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계묘년 토끼해도 토끼걸음처럼 총총 저만치 갑니다. 새해 인사를 나눈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만큼 지났나 싶습니다. 올 한 해도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을 위해 사천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두 마리 도끼를 잡을 수 있습니다.
각종 전시와 자연 풍광이 일석이조처럼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마당 쓸고 엽전 줍고...
먼저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 중 하나인 창선-삼천포대교가 보이는 삼천포대교공원 내에 차를 세우고 사천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하늘을 향해 가리키는 손가락들이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처럼 싱그러운 벽화가 먼저 눈길을 끕니다.
사천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빅마마 송년 콘서트'를 비롯해 춤추는 시간탐험대라는 댄스팀의 공연 안내가 한쪽 벽면에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찾은 날은 <2023 사천시 공예협회 제7회 정기회원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전시회장에 발을 들여놓자, 각종 공예품이 우리의 눈길과 발길을 붙잡습니다. 먼저 동아시아 국제전쟁(임진왜란) 때 거북선을 최초로 출전시킨 <사천해전>의 고장답게 전투 중에 사용하는 각종 신호용 연을 활용한 공예품 <이충무공 전술신호연(김명운 작)>이 우리를 반깁니다.
연꽃 속의 연, 슬로우 9090이 벽면에서 우리를 한 걸음 더 다가오게 이끕니다. 이 곁을 지나자 아기자기한 <전술 연이 나가신다(장혜경 작)>이 다시금 전술 연을 구경하게 합니다.
일상에 찌든 우리에게 반갑다며 당장이라도 손을 맞잡을 듯 <막걸리 한잔(권외득)>을 권하는 술잔이 우리의 긴장을 풀어줍니다.
막걸리 한 잔을 마신 듯 배가 부르고 취흥이 올라옵니다. 그런 우리를 안아주듯 <포옹(송선상 작)>이 포근하게 반깁니다. '밥을 먹었느냐?' 묻는 듯 <한국인의 밥상(김홍배 작)>이 우리를 식구로 만듭니다.
식사(?)를 마친 우리에게 차 한 잔을 권하는 <찻사발(김홍배 작)>이 이어 나옵니다. 찻사발 속 하얀 거품이 마치 소용돌이치듯 물속으로 즐겁게 이끄는 기분입니다.
자수 문양 가께수리와 줌치 등이 허리를 숙여 눈을 마주치게 합니다.
항아리인데 표면에 나뭇가지가, 뿌리가 엉켜있는 듯한 울퉁불퉁한 결들이 있는 <흔적(신은연 작)>이 고단한 우리네 일상 속 흔적을 엿보게 합니다.
고단한 일상 속 흔적을 지나 유리정원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습니다. 달달한 커플의 형상에서 덩달아 핑크빛 따스함을 가득 채웁니다. <참 좋다(김혜은 작)>는 보는 동안 그저 마음에 평온이 깃들게 합니다. 참 좋은 기분이 잔잔하게 일렁입니다. 덕분에 걸음을 옮기는 발이 가벼워집니다. 민화 속에서 한결 부드럽게 그림으로 들어갑니다.
벽면 한가득 채운 천연염색의 작품들은 황홀합니다. 고운 빛이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듯합니다.
아쉬움을 담고 전시장을 나가려는 데 <출근(김도우 작)>하려는 이들에게 좋은 가방이 직장인들의 출근길을 응원합니다. 저 가방과 함께 출근하고픈 마음이 앞섭니다.
미술관을 기분 좋게 나와 바다를 향합니다. 각종 행사 등이 열리는 수상 무대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무대 바닥에는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주위 바다는 차분합니다.
늘 봐오던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한 지도가 역방향으로 보입니다. 이곳이 바다로 뻗어가는 중심지라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공원 한쪽에 있는 삼천포 아가씨 노래비 옆에 장구 잘 치는 트로트 가수 박서진 조형물과 사진 찍기 좋은 포토 존이 있습니다. 삼천포 아가씨의 옛 노래 너머로 이제는 흥겨운 장구 장단에 덩실덩실 어깨춤이 절로 납니다.
바닷가를 걷습니다. 남해의 한적한 바닷가를 곁에 두고 홀로 걷는 길, 걸음이 길어질수록 바다의 짭조름한 내음이 마음 깊숙이 들어옵니다.
해안 산책로를 걷습니다. 주위의 고요한 풍광을 가슴에 안고 걷습니다. 일상 속 찌꺼기는 어느새 사라집니다. 어느 순간 해가 바다 위에 사뿐히 내려앉는다면 눈이 멀 정도로 아름다운 '실안 낙조'가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질 듯합니다.
올 한해도 묵묵히 잘 견뎌 왔다고 바다가 그린 풍경이 위로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스담스담하며 걸었습니다. 사천미술관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명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