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비가 와서 35도이지만 평소 바깥온도는 42도 정도 돼요. 마치 열풍기 앞에 서 있는 느낌입니다."
지난 23일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OBS 라디오)와 전화 인터뷰를 한 정봉남 농촌진흥청 코피아 파라과이 센터장(이하 센터장)의 말이다.
우리와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남미는 지금 초여름이다. 아직 여름의 한가운데로 들어서기도 전에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9일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브라질 상파울루는 37.7도, 리우데자네이루의 기온은 42.6도를 기록하며 올해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특히 리우데자네이로의 경우 체감 기온 59.7도를 기록했다고 한다.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 공연장에서 1명이 사망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남미 폭염, 현지에서 느끼는 체감도는 어떨까. 특히 식량생산과 직결되는 농업분야 상황은 어떨까. <오늘의 기후> 제작진은 남미의 한 가운데 위치한 파라과이 현지에서 벼 품종 보급 등 농업기술 전파를 하고 있는 코피아 파라과이 센터의 정봉남 센터장을 연결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 센터장은 남미 폭염의 심각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올해 남미의 겨울은 사라졌다고.
"파라과이의 겨울은 6월에서 8월까지로 온도가 10도 정도로 내려가는 시기가 한 달 정도 됩니다. 그러나 올해는 겨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난해까지 여름철 온도가 보통 39도였는데 올해 여름은 42도까지 올라가는 상태입니다."
남미의 한겨울인 올해 8월 4일 파라과이 기상청에 따르면 수도 아순시온 기온은 최고 35도를 기록했다. 겨울이 사라진 것이다. 평소 10도 내외로 서늘하던 날씨마저 후끈 달아오른 폭염이 7~8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게 남미폭염의 상황이다. 더구나 지금은 본격적인 여름의 한가운데로 가고 있다. 강이 말라서 물고기들이 죽고 소가 먹을 풀이 없어 죽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곳 파라과이에서도 기후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지금은 비가 많이 와서 강에 물이 좀 고인 상태지만, 10월 중순 무렵에 가뭄으로 인해 아르헨티나와의 국경에 위치한 필코마요(Pilcomayo) 강이 말라서 강에서 사는 물고기들이 죽고,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잇는 원주민 공동체는 생계를 위협받고, 소들은 먹을 풀이 없어서 죽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가뭄의 원인 중 하나는 극심한 온난화이며, 지난 겨울 따뜻해서 증발률이 높았던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합니다."
온실가스 발생으로 인한 기후변화에 올해부터 시작되는 엘니뇨(태평양 수온을 높이는 자연현상)까지 더해지며 재난의 강도는 더 세지고 있다. 정 센터장은 지난 겨울 폭염과 가뭄이었다면 이제 여름철 집중 폭우와 토네이도가 찾아오면서 현지에서는 '엘니뇨가 몸통을 드러냈다'는 말이 나온다고 전했다.
"최근 11월 2일에는 산타니(Santaní) 지역에 토네이도로 인해서 집 25채가 붕괴되었고 어린이가 1명 사망했습니다. 엘니뇨로 인해 11월 초 파라과이 오리엔탈 지역 전역에 집중 폭우가 내렸는데 전문가들은 '파라과이에서 엘니뇨가 얼굴뿐만이 아니라 몸통을 보였다'고 평가했습니다. 또 다른 한 전문가는 현재 엘니뇨가 파라과이에 상륙했고 내년도 4월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이러한 남미 폭염은 전 세계 식량 수급과 연결된다. 또 빈부격차가 큰 남미에서는 없는 사람들의 생존에 직격탄이 되기도 한다. 파라과이 현지에서 5헥타아르 이하 소농들에게 종자와 농업기술을 전파하고 있는 정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내용 정리했다.
- 엘니뇨가 몸통을 드러냈다 .... 그만큼 기후위기를 온 몸으로 느끼는 곳이 남미인 것 같은데 농업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요 ?
"11월 17일 일간지 보도에 의하면, 최근 파라과이 남부지역에 내린 비로 인해 야베비리(Yabebyry) 지역의 소규모 재배 농민들은 홍수로 인해 농작물을 모두 잃었다고 합니다. 비는 농업과 목축에 의존해서 사는 약 250명의 농업인 가정에 피해를 주었습니다. 카사바, 옥수수, 채소 농장이 모두 침수되었고, 목초지의 손실로 인해 우유와 치즈 생산에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기후위기는 농촌 지역 사회, 특히 취약한 환경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 큰 위협이 됩니다. 최근의 집중 호우로 인해서 토마토 생산량이 줄어서 가격이 평년의 2배 이상 비쌉니다. 점점 더 빈번하고 강렬한 기상이변은 국민들의 식량 가용성과 식량 접근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기후위기로 인해 빈곤층은 식량 불안의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 이 나라에서 파라과이 환경에 적합한 벼 품종을 보급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배경이 궁금합니다.
