하는 전국 19개 고용평등상담실 역시 예산 12억1500만 원 전액을 삭감하고 8개 청과 지청에서 5억 남짓한 예산으로 담당자 1명씩을 채용하여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3개 분야의 사업 계획과 예산을 살펴보면 정부는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를 위해 일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 어처구니없는 2024년 사업 계획과 예산 앞에 망연자실할 이들은 돌봄이 필요한 이들, 일자리를 잃게 될 돌봄노동자, 머나먼 이국 땅에서 도와줄 이 하나 없게 될 외국인 노동자, 직장에서 성차별과 성희롱을 당하고 상의할 이가 없는 여성노동자들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열린 사회보장전략회의에서 '사회서비스 시장화, 산업화하고 경쟁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보건복지부 블로그에서 말하는 사회서비스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지만, 민간기업들은 해당 서비스의 저수익성 때문에 참여하지 않는 복지서비스"이다.
원래 수익이 날 수 없는 사회서비스를 놓고 시장화, 산업화하고 경쟁체제를 도입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사회서비스는 정부가 재정적 마이너스를 각오하고 국민의 세금을 써서 깔아 놓는 사업이다. 수익을 바라고 민간에서 운영하게 되면 서비스 이용자들에게 해가 가거나 노동자에 대한 착취, 혹은 사각지대가 늘어나는 결과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기존에 민간위탁으로 운영되고 있는 사회서비스 운영 방식 때문에 돌봄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을 감내해야 한다. 시간제 호출노동으로 운영되는 돌봄 일자리를 양질의 일자리로 만들기 위해, 사회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만든 것이 사회서비스원이다. 이는 정부의 당연한 역할이며 오히려 사회서비스원을 확대해야 마땅하다. 헌데 이런 사회서비스원의 운영이 불가능한 예산을 책정한 것이다. 이는 정부가 스스로 역할과 책임을 포기한 것에 다름아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대표입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11,12월호 '女性여성女聲' 꼭지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