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다른 독서회들과 활동 내용을 공유하고자 2022년 결성한 군산북클럽네트워크는 2023년 하반기부터 군산대학교 국립대학육성사업 지원을 받아 인문학창고 정담에서 정담북클럽의 [오픈북클럽]을 진행하고 있다. 16주간 이어지는 정담북클럽에는 독서회 회원이 아니어도, 해당 책을 읽지 않았어도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물론 책을 읽고, 독서회 차원으로 참여한다면 더욱 좋다.[편집자말] |
여덟 번째 정담북클럽은 군산북클럽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있는 독서회들이 각각의 방식으로 진행하고 초대 손님을 모셨던 '오픈북클럽'이 끝나고 본격적으로 정담북클럽의 '초대방 손님과 이야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강연자와 청중으로, 연단과 객석으로 갈라지는 대신 같은 공간에서 '정담'을 나누고자 기획하였고, 앞으로 여러 손님을 다양한 방식으로 모실 예정이다.
지난 23일 오후 7시 첫 번째 손님인 김연수 작가가 군산에 도착했을 때, 폭우가 쏟아졌던 최근 몇 주의 목요일들과 달리 비가 오지 않았다. 바람이 불었다.
김연수 작가는 2021년 10월부터 2023년 6월까지 독자를 직접 만나 미발표작을 낭독했다. 그 작품들은 최신작 <너무나 많은 여름이>(2023, 레제)로 엮여 나왔다. 책 마지막 쪽에는 제주도 대정읍의 어나더페이지에서 창원의 주책방까지 그가 방문했던 22곳의 장소와 방문 일자가 기록되어 있다.
빼곡한 걸음의 기록을 하나씩 짚으며 그가 만났던 얼굴을 상상한다. 작가의 작품에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던 사람들이 담겨 있다. 그의 목소리를 듣는 우리도 그의 작품에 실려 다른 얼굴을 만나게 되겠다.
정담북클럽에서 그가 낭독한 작품은 '어쩌면 영영, 아마도 영영'과 '지금은 햇귤을 맛볼 때', 두 편이다. 작가는 직접 준비한 음악을 길이가 긴 낭독의 중간과 짧은 작품의 낭독 후에 맞춰 바로 들려주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그가 읽어주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우리는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제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었다.
낭독을 끝낸 후, 말하기를 원하지 않으면 안 해도 되겠으나 자리에 모인 분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기를, 모두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니 돌아가며 말하기로 하였다. 작가는 특히 각자 무슨 일을 하는지가 알고 싶다고 하였다. 모인 분들은 차분하게 말을 이어갔다.
작가를 만나기 위해 경남 김해에서 찾아온 분, 작가의 작품이 어려운 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아직도 고민한다는 분, 그리고 30년간 열심히 했던 일의 스트레스가 심해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고 책을 읽기 시작한 분도 있었다.
닉네임 '여행자'님은 나름대로 작품을 읽은 감상을 전한 후, 이렇게 글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하고, 함께 있는 우리에게 감사하고, 이 자리에 온 자신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작가는 자신이 꿈꾸던 자리를 만들어준 여러분에게 감사하다고 답했다.
이어지는 진지하고 재치있는 질문들에 작가는 성의를 담아 답하였다. 즐거운 '정담'을 나눌 때 그렇듯이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김연수 작가와 함께 읽은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를 읊조려 본다.
실패를 거듭한 백석이 흰 바람벽에 찍힌 글자를 읽었듯이, '작가 정체성'을 고민하던 김연수 작가가 미래를 기억했듯이, 지금 내가 어떤 이야기 속에 살고 있는지 상상해 본다. 바람이 분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무지개독서회 대표이며, 인문도시센터와 함께 정담북클럽을 공동주관하는 이야기그릇담의 대표이다. 군산 해망로에 위치한 인문학창고 정담은 2018년 군산대학교 인문산학협력센터와 LINC+사업단, 그리고 군산문화협동조합 로컬아이가 함께 위탁운영 중인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