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을 만나면 열매 이야기에 바쁘다. 가을이 겨울로 넘어가는 요즘은 각종 열매들과 씨앗들이 서로 자기 얘기를 해달라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기에 그 이야기만 하더라도 한두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먼저 굴러가는 열매 이야기로 시작한다. 가장 만만한 게 칠엽수 열매이다. 도토리도 있지만, 작고 또 너무 잘 굴러가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칠엽수 열매는 크기가 아이들이 손에 쥐기에 적당하고, 감촉도 매끈매끈하고 단단하여 갖고 놀기에 딱 좋다.
요즘 어느 드라마에서 다른 이름인 '마로니에 열매'로 나와 유명하다. 밤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먹으면 배가 아프고 열이 나며, 독성분이 있어 건강에 안 좋은 열매라고 얘기되고 있다.
밤은 뾰족한 꼭지가 있는데 반해 칠엽수 열매는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하게 생겨 잘 굴러다닌다. 아이들에게 굴려보라고 주면 아주 신나게 떼굴떼굴 굴리며 잘 노는 놀잇감이 된다.
옷에 잘 붙는 열매도 있다. 대표적인 게 도꼬마리인데 열매 전체에 고슴도치처럼 뾰족뾰족한 가시가 나 있다. 그런데 그 끝이 마냥 뾰족하기만 한 게 아니라 끝 부분이 갈고리처럼 말려있어 옷 같은 데 붙으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털이 있어 쉽게 잘 붙는 옷과 그렇지 않은 미끄러운 옷들에 붙여보며 차이점을 살펴봤다. 도꼬마리 외에도 쇠무릎, 도깨비바늘, 가막사리, 수크령 같은 풀들의 열매도 잘 붙는다.
새들처럼 날개를 가지고 있어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가는 열매나 씨앗도 있다. 아이들이 잘 아는 민들레도 있지만 요즘은 박주가리가 대세다. 여주나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긴 박주가리 열매가 다 익으면 한쪽이 벌어지며, 그 속에서 하얀 갓털을 가진 씨앗이 나온다.
그 형태도 아름다워 아이들은 아주 좋아한다. 작은 씨앗과 큰 갓털로 인해 바람이 있으면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다. 아이들은 호호 불며 바닥에 떨어지지 않게 해 멀리 가게 하는 놀이를 한다.
박주가리와 다른 날개를 가진 열매로 단풍나무 무리가 있다. 단풍나무 열매들은 잠자리 날개같이 생긴 날개를 가지고 있다. 높이 던져 보면 빙글빙글 돌며 떨어진다. 마치 헬리콥터처럼 빙글빙글 돌기 때문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템이다.
날개의 모양과 씨앗 위치, 무게중심으로 인해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데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신나무, 복자기나무, 단풍나무, 고로쇠나무 등이 모두 비슷한 날개를 가졌다. 이외에도 가죽나무, 소나무, 스트로브잣나무, 피나무 등의 열매도 날아가기에 유리한 날개들을 가지고 있다.
맛있게 생긴 열매들도 있다. 일부러 누군가에게 먹히기 위해 맛있는 과육이 있는 열매로 달린다. 색도 대부분 먹음직스러운 빨강이 많다. 그 누군가는 대부분 새들이다. 새들은 나무에 매달린 맛난 열매를 통째로 삼키고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그리곤 얼마 가지 않아 똥을 싼다.
새들은 소화기관이 짧기 때문에 무언가를 먹으면 바로 싼다. 그때 말랑한 과육 속에 있던 딱딱한 씨앗들이 소화되지 않고 그냥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새들이 싸놓은 똥을 보면 씨앗을 보고 그들이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똥 색깔까지 열매 색깔로 드러나기도 한다.
"너희들이 씨앗이라면 함께 모여 있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서로 멀리 떨어져서 자라는 것이 좋을까?"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면 서로 모여 있는 것이 재밌고 좋기 때문에 모여 있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여럿이 모여 몸으로 활동하게 되면 아이들도 금방 알게 된다. 서로 멀리 떨어져서 자라는 것이 물과 양분을 먹기에도, 햇빛을 보며 자라기에도 훨씬 좋다는 것을. 그래야 하나하나 제대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열매와 씨앗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특징을 살려 최대한 멀리 흩어져 가려고 한다. 땅에 떨어져 떼굴떼굴 굴러가기도 하고, 무임승차하듯 몰래 누군가의 몸에 붙어 이동하기도 한다.
날개를 펼치고 바람을 이용하여 멀리 날아가기도 하고, 열매의 한 부분을 희생해서라도 과감히 먹혀 동물들의 도움으로 멀리 가는 씨앗까지, 각자 특징과 능력을 최대한 살려 미래를 기약하는 것이다.
올해 아이가 수능을 치렀다. 이제 이 아이도 자신의 특징과 능력을 살려 더 큰 세상으로 나가려는 때가 올 것이다. 그때 과감하게 도약을 밀어줄 수 있는 엄마나무로 설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협동조합 숲과들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