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부는 날이면 밀린 빨래 세탁기 돌리기 바쁩니다."
무슨 말일까. 우리 상식으로는 잘 납득이 안되는 말이다. 그러나 풍력발전이 일상화된 재생에너지 강국 덴마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라고 한다. 바로 전기요금이 실시간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전기요금은 우리보다 3배 가량 비싸지만 시간대에 따라 전기요금이 달라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비싼 시간대에는 전기를 가급적 쓰지 않는다. 싼 시간대를 골라 효율적으로 쓴다. 그런데 이게 결국 그날의 날씨와 관련된다. 덴마크에서는 태양광과 풍력발전 비중이 전력 생산의 약 50%를 차지하고 있기에 청명한 하늘에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거나, 바람이 적당하게 강하게 불 때면 전력 공급량이 늘어난다. 당연히 전기요금도 싸지게 된다.
그래서 <오늘의 기후>(OBS 라디오)에 '기후톡파원'으로 사연을 보내온 덴마크의 신준수 트위그 에너지 연구원도 바람이 잘 부는 날이면 밀린 빨래를 세탁기에 돌리기 바쁘다.
"저는 자주 재생에너지가 얼마나 생산되는지 모니터링을 합니다. 그건 시간당 바뀌는 전기 요금제 때문이죠. 바람이 아주 잘부는 날이면 전기가 싸져서 밀린 세탁기 돌리기 바쁩니다. ㅎㅎ 모든 주민이 저처럼 유연하게 전기 사용을 하진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시간당 바뀌는 요금제는 스마트 미터링(에너지 사용량 측정)을 더 빨리 구축할 수 있게 해주고, 또 에너지 공급에 수요를 맞춰야만 하는 게 아니라 수요도 공급을 맞출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에 도움을 줍니다." (신준수 연구원, 2023년 11월28일)
출력제어 문제 해결
이렇게 실시간으로 바뀌는 전기요금제는 재생에너지 발전의 고질적인 문제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출력제어' 문제 해결과도 관련있다. 햇빛발전과 바람발전은 모두 그 날의 기상상황에 따라 들쭉날쭉하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문제이고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전기가 과잉 생산되어도 문제가 된다.
전력의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아 계통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급을 인위적으로 끊어버리는 일명 셧다운 '출력제어' 조치를 하기도 한다. 실제로 재생에너지 공급이 확대된 제주에서는 매년 출력제어 일수가 늘어나 2022년에는 연간 132회의 출력제어 조치가 기록됐다. 귀한 재생전기를 그냥 버리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보다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이 훨씬 덴마크에서는 실시간으로 바뀌는 전기요금제 등 유연성을 부여해 출력제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면 전력공급도 늘어나지만 신준수씨처럼 싼 전기를 찾아 세탁기를 돌리는 등 전력수요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의 고질적인 출력제어 문제의 대안을 찾기 위해 올해 덴마크를 현장 취재했던 제주MBC의 송원일 기자는 이렇게 기사를 올렸다.
"덴마크가 출력제한을 해결한 방법, 바로 전력시스템의 유연성을 대폭 강화한 것입니다.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 요동쳐도 전력을 공급하는 단계와 소비하는 단계 양쪽에서 탄력적으로 수급을 조절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화력발전 중심의 경직된 전력시스템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덴마크는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주MBC, 2023년 11월17일)
덴마크에서 에너지 공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에너지 스타트업에서 전력망 통합 운영 작업을 하고 있는 신준수 연구원은 덴마크의 유연성 부여는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생한 에너지 위기와 관련있다고 썼다.
"지난 2~3년간 유럽 전체에 에너지 위기 기간이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가스 값이 엄청 올라 전기 값이 전쟁 전 가격에 비해 최대 6~7배 뛴 거죠. 이것은 모두에게 우리가 얼마나 에너지를 사용하는지 인식하게하고 평소 잘 안 바꾸던 일상 패턴을 재생에너지 공급에 맞춰 유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덴마크에서는 수요의 유연성에 금전적인 인센티브를 더 강화하려고 노력하고 수요 또는 공급 유연성 시장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신준수 연구원, 2023년 11월28일)
재생에너지를 연구하기 위해 덴마크로 유학을 떠난 신 연구원은 덴마크에 입국하던 날 코펜하겐 공항 옆 해안선에 모여있던 바람개비 풍력 발전기들의 풍경이 눈에 선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바람개비들은 그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왔다.
"덴마크를 에너지 강국으로 만든 아이콘은 풍력에너지 라고 할수 있는데요, 코펜하겐에 제가 처음 도착했을때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코펜하겐 해안선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풍력 발전기들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코펜하겐 도시에서도 잘 보여서 풍력 발전기는 주민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입니다. 제 집에서도 풍력발전기들이 나란히 보이는데요, 우리가 쓰고있는 전기가 바로 저기서 오는구나.. 라는 느낌이 들고, 어느날 하루 가만히 서있는게 보이면 오늘 바람이 많이 안 부나? 또는 바람이 너무많이 불어 날개를 돌려놨나 (pitching blades)..? 하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신준수 연구원, 2023년 11월28일)
신준수 연구원은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길에 <오늘의 기후>를 자주 듣는다고 한다. 한국의 기후대응 소식이 흥미롭다는 거다. 그는 자전거 문화, 먹거리, 주민주도 재생에너지 등 덴마크에서 직접 겪고 있는 기후대응 일상의 이야기들을 정기적으로 보내주기로 했다.
[참고자료]
- 송원일, [[전력시장의 비밀]⑧ 실시간 바뀌는 전기요금], (제주MBC, 2023년 11월17일)
덧붙이는 글 | * 이 내용은 지난 2023년 11월28일 OBS 라디오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 방송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오늘의 기후'는 지상파 라디오 최초로 기후위기 대응 내용으로만 매일 2시간 편성제작되고 있으며 FM 99.9 MHz OBS 라디오를 통해 경기, 인천 전역에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방송되고 있습니다. 간단한 톡을 통해 살고 계신 곳의 기후변화 내용을 전할 수 있는 '기후톡파원'을 찾고 있습니다. 방송에 채택된 매일 한 분께 연천쌀 10kg 보내드립니다. 방송시간에 #0999 문자를 보내시거나 밴드에서 '오늘의 기후'를 검색하고 들어오셔서 글 남기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