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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신부는 내포 천주교회의 성격에 대해 “천주교가 가장 먼저 일반대중과 피지배층으로까지 토착화된 곳은 내포 지역”이라며 “토착화 이후, 내포 지역 곳곳에는 평민이 중심이 된 신앙 공동체(교우촌)가 형성됐다”고 강조했다.
 김성태 신부는 내포 천주교회의 성격에 대해 “천주교가 가장 먼저 일반대중과 피지배층으로까지 토착화된 곳은 내포 지역”이라며 “토착화 이후, 내포 지역 곳곳에는 평민이 중심이 된 신앙 공동체(교우촌)가 형성됐다”고 강조했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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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 천주교회를 빼놓고는 한국천주교회를 이야기할 수 없다. 천주교의 슬픈 역사의 현장."

23일 홍성 홍주성역사관에서는 '내포 지역의 천주교 전래와 유적'에 관한 주제로 8번째 강좌가 열렸다.

이날 강좌에는 내포교회사연구소장이자 당진 솔뫼성지 김성태 신부가 내포 지역 천주교 전파에 대해 강의했다. 내포(內浦)는 충남 서북부지역인 서산·예산·홍성·태안·당진과 아산·보령 일부 지역을 말한다.

김 신부에 따르면 한국천주교회는 선교사 없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천주교가 전파되어 창설됐으며, 18세기 말에 이르러 종교적 신앙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김 신부는 "내포 지역은 슬픈 역사의 현장이다. 내포 지역 순교자들이 비참하게 처형됐지만, 더 큰 희망을 가지고 슬퍼하거나 아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내포 지역은 1784년 천주교 공동체가 형성되면서, 당시 이존창이라는 인물이 충청도에서 천주교 전파에 나섰다.

당시 천주교 입교자 50%가 충청도로, 천주교에서는 천민이었던 이존창을 '내포의 사도'라고 부른다.

특히 천주교회는 초기 양반으로 시작됐지만, 박해가 시작되면서 평민 계층으로 확대된 민중의 교회로 바뀌게 됐다.

김 신부는 내포 천주교회의 성격에 대해 "한국 최초의 천주교회는 소수의 지식인-지배층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창설됐다"면서도 "천주교가 가장 먼저 일반대중과 피지배층으로까지 토착화된 곳은 내포 지역"이라며 "토착화 이후, 내포 지역 곳곳에는 평민이 중심이 된 신앙 공동체(교우촌)가 형성됐다"고 강조했다.

실제 당진 신리는 주민 400여 명 모두가 신자인 조선 최대의 교우촌이 있었다.

뿐만아니라, 홍주, 덕산, 천안 등지에서 양인이나 천인 출신 신자들이 공동체 중심으로 이뤄진 신분적 특성이 있으며, 천주교 기본교리인 '사랑'으로 사회적 평등을 실천하는 등 내포 천주교만의 특성이 있다고 김 신부는 설명했다. 실제, 당시 양반 신자 중에는 노비를 아무 조건 없이 풀어주기도 했다.

한국천주교회에서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내포 지역은 신자가 많으면서, 천주교 박해 당시 순교자와 성지가 가장 많은 곳이다. 대표적으로 홍성 홍주 성지는 내포 지역 첫 순교와 최대 순교지이다.

이에 대해 김 신부는 "1784년 한국천주교가 창설되고, 예산 여사울 출신 이존창이 내포의 첫 신자가 됐다"면서 "이후 천주교 박해 기간 가장 많은 천주교 신자가 충청도 내포에서 나왔다"라고 말했다.

또한 신앙을 위해 목숨 바친 순교자가 가장 많아 '순교자의 온상, 조선의 카타콤바(Cagacomba, 로마시기 그리스도인들의 지하 무덤이자 박해의 피난처, 비밀교회로)'로 불린다.

내포 지역의 중요 천주교 성지와 사적지는 예산 여사울 이존창 생가터, 당진 솔뫼성지, 당진 신리 더블위주교 유적, 서산해미 순교 성지, 홍성 홍주 순교 성지가 있다.

특히 천주교 박해 이후 충청도 최초의 성당이자 내포 천주교회 재건의 상징인 당진 합덕성당, 아산 공세리 성당, 서산 상홍리 공소외 많은 성지가 있다.

마지막으로 김 신부는 "내포 지역만의 천주교 역사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겨달라"고 말했다.

한편 홍주성역사관은 지난 6월부터 모두 8차례 지역 역사와 관련한 박물관대학을 열었으며, 이번 강좌를 끝으로 2023년 박물관 대학 강좌를 마쳤다.
 
김성태 신부는 내포 천주교회의 성격에 대해 “천주교가 가장 먼저 일반대중과 피지배층으로까지 토착화된 곳은 내포 지역”이라며 “토착화 이후, 내포 지역 곳곳에는 평민이 중심이 된 신앙 공동체(교우촌)가 형성됐다”고 강조했다.
 김성태 신부는 내포 천주교회의 성격에 대해 “천주교가 가장 먼저 일반대중과 피지배층으로까지 토착화된 곳은 내포 지역”이라며 “토착화 이후, 내포 지역 곳곳에는 평민이 중심이 된 신앙 공동체(교우촌)가 형성됐다”고 강조했다.
ⓒ 신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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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홍성군, #내포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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