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다음 날, 사설 입시 업체와 EBS 등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수능 출제 경향 분석과 해설 강의 준비 등으로 부산한 모습이 보였다. 이미 해설 강의를 올린 곳도 있고 대부분은 해설 강의 준비 중이라는 안내를 하고 있었다.
문득, 내가 몸담았던 고등학교의 풍경을 떠올려 보았다. 지방 소도시의 일반계 공립 고등학교이다. 그 도시에 있는 모든 일반계 공립 고등학교에 근무했다. 한 학교에서 5년까지만 근무할 수 있기 때문에 지방 소도시의 경우, 30년 넘게 교직생활을 하다 보면 그 지역 소재 모든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가 근무했던 모든 고등학교의 수능 직후 풍경은 대동소이했다. 이미 끝나 버린 수능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점에서 말이다.
수능 해설 강의를 준비하고 해설지를 만드느라 바삐 움직이는 사설 입시 업체와 EBS 등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학생들이 대학을 진학하는 데에 수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 축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수능 직후에 보이는 학교의 수능 기출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놀랄 만한 일이다. 지방 소도시의 경우 학생들이 수능이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정시 전형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지방 소도시 학생들의 경우 내신 성적을 잘 관리하여 수시 학생부교과전형이나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은 학교생활기록부의 각종 기록이 또 다른 중요한 요소이니 수능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학생부교과전형은 대부분의 경우 대학에서 제시하는 수능 최저 기준을 충족해야 하니 수능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도 수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수능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라고 학생들에게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이야기한다.
문제는 학교에서 수능 공부의 중요성을 이야기만 하지, 수능을 공부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내가 근무한 학교에서 수능과 관련하여 학생들이 들을 수 있는 수업은 방과후수업이었다. 예전에 보충 수업이라 부르던 것을 언제부터인지 방과후수업 또는 방과후학교라고 불렀다. 물론 정규 교과 수업에서도 수능과 관련한 내용을 들을 수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수능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는 수업은 방과후수업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근무한 학교의 경우 이 방과후수업이 너무 유명무실했다. 학생들의 요구를 분석하여 수업을 개설하면 좋을 텐데, 그러지를 않았다. 교사가 수업을 개설하고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하게 하였다. 또 특정 학년 담당 교사가 개설한 수업은 그 학년 학생들만 수강할 수 있었다. 학생들이 수강 과목 수를 마음대로 정하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예전에는 몇 과목을 패키지로 묶어 수강하도록 강제했기 때문이다. 수업 시수도 문제였다. 몇 년 전부터는 1회 50분 수업에 10회에서 최대 15회 정도로 진행되는 수업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런 정도의 수업으로 수능을 충실하게 대비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런 형편이니 학생들은 수능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듯했다. 담임 반 아이들을 상담하다 보면, '우리 학교에서는 수능 대비 공부를 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곤 했다. 뭐라 반박하기가 어려웠다. 대충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맡은 '화법과 작문' 과목 정규 수업에서 수능 대비 수업을 하기도 했다. 일주일 4시간 중, 2시간은 '화법과 작문' 과목의 성취 기준에 맞는 수업을 하고 2시간은 '수능 국어 영역 문제해결 능력 향상' 수업을 했다. 교과진도 계획을 작성하여 학교장의 결재를 얻은 다음 실시했다. 그래야 교육과정을 마음대로 바꾸어 수업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겠기에. 학생들의 반응은 썩 좋았다.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었는데, 수업이 어느 정도 진행된 다음 한 학생이 찾아와 "이제 수능 국어 영역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좀 잡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내가 한 것처럼 수능 대비 수업을 정규 수업 시수를 쪼개서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방과후수업을 활용해야 마땅하다. 학교에서 신경 써서 세심하게 준비하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학교에 근무할 때 여러 차례 제안한 내용인데, 이런저런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번 판단해 보시기 바란다.
우선 수능 관련 과목을 담당하는 교사들에게 방과후수업 강의 계획서를 받는다. 1회 50분 수업 기준, 30회 분량의 강의 계획서가 좋겠다. 30회 정도는 수업을 해야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터이다. 이때 모든 교사에게 강제해서는 안 된다. 희망하는 교사에게만 받아야 한다. 희망하는 교사가 없으면 어떡하냐고? 회당 강의료를 올리면 간단히 해결된다. 내가 근무할 때 1회당 3만 원인가 3만 5천 원인가를 받은 걸로 기억하는데, 이 강의료를 4~5만 원(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한 많이 올리면 물론 더 좋다.) 선으로 올리면 많은 교사들이 방과후수업 강의 계획서를 제출하리라 생각한다. 예산이 없지 않냐고? 퇴직할 무렵의 학교를 돌이켜 보면, 예산이 부족하지는 않을 성싶다. 교사들 사이에서 "요즘 교육부 돈 많은 가봐. 이런 데까지 예산 지원해 준다고?"라는 소리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때 강의 계획서를 제대로 작성하도록 해야 한다. 요즘도 그러하리라 짐작하는데, 내가 근무하던 시절 학교의 방과후수업 강의 계획서는 그야말로 형식적이었다. 어떻게 작성하든 방과후수업 강의를 할 수 있으니 강의 계획서를 공들여 작성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강의 계획서를 요구하는 담당 부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교사들이 제출한 강의 계획서를, 아무런 검토 과정도 없이 그저 보관만 하는 형편이었다. 그렇게 해도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으니까. 제대로 된 강의 계획서라면 강좌명, 강좌 내용 및 특징, 수강 대상, 강의 시차별 자세한 강의 목차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강좌 오리엔테이션 영상을 덧붙인다면 금상첨화이리라.
이렇게 공들여 제대로 작성한 강의 계획서를 학생들에게 공개하고 학생들이 수강 신청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강좌는 당연히 폐강이 될 터이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더욱 공들여 강의 계획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고 방과후수업 강의 질도 좋아질 수밖에 없다. 강의 내용이 좋지 않다는 평가를 받으면 학생들이 선택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면 학교가 학원과 뭐가 다르냐는 생각이 들 터이다. 다르지 않다. 똑같다. 수능을 대비하기 위한 방과후수업이라면, 학교가 학원을 벤치 마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학생들이 수능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학원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수능 대비를 위한 공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래서는 학교 교육이 제대로 설 수 없다. 학교에서는 학생부교과 전형과 학생부종합 전형을 위한 공부만 하고 수능을 위주로 하는 정시 전형은 학원에서 공부하는 현실은 뭔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 아니겠는가.
학교 교사들의 실력과 수준이 학원 강사들의 그것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학교에 수능 대비 공부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면 학생들도 굳이 학원에 가서 수능 공부를 할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 서둘러 시스템 만들기를 시작해야 한다. 학교 안에 수시 전형과 정시 전형에 대비해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모두 갖추는 것,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그 당연한 일을 하지 않고 언제까지 내버려 둘 것인가. 학교 안에서, 공교육 체계 내에서 수시 전형과 정시 전형 모두에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자. 그래서 학생들이 사교육을 더 이상 받을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자. 학교 구성원들이 노력한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