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례적인 일이다. '이재명 때리기'가 유행인 것 같다."
이낙연·김부겸·손학규 등 더불어민주당 거물급 정치인들이 최근 이재명 대표를 겨냥해 거센 비판을 쏟아낸 데 대한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의 차가운 반응이다. 문재인 정부 때 국무총리를 지냈거나 당대표를 역임했던 대선주자급 인사들이 현직 당대표를 과하게 흔들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현재 이낙연 전 대표 등은 내년 총선에 적용할 선거제와 관련해 과거의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할 가능성을 내비친 이재명 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이 대표의 최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실형 선고로 재점화 된 이 대표의 이른바 '사법리스크' 문제와 더불어 당내 갈등의 핵심 사유가 된 강성 지지층 의존 '팬덤 정치' 등에 대해서도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당 안팎에선 이를 두고 총선을 앞두고 이 대표의 리더십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고 보고 있다. 이미 혁신계를 자처하는 당내 비주류 모임인 '원칙과 상식'의 전면적인 활동, 비이재명계 이상민 의원의 탈당 등 당내 분열상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는 상황. 여기에 이낙연 전 대표 등 당내 거물급 인사들마저 사실상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결국 현 지도부를 대신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서 총선을 치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취재결과, 당내에서는 오히려 "원로들이 오히려 당 통합을 해치고 있다"는 목소리가 더 큰 편이었다. 이재명 지도부를 대체할 비대위가 발족할 가능성도 낮게 점치는 편이었다.
그들은 왜 이재명을 '직격'할까
이낙연 등 대선주자급 인사들이 그간의 침묵을 깨고 전면에 나선 표면적인 이유는 이 대표의 '멋진 패배 무용론' 발언 때문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본인 유튜브 채널 라이브에서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인가"라면서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를 병립형으로 회귀시키겠단 뜻을 시사했다.
이에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지난달 29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선거제의 '병립형' 회귀와 관련해 "어렵사리 물꼬를 트고도 위성정당을 만들어 정치를 희화화시킨 정치권이 다시 퇴행의 길을 가려 한다면 국민의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은 지난 4일 국회 소통관을 찾아 기자회견을 열고 "이재명 후보의 대통령 (선거)공약, 대표공약이었던 만큼 제대로 약속을 지키는 민주당이 되어달라"며 이 대표의 발언을 비판했다. 아울러 "당 전체가 사법리스크 올가미에 엮여 있는 것에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고도 질타했다.
이낙연 전 대표는 최근 연달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 대표를 직격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와 한 인터뷰에서 "당장 일주일에 며칠씩 법원에 가는데 이런 상태로 총선을 치를 수 있을까하는 걱정은 당연히 함직하다"면서 사실상 이 대표의 거취 문제를 논했다.
무엇보다 이 전 대표는 신당 창당설에도 '제3세력의 결집 취지에 공감한다'면서 여지를 남겨 둔 상황이다. 또 그는 지난 4일 언론 인터뷰에서는 "(신당 창당과 관련) 때가 되면 말하겠다"면서 김부겸 전 총리와도 이미 두 차례 만나 향후 행보에 대해 논의했다고 했다. 5일 인터뷰에서도 "정세균 전 총리와 짧게 뵈었다. 정 전 총리도 당의 상태에 대해 많이 상심하고 계시다"고 밝혔다.
이낙연·김부겸·정세균 등 문재인 정부 출신 국무총리들이 총선을 앞두고 당내 '반이재명' 연대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게 된 까닭이다.
"그냥 '이재명이 싫다'는 표현 같다"... 당내 여론은 갸우뚱
단순한 이재명 비판을 넘어 신당 창당설까지로 번진 현 상황에 대한 당내 분위기는 일단 '불편함'이 크다.
"이낙연 전 대표는 현역이니, 당내 민주주의 차원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해도 김부겸 전 국무총리나 손학규 상임고문은 정계를 은퇴하신 분들 아닌가요? 공개적으로 이 대표를 압박하는 건데 발언의 이유를 모르겠어요."
앞서 이낙연 전 대표 등의 발언을 두고 "'이재명 때리기'가 유행인가"라고 지적했던 민주당 중진 의원이 5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한 말이다. 그는 특히 이낙연 전 대표를 가리켜 "여러 문제제기를 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를 고치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며 "싸우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모르겠고, 그냥 '이재명이 싫다'는 표현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당 대표까지 하신 분이 '제3세력' 이야기를 꺼내는 건 아주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또한 이런 상황들로 인해 비대위 체제가 발족하거나 신당이 따로 만들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이 중진 의원은 "(지난 9월 본회의에서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후 당원들과 의원 대다수가 (비대위 전환을 주장하는) 가결파 의원들의 얘기를 듣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낙연·김부겸·정세균 등) 세 분이 무엇인가를 할 가능성은 0%"라고 말했다.
계파 중립 성향으로 꼽히는 또 다른 재선 의원은 아예 "당대표를 끌어내리자는 게 바로 상대(국민의힘)의 전략"이라며 "놀아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아울러 "민주당을 사랑하고 아낀다면 (이 대표를 둘러싼) '리스크'를 어떻게 잘 극복할지 지혜를 모아줘야지 리스크만 비판한다면 그게 당에 도움이 되겠냐"며 "(원로들이) 힘을 모아야 할 때 당 내에 문제를 일으키는 형국이다. (이 대표를 향해) 결단하라고 압박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한 의원도 "이낙연 전 대표가 친이낙연계로 꼽히는 인사들의 공천을 보장하라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지 명확치 않아서 당에서 어떤 대응을 하기 쉽지 않은 형국"이라며 "다만, 총선을 앞두고 당내 세력 구축을 위한 각축전이 여기저기서 벌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이재명 대표가 당장 이낙연 전 대표를 만날 순 없다. 오히려 판을 더 키우는 것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비명계 쪽에서도 이낙연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설에 대해서는 너무 앞서갔다는 평이다. 친이낙연계로 꼽히는 한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당이 통합을 해야 할 때 (이 전 대표가) 신당을 만들어선 안 된다. 그러다 다 죽는다"고 비판했다.
다만, 이낙연 전 대표를 위시한 당내 비이재명계의 세 규합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친이낙연계 시민모임인 '민주주의실천행동'이 오는 10일 예정된 '원칙과 상식'의 대규모 토론회에 동참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원칙과 상식'은 당내 혁신계를 자임하는 비명계 의원 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