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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똑똑한 살림을 위한 마법의 가루'를 아는지요? 과탄산소다 봉지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어제는 갑자기 더러워진 가스레인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물에 희석해 싱크대와 주변을 벅벅 닦아내니 개운합니다. 이젠 제법 살림이 늘었습니다. 세간도 늘고 일머리가 생겨났습니다.
 
인증샷. 가스레인지 청소 후
 인증샷. 가스레인지 청소 후
ⓒ 김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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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제대로 정원생활을 해보자며 이곳에 내려온 게 벌써 일 년 전이네요. 시골의 겨울, 문밖은 춥고 밤은 길더군요. 꽃밭도 텃밭도 모두 문을 닫아 한가한 시기였고, 그냥저냥 빈둥거리며 늘어지게 여유를 만끽하려 했습니다. 하루 종일 잘 수도 있고 밤새 깨어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죠. 심심함을 즐기는 것이 시골살이의 맛이라 생각했습니다.

아직 일렀습니다. 하던 일 때문에 아내가 도시로 가고 나니 당장 혼자 끼니를 챙겨야 했죠. '어떻게 되겠지' 했지만 어디 먹고사는 것이 미루어서 될 일이든가요? 집안일을 익혀야 했습니다. 밥 짓고 반찬 만들기, 설거지, 빨래, 청소. 어설픈 살림살이에 하루가 금세 갔습니다.

설거지부터 시작했습니다. 기름기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서 닦고 헹군 후 싱크대 안까지 잘 정리하고 행주도 빨아 널었죠. 주방 도구와 양념,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들의 위치를 알아두고 유통기한도 눈여겨봤습니다. 보이지 않으면 쉽게 잊히니까요.

처음엔 밥물을 맞추지 못해 질척하거나 푸슬푸슬한 밥을 억지로 삼키기도 했습니다. 내가 만든 것이니 버릴 수도 없었지요. 쌀을 씻어 밥솥에 안치면 끝이 아니었습니다. 한 끼니를 위해선 장보기부터 음식물 쓰레기 처리까지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아내가 만들어 놓고 간 반찬으로 며칠 버텼지만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없더군요. 따끈한 음식이 필요했습니다. 간편 조리식품부터 시도해 봤습니다. 요즘 워낙 다양하게 잘 나오잖아요? 몇몇 재료를 첨가해 조리해 보니 먹을 만했습니다. 자신감이 생겼어요.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뎠습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요리 몇 가지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유튜브를 들여다보며 된장찌개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일일이 재료를 씻어 칼질하고 양념을 넣고 익히고 간을 맞추고 그릇에 담아내니 뿌듯합니다. 맛이 있어요. 해보니 그렇게 요리도 늘어갑니다.

이곳에 오기 전엔 세탁기 작동법조차 몰랐습니다. 세제를 얼마만큼 넣는지, 종류별로 구분하고 빨래망은 어떻게 쓰는지 아내에게 하나하나 배웠습니다. 신입사원이 따로 없죠? 빨아서 널고 마르면 개서 정리하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때를 맞춰야 하는 일입니다. 자칫 세탁기 안에서 하루를 보내거나 비 맞고 밤샌 빨래를 마주칠 수도 있어요.

집 안팎 청소도 만만치 않아요. 아파트에선 좁은 실내가 전부지만(사실 손도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단독주택에 살게 되니 집 주변과 마당 청소가 추가 됐습니다. 창고와 수돗가, 대문 앞까지 생활의 영역이 넓어졌는데 이건 왠지 해도 티가 나지 않아요.

시골에 와서 살아보니 집안일은 기본이더군요. 태권도의 기마자세 같은 거죠. 꽃과 나무가 아무리 좋아도 나를 먼저 돌볼 수 있어야 하니까요. 정원생활을 지속하려면 건강해야 하고 그러려면 스스로를 건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사 아내가 곁에 있다고 해도 이젠 역할을 바꿀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추세가 그렇습니다.

주변 지인들의 걱정이 많습니다. 이분들은 정원에 관심이 없고 혼자 어떻게 사는지만 물어봅니다. 역시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일인가 봅니다. 혼자 사는 시골 생활, 이렇게 집안일을 배우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잘 먹고 잘 삽니다.

태그:#은퇴, #살림, #전원생활, #시골살이, #집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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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초보 뜨락생활자. 시골 뜨락에 들어앉아 꽃과 나무를 가꾸며 혼자인 시간을 즐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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