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사주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손준성 대구고등검찰청 차장검사(전 대검찰청 수사정보담당관)에 대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징역 5년형을 구형했다. 공수처는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국기문란 행위를 했다"고 강조했다.
반면 손 검사는 "김웅 의원과 공모해 고발을 사주한 적이 없다"면서 "무책임한 기소"라고 반박했다.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옥곤) 심리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결심 공판에서 공수처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3년, 개인정보보호법위반·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공무상 비밀누설 등 3개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2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선거범과 다른 죄의 경합범에 대해서는 분리 선고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검사는 일반 공무원에 비해 더욱 강도 높은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고, 공직선거에 있어서는 더욱 엄격히 지킬 책임이 있다. (손 검사는) 이와 같은 책임을 망각해 검찰총장 비호와 본인 감찰 무마를 위해 범행에 이르렀다. 엄벌로 국가 기강을 제대로 세우지 않으면 검찰 권한을 남용하는 국기문란 행위가 반복될 것이다."
이날 공수처는 손 검사의 양형 이유를 설명하며 "당시 김웅에게 고발장이 전송된 것은 결국 미래통합당 명의로 고발장이 접수되도록 의도한 것"이라면서 "공직선거법상 '추상적 위험범'으로서 공무원인 피고인이 김웅을 거쳐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 부위원장인 조성은씨에게 고발장 등이 도달한 것은 선거에 영향을 끼칠 위험성이 이미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수처가 강조한 '추상적 위험범'은 행위 자체가 현실적 위험 결과를 발생시킬 필요 없이 일반적인 위험성만 노출시킬 경우 인정되는 범죄를 말한다. 고발장 및 각종 자료 전달만으로도 선거에 활용될 영향력이 충분해 결과적으로 손 검사의 행위가 21대 총선에 영향을 끼치려 했다는 의미다.
또 공수처는 "검찰 고위관계자인 수사정보정책관으로서 직무상 얻게 되는 비밀을 누설했다"며 "이는 직무를 망각하고 윤석열 총장 가족 비호와 본인 감찰 무마를 위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손 검사는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 직원들에게 '제보자X'로 알려진 지아무개씨의 실명 판결문을 열람·수집하도록 지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하지만 최후변론에 나선 손 검사 변호인은 "고발장 작성자에 대한 특정이 이 사건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임에도 공수처는 작성자를 특정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손 검사 측은 "공수처는 '손준성 보냄'에 집착해 증거가 아닌 추측과 상상을 채웠다"면서 "실패한 수사, 무책임한 기소라는 비난을 모면하기 힘들다"라고 주장했다.
손준성, 공수처 질문에 모두 답변 거부... 재판장 질문에는 답변
손 검사는 구형에 앞서 진행된 피고인 신문에서 "탄핵이 예고된 상태라 진술을 하기 어려운 점을 양해해 달라"며 공수처가 준비한 80여 개의 질문에 대해 "진술을 거부한다"로 일관했다.
이에 재판장인 김옥곤 부장판사는 손 검사를 향해 "진술 거부권은 피고인한테 보장된 권리이긴 하다"면서도 "재판 과정이나 증거조사 결과를 보면 피고인(손준성)에게서 출발했던 고발장 초안 등 관련 자료가 김웅을 거쳐 조성은에게 전달된 사실은 어느 정도는 확인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피고인이 알고 있는 유리한 사실관계를 밝혀주지 않으면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부분들이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고려될 여지도 있을 수 있다. 재판부의 신문에도 진술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냐"라고 물었다.
손 검사는 "오해의 소지가 없으면 말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문건을 주고받은 기억이 없다"라고 했다. 손 검사는 '고발장과 관련해 김웅과 대화를 나눈 적 있냐'는 재판장의 질문에 "없다"라고 단언하며 "만약 내가 고발을 추진했다면 의원도 많은데 당시 의원도 아니었던 김웅에게 (고발장을) 왜 주겠나. 당시 저희 장인도 면책되는 현직 의원이었다"라고 말했다. 손 검사의 장인은 18~20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광림 미래통합당 의원이었다.
손 검사는 최후 진술에서 "(고발사주의혹 관련) 보도 이후 수사와 기소를 거치며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당혹스럽지만 김웅 의원과 공모해 고발사주한 적 없음을 분명히 말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를 향해 "검찰에 첫발을 내딘 후 20년이 넘는 기간동안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하지 않았다. 부디 혜안으로 사건 바라봐주고 증거와 법리에 따라 현명한 결정 내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선고기일은 내년 1월 12일 오전 11시로 정해졌다.
고발 사주 의혹 사건은 2020년 4월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검찰이 최강욱 전 의원과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범민주당 인사에 대한 고발을 사주했다는 것이다.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로 총선에 나선 김웅 의원이 같은 당 조성은 선대위 부위원장에게 고발장과 실명 판결문 등 자료를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는데, '손준성 보냄'이라는 원 출처가 달렸다.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해 한동훈, 김웅, 대검 수사정보담당관실 검사들 등 다수가 관련자들로 거론됐지만 결론적으로 현재 기소된 사람은 손 검사 한명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