"벼는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식량작물이며 파라과이에서도 쌀 소비가 많습니다. 연간 100만톤 가량이 생산되며 이 가운데 20%는 국내에서 소비합니다. 벼의 경우 대농이 재배하는 면적인 늘어나고 있지만 기존에 벼 농사를 짓던 5ha 미만의 소규모 재배 농민들이 있습니다. 쌀은 식량안보 차원에서 중요한 작물이기 때문에, KOPIA는 벼농사를 짓는 소농들에게 3년째 "CEA-5K-PUNTA" 품종을 보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파라과이는 자체적으로 육성한 벼 품종이 없어서 대부분 브라질 품종을 재배하고 있는데 환경적응성이 좋지 않아서 생산성이 낮습니다. 따라서 파라과이 환경에 적합한 벼 품종을 육성하고자 KOPIA가 국제미작연구소(IRRI)로 부터 벼 계통을 파라과이에 도입하여 협력기관과 공동의 노력으로 'CEA-5K-PUNTA' 품종을 개발하였습니다. 이 품종은 브라질 품종에 비해 수확량이 20% 이상 높아서 농업인들이 매우 선호하는 품종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협력기관에서 이 품종의 보급 면적을 지속적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 벼 품종 보급에 대한 현지 농민들 반응은?
"KOPIA 지원으로 인해서 쌀 재배 소규모 재배 농민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 소농들은 'CEA-5K-PUNTA' 품종으로 벼농사를 지을 경우 생산성도 높고 품질도 좋아서 수익성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설문조사 결과 KOPIA 지원이 끝난 후에도 대부분 벼농사를 짓겠다고 했습니다. 15년 이상 휴경지로 있던 땅을 KOPIA의 지원으로 다시 벼농사를 짓기 시작한 농가도 있습니다.
파라과이는 해외로부터 무상지원을 많이 받는 나라이지만 농촌진흥청 KOPIA처럼 농업기술을 전파해 주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파라과이 농업인들은 한국의 KOPIA를 좋아합니다. 이는 KOPIA의 노력만으로 이룬 것은 아니고 주파라과이 한국대사관을 중심으로 KOICA(한국국제협력단) 등 한국의 다른 공적개발원조(ODA) 기관과의 협력을 통하여 가능하였습니다."
- 참깨 농사를 지원한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이건 어떤 의미일까요?
"KOPIA는 파라과이에서 참깨를 재배하는 소농들을 지원하는 사업을 지난 13년 동안 했습니다. 파라과이는 기온이 높고 건조할 뿐만 아니라 적당한 강수량으로 인하여 참깨 재배에 매우 좋은 환경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현재 파라과이에서는 일본계 참깨 품종을 주로 재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 KOPIA 사업을 통하여 파라과이에 도입한 'IPTA-K07' 품종이 기존에 재배하던 일본 품종에 비해 수량도 많고 병에 강해서 농업인과 수출업자 모두에게 매우 인기가 좋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KOPIA는 파라과이에서 'IPTA-K07' 품종을 재배하는 소규모 재배 농민들의 수도 늘리고 재배면적을 늘리는 프로젝트를 추진할 예정입니다."
- 타지에서 오래 생활하실 때 어떤 어려움들이 있는지
"파라과이는 창문에 대부분 방충망이 되어 있지 않아서 모기에 많이 물립니다.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 가운데 뎅기열은 매우 흔하고 치쿤군야라고 하는 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이 있는데 이 병이 파라과이에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치쿤군야에 감염되면 어린이들은 사망하는 경우가 많고 어른들도 매우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기기 때문에 건강에 위협을 받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인 것 같습니다."
- 앞으로 계획은?
"파라과이는 열대 또는 아열대성 기후로 1년 내내 농사가 가능하고 산이 없고 모두 평지로 농업국가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은 좀 더 편안한 일을 찾고자 농업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KOPIA는 파라과이에서 농업인들에게 농업을 통해서 소득을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자 합니다. 이는 KOPIA 파라과이 뿐만 아니라 23개국에 있는 모든 KOPIA 센터가 하는 일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정 센터장은 가족이 그리워서인지 요즘 이 노래를 즐겨 듣는다며 김범수의 '집밥'을 신청했다. 그녀는 23개국에 나가 있는 코피아 센터장 중 유일한 여성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내용은 지난 2023년 11월24일 OBS 라디오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 방송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파라과이와 우리나라의 시차는 정확히 12시간이므로 생방송 전화연결 대신 23일 사전 전화연결 녹음을 해 24일 방송하는 형식으로 송출되었습니다. '오늘의 기후'는 지상파 라디오 최초로 기후위기 대응 내용으로만 매일 2시간 편성제작되고 있으며 FM 99.9 MHz OBS 라디오를 통해 경기, 인천 전역에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방송되고 있습니다. 유튜브 라이브(OBS 라디오 채널)와 팟캐스트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