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9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9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국방부의 '채 상병 사건' 축소 시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연합뉴스>가 16일 보도했다.

국방부 장관을 밀착 수행하는 군사보좌관이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해병대사령관에게 '수사 의뢰 대상을 줄이라'는 취지로 사실상의 지침을 줬다는 사실이 텔레그램 대화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이는 그동안 '누구는 넣고 누구는 빼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국방부의 주장과는 정면 배치되는 내용이다. 

<연합뉴스>는 중앙군사법원에 제출된 자료를 토대로,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군사보좌관이었던 박진희 육군 준장(현재 소장)과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해병대 수사단의 결과 보고와 경찰 이첩, 이른바 '항명 사태'가 있었던 지난 8월 초 텔레그램을 통해 주고받은 메시지를 분석해 재구성했다.

자료에 따르면 박진희 군사보좌관은 지난 8월 1일 낮 12시 6분 김계환 사령관에게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 의뢰,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주십시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군사보좌관이 메시지를 보내기 이틀 전(7월 30일) 해병대 수사단장이었던 박정훈 대령은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명시해 경찰에 이첩하겠다는 대면보고를 하고, 이 장관으로부터 결재를 받았다.

보고와 결재를 받은 뒤 이틀이 지난 시점에 군사보좌관이 '경찰에 수사 의뢰할 인원을 줄이는 방향'으로 검토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군사보좌관이 수사 의뢰 대상에서 제외를 검토해달라고 한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사단장 등 상급자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김 사령관은 "지금 단계에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나도 부하들 전부 살리고 싶은데 아쉽습니다"라면서 즉답을 피했다.

법무관리관-수사단장 통화 후 군사보좌관이 사령관에 메시지 보내

군사보좌관과 해병대 사령관 사이에 메시지가 오가기 약 2시간 전인 1일 오전 9시 43분에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통화가 있었다. 박 대령은 통화 내용에 대해 "당시 법무관리관이 '직접적인 과실이 있는 사람으로 (혐의자 적시 범위를) 한정해야 한다'고 했다. 외압으로 느꼈다"고 폭로한 바 있다.

그런데 군사보좌관이 당일 오전 10시 28분 "수사단장은 법무관리관 개입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는 메시지를 김 사령관에게 보낸 것으로 확인된다. 법무관리관과 수사단장의 통화 후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김 사령관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당시 박진희 군사보좌관은 우즈베키스탄 출장 중이던 이종섭 장관을 수행하고 있었다.

준장 계급인 군사보좌관이 해병대사령관(중장)에게 사실상 '지시'로 해석되는 말을 하는 것은 어색하지만, 국방장관과 거의 24시간 동행하고 분신처럼 움직이며 수행비서 역할을 하는 군사보좌관의 언행은 실질적으로 '윗선의 의사'로 여겨진다는 것이 군 안팎의 시선이다.

박 전 보좌관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을 사령관님에게 이야기한 것이고 장관님께서 말씀하신 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어 "기존에 민간에서 변사 사건이 발생할 때 처리했던 걸 보면 어떤 것은 수사 의뢰하는 것도 있고, 비위사실 통보라고 해서 징계만 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그런 걸 생각해서 사령관님에게 물어봤다"고 주장했다.

사건 기록 경찰 이첩 미루기 위한 명분 만들어 제시한 정황도
 
'국방부 검찰단장 고발' 공수처 출석하는 박정훈 전 수사단장 국방부 검찰단장 등을 고발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왼쪽)이 9월 14일 오전 경기도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자수사처(공수처)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채 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해임된 박 단장은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과 유재은 법무관리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국방부 검찰단장 고발' 공수처 출석하는 박정훈 전 수사단장국방부 검찰단장 등을 고발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왼쪽)이 9월 14일 오전 경기도 과천 고위공직자범죄자수사처(공수처)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채 모 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다 해임된 박 단장은 김동혁 국방부 검찰단장과 유재은 법무관리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 연합뉴스
 
이밖에 사건 기록 경찰 이첩과 관련, 군사보좌관이 경찰에 넘기는 날짜를 미루는 작업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어 해병대사령관에게 제시한 정황도 확인된다.

