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는 지역 권력을 감시하고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공동체를 건강하게 바꿔가는 풀뿌리 언론들이 있습니다. 발 디딘 곳에서 성실히 취재해 좋은 보도를 이어가는 지역신문들의 활약상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
"준석이는 도덕이 없다. 그것은 준석이 잘못이 아니라 부모의 잘못이 큰 것 같다."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킨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의 이 발언은 국회 출입기자가 아닌 지역신문 기자의 <오마이뉴스> 단독 보도로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11월 26일 국민의힘 서산·태안 당원 특강 도중 나온 인 위원장의 문제적 발언을 신문웅 태안신문 편집국장이 가장 먼저 썼고, 이후 수많은 매체가 인용보도하면서 논란이 일파만파 커진 것. 태안신문은 전국 풀뿌리 지연언론 연대체인 바른지역언론연대 회원사로, 바른지역언론연대와 제휴 관계인 오마이뉴스에도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지역신문 기자인 그는 어떻게 중앙 정치인의 문제적 발언을 현장에서 잡아내 파급력 있는 보도로 만들 수 있었을까. 다음은 1일 신 국장과 나눈 서면 인터뷰 일문일답 내용이다.
[관련기사]
[단독] 인요한 "준석이는 도덕이 없어, 부모 잘못 큰 것 같다" https://omn.kr/26jbo
"인요한 6~7차례 이준석 언급, 의도적으로 보일 정도"
- 최근 인요한 위원장의 발언 논란이 불거진 특강은 국회 국민의힘 출입기자들에게 공지되지 않은 일정으로 알려졌다. 어떻게 알고 취재하러 갔나.
"이미 지역사회 곳곳에 펼침막이 걸렸 있었고, 서산·태안지역 정치인들이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이날 특강을 자랑하듯 알리는 상황이었다. 마침 행사장이 처가 근처였는데, 아내와 오랜만에 장모님을 찾아뵌 뒤 아내 먼저 집으로 보내고 바로 강연장으로 갔다."
- 이날 인 위원장의 '이준석 도덕 없어' 발언은 어떻게 나온 건가.
"강연 주제는 '청년 및 당원 트레이닝'이었다. 성일종 의원의 인사말과 김정태 재경태안군향우회장의 강연 다음이 인 위원장 차례였다. 인 위원장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PPT를 준비했으나 기계 작동이 제대로 않았다. 진행이 매끄럽지 못했다. 그는 강연 중에 전라도 사투리와 충청도 사투리를 쓰면서 위트 섞인 말로 분위기를 띄우려 했고, 참석자들에게 왜 웃지 않느냐며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미국 유학 시절을 애기하면서 '내가 준석이보다는 영어 잘한다'는 농담을 건네는 등 30여 분 동안 6~7번 이 전 대표 관련 발언을 언급했다. '준석이는 도덕이 없다' '준석이 잘못이 아니라 부모 잘못이 큰 것 같다' 발언도 그때 나왔다."
- 공식 취재일정이 아닌 당원 행사여서 인 위원장이 편하게 말한 것 같다는 해석도 있다.
"본인도 모르게 나온 말실수 같아 보이진 않았다. 이미 내가 전날 오후 서산·태안이 지역구인 성일종 의원의 보좌진에게 취재하러 가겠다고 사전에 통보했다. 당에서도 기자가 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준석이가 버르장머리 없지만 그래도 가서 끌어안는 통합이 필요하다' 같은 발언 역시 맥락을 보면 의도적으로 보일 만큼 이 전 대표에 대한 견제와 날카로운 지적이 읽혔다."
- 인 위원장 발언을 들은 청중의 반응은 어땠나?
"현장에 350명 정도 참석했는데 청년 반, 어르신 반이었다. 이준석 전 대표 관련 발언이 나오면 다들 박장대소하고 박수쳤다.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신문사 앞 원룸 살았던 김용균씨 보도 못 잊어... 주민 위해 건강한 지역신문 필요"
인요한 위원장 발언 논란 외에도 그는 굵직한 특종 보도를 해왔다. 2007년 12월 태안반도에서 발생한 삼성중공업-허베이스피리트호 원유유출사고, 2013년 7월 안면도 해병대 캠프 학생 사망사고, 2015년 성완종 전 의원 유언장 단독 입수, 2018년 태안화력 비정규직 발전 노동자 김용균씨의 끼임 사망사고, 2020년 중국인 밀입국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태안신문은 신문웅 국장을 포함한 취재기자 3명, 편집기자 1명, 업무광고 1명, 총무 1명, 비상근 대표인사 1명이 전부다. 작은 규모지만 인터넷판뿐만 아니라 매주 24면 타블로이드판형의 신문 4000부를 태안군민과 출향인들에게 전하는 명실상부 지역 대표 언론이다.
군 최초의 지역신문이기도 한 태안신문은 지난 1990년 5월 14일 지방자치시대의 시작과 함께 창간해 34년째 신문을 발행해왔다. 이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선정하는 우선지원선정사에 지속적으로 뽑혀왔다.
- 다수의 특종보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
"2018년 12월 태안신문사 바로 앞 원룸에 살었던 발전비정규직 청년 노동자 김용균씨의 끼임 사망사고를 첫 보도했던 게 제일 먼저 생각난다. 그때 장례식장을 지키면서 계속 취재하고 기사를 썼는데 어느 날 고인의 어머니 김미숙씨와 단독 인터뷰를 하게 됐다. 그날 같이 울면서 김미숙씨의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2007년 태안반도에서 발생한 삼성중공업-허베이스피리트호 원유유출사고 단독 보도 과정 또한 아직도 생생하다. 그해 12월 8일 새벽 2시께 만리포 해변에 들물과 함께 검은색의 무엇인가 밀려온다는 제보 전화를 받고 현장으로 달려가 보니 정말로 검정 바닷물이 밀려오고 있었다. 거대한 검은 파도를 눈 앞에서 직접 보니 공포에 잠시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했는데, 다시 정신을 차리고 사진을 찍어 기사를 내보냈다.
태안신문 기자들은 어느 언론사보다도 원유유출사고를 끈질기게 취재해왔다고 자부한다. 사고 후 16년간 2000여 건의 관련 기사를 보도해 여러 상을 받았다. 본지 김동이 부국장은 올해 첫 제정된 '송건호풀뿌리언론상' 수상의 영예도 안았다."
- 28년째 태안신문 한 곳에서 기자생활을 하고 있다. 때론 지역신문의 한계 등에 부딪혀 그만두고 싶기도 할 것 같은데 지속의 원동력이 궁금하다.
"대학시절 학생운동과 학보사 기자를 하면서 학내 문제로 해직과 징계를 당한 시기에 어머님의 건강이 위독해졌다.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떠나 고향 태안으로 내려왔다. 6개월만 있겠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지역에 남아 기자로 일하고 있다. 지방자치 이해도도 떨어지고 시민단체도 버티기 어려운 게 군 단위 지역의 현실이다.
그만두고 싶을 때나 힘들 때, 전국에서 이런 고민을 하는 풀뿌리 지역언론인들과 함께 고민을 나눈 덕에 버텨온 것 같다. 특히 풀뿌리 지연언론 연대체인 바른지역언론연대, 주간지 선정사협의회, 충남지역언론연합의 활동을 통해 지역언론인의 자부심과 중요성을 느꼈다. 바른지역언론연대와 제휴를 맺은 오마이뉴스에 태안신문 기사를 송고하면서 지역적·시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지역 문제를 신속히 보도해 전국화할 수 있게 된 점도 원동력이 되고 있다."
- 지역신문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태안군 같은 농어촌 지역에서 지방의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시민단체도 없는 상황 속에 지역신문마저 바른 언론이 되지 못한다면 주민들에게 불행한 일일 것이다. 지방 토호 세력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의 막강한 권한과 예산 집행을 제대로 감시 못한다면 지방자치의 올바른 실현과 지역 균형 발전은 곤란한 지경에 이른다. 그렇기 때문에 풀뿌리 지방자치가 올바르게 실현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지역신문이 꼭 필요하다."
- 새해 태안신문의 계획은 무엇인가.
"종이신문의 위기라지만 우리는 2년 전부터 종이신문에 주력하고 있다. 신문을 잘 만들면 순수하게 구독료와 신문 광고만으로 자립 경영을 실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구성원들에게 있다. 새해에도 올바른 언론 활동을 통해 수익 구조도 맞추고 언론 역할을 확대하며 도전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