8월 1일 오전 10시 17분 박 보좌관은 "사령관님! 경찰과 유족 측에 언제쯤 수사 결과를 이첩한다고 했는지요? 조만간 이첩은 어려워보여서요"라고 문의했다. 이에 김 사령관은 "계획된 것은 내일(8월 2일) 오전 10시입니다. 법무관리관실과 이야기하여 국방부 지침을 받을까요? 조만간 이첩이 어렵다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이 고민이 됩니다"라고 되물었다.

당초 해병대 수사단은 이종섭 장관으로부터 결재를 받은 사건 기록을 8월 2일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장관은 7월 31일 우즈베키스탄 출장 출국을 앞두고 돌연 사건 기록의 경찰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군사보좌관은 해병대사령관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지난번 보고가 중간보고이고, 이첩 전 최종 보고를 해야 된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7월 30일에 있었던 장관 보고를 '중간보고'라고 해 두고, 이후 별도의 '최종보고'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제시한 것이다.

김 사령관은 해외 출장을 떠난 장관이 돌아오면 이첩 관련 지침을 받겠다면서 "(이첩을 미룰 경우) 추측성 기사, 외압, 수사 미진 등 보도 예상. 유가족에게도 설명해야 하는데 어려움 있음"이라고 메시지를 보내며 난관을 우려했다.

해병대 수사단은 김 사령관이 8월 1일 군사보좌관에게 답변한 대로, 다음날인 8월 2일 오전 8명의 혐의가 적시된 원래 수사 자료를 경북경찰청에 인계했다. 하지만 같은날 오후 국방부 검찰단은 경찰로부터 자료를 회수해 갔다. 박정훈 대령은 수사단장 직에서 보직해임된 후 군 형법상 항명과 상관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군사보좌관과 해병대사령관 사이에 오간 메시지를 살펴보면 김계환 사령관은 일관되게 해병대 수사단의 결론에 문제가 없고, 오히려 폭넓게 조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수사단 결과 다시 확인했는데 문제점 미식별"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8월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8월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김 사령관은 8월 1일 오후 박 보좌관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수사단 수사 결과를 어제와 오늘 다시 확인했는데 문제점 미식별"이라고 썼다. 해병대수사단의 수사 결과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김 사령관은 같은 날 다른 메시지에서 "경찰 수사에서 혐의자가 추가·제외될 수도 있는데"라며 "분명한 것은 최초 시작 단계에서 군 수사가 부실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공정한 수사만이 최소한의 예의라는 점"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최종적인 혐의자는 수사권을 가진 경찰 수사로 가려지는 만큼 군 수사 단계에서는 부실함 없이 '제 식구 감싸기' 등의 의혹을 최대한 없애는 쪽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군사보좌관은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의뢰, 지휘책임 관련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주십시오"라고 압박했다.

여기에도 김 사령관은 "나중에 피의자 신분이 안 되었을 때 논의해야 할 부분입니다. 경찰 조사 이후입니다"라고 답했다. 수사의뢰 대상자 8명 중 경찰 수사에서 범죄 혐의를 벗는 인원이 나올 경우 그때 가서 군 내부 징계를 검토하면 된다는 취지다.

장관실 가까이서 날아오는 메시지에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던 김 사령관은 그러나 외압·항명 논란이 불거진 뒤로는 박정훈 수사단장이 자신의 지시사항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25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서 김 사령관은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후속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는 군의 엄정한 지휘와 명령체계를 위반하는 군 기강 문란 사건까지 있었다"며 박정훈 대령을 비난했다.

#채상병#김계환사령관#박진희보좌관#해병대수사단#박정훈대령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