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3무 농법이 나의 발목을 죄이고 있다. 나는 귀농하면서 작물에 농약을 치지 않고, 제초제를 뿌리지 않고, 화학비료를 주지 않고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스스로 강박해 놓았다. 벌써 수년째 봄 농사를 시작할 때는 야심찬 계획이 충만하지만, 가을이 되면 '대체 올핸 뭔 농사를 지었나' 하는 한숨을 쉬곤 한다. 올해 농사도 다르지 않았고, 내년에는 '제초제를 딱 한 번만 써 볼까?' 하는 유혹마저 들었다.
벼농사 5년째... 올해도 망쳤다
우선 벼농사를 망쳤다. 귀농한 지 5년차라 벼농사도 5년째 짓고 있다. 첫해는 땅의 일부만을 경작해서 쌀 한 말을 수확했고, 다음 해부터 지난해까 지는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쌀 한 가마씩을 수확했다. 그런데 올핸 쌀 반 가마도 수확할 수 없게 되었다. 밭농사뿐 아니라 논농사도 풀과의 전쟁이라는 것을 새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논농사는 5~6월에 모를 심고 나서 한달 이내에 피를 뽑아주어야 한다. 모를 심은 직후는 벼와 피의 구분이 키 차이로 명확해서 쉽게 찾아 뽑을 수가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벼와 피의 키가 같아지면 둘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피 또한 벼와 마찬가지로 벼과라서 둘의 생김새나 줄기, 잎 모양이 아주 유사해서 내 실력으론 그 둘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지난해는 벼를 심은 직후 우렁이를 넣어서 피를 억제했는데 올핸 우렁이를 사다 넣을 시기를 놓쳤다. 늦은 시기에 우렁이를 넣으면 오히려 우렁이가 벼를 갉아먹는다. 거기에 피를 뽑아야 할 시기에 기간제 일이 바빠서 주말에 시간을 낼 수 없었다. 피가 벼와 엉켜 자라면 벼의 양분을 갉아 먹어서 벼가 부실해지고 수확량도 줄고, 바람이 불었을 때 쉽게 넘어져 버린다.
추석 전(前)주에 피의 이삭만을 대충 자르려고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논으로 갔는데 이건 논도 아니고 밭도 아니었다. 논의 절반 정도가 피와 벼가 뒤엉켜 바람에 쓰러져 있었다. 다급한 김에 피의 이삭을 잘라내고 벼는 몇 대씩 묶어 세웠지만, 이미 쓰러져 썩어가는 벼에서 건질 수 있는 건 없을 듯하다. 벼농사를 망친 원흉이 바로 피라서 모를 심을 때 제초제를 한 번만 뿌려줬어도 사실 이렇게 망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멧돼지가 휩쓸고 간 밭
벼만이 아니라 들깨와 고구마도 마찬가지로 망쳤다. 들깨 농사는 처참하다고 해야 할지 괜찮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올해 들깨 모종을 만들기 위해 모 이식 한 달 전에 모판을 서른 개 만들어 일일이 씨를 뿌려 싹을 틔웠다. 그런데 하필 가물었을 때 낚시를 하러 놀러 갔다 오면서 물을 제대로 주지 않아 심어야 할 시기 직전에 모두 말라 죽었다. 그래서 300평 큰 밭에 심는 것 자체를 포기하고 아예 밭을 놀렸다. 이건 농사가 잘 된 건지 안 된 것인지 표현하기도 어렵다. 암튼 들깨 농사로 수익 내는 건 포기했고 내 먹을 양만큼만 양파를 수확한 빈 자리에 한 50평 심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풀 관리를 하지 못해 제대로 자라나질 못했다.
지난주에 아내와 함께 고구마와 들깨를 수확하러 밭으로 갔다. 멀리서 봐도 밭인지 풀밭인지 묵힌 밭인지 구분이 안 갈 지경이라 밭으로 다가가면 갈수록 작물에 미안했다. 거기에 더해서 자연농 한답시고 제초제와 비료를 쓰지 않으니 밭은 지렁이와 굼벵이의 천국이었다. 멧돼지가 지렁이와 굼벵이를 좋아하다 보니 밭은 또한 멧돼지의 천국이 되었다. 온갖 극성을 부려 땅을 온통 헤집어 놓은 통에 부러지고 뽑히고, 풀에 눌려서 어디에 들깨가 있는지 하나씩 찾아내야 했다. 아내가 들깨를 베고 나는 들깨 벤자리의 풀들을 예초했다. 한 시간 일거리도 되지 않을 들깨를 베는 데 두어 시간이나 걸렸다.
들깨를 베고 나서 잠시 쉬다가 고구마를 캤다. 고구마는 멧돼지가 원체 좋아하는 작물이라 멧돼지가 침입하지 못하도록 고구마밭 주변을 검은 부직포로 둘러놓았다. 멧돼지는 눈이 나쁘고 시야가 낮아서 부직포 너머에 있는 고구마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구마를 5월 초에 심고 나서 10월 중순이 되도록 한 번도 풀을 뽑아주거나 들여다 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1미터가 넘는 풀들로 뒤덮여 있어 사람의 눈으로 봐도 고구마 밭인지도 알기 어려웠다.
우선 예초기로 1미터가 넘는 풀들을 '처삼촌 묘 벌초하듯' 제거했다. 그리고 고구마 줄기가 나타났을 때 다시 낫으로 줄기를 잘라냈다. 그 뒤에 갈퀴를 들고 풀들과 고구마 줄기를 걷어내니 고구마를 심을 때 덮어줬던 비닐이 나타났다. 고구마 모종은 처음 심을 때 그대로 자란 게 아니라 절반 정도는 죽었고, 절반만이 푸른 줄기를 뻗어내면서 근근이 살아남아 있었다. 내가 검은 비닐을 벗겨낸 뒤 아내가 호미를 들고 고구마를 캤다.
듬성듬성 자라준 고구마 줄기에서 빨간 고구마가 서너 개라도 나올 때는 환호성을 치며 무사히 살아 남아준 고구마 줄기에 감사했다. 어떤 줄기에서는 고구마가 하나도 나오지 않기도 했지만, 수확량은 사과 박스로 두 박스가 나왔다. 5월에 고구마 모종을 심을 당시 꿀 고구마 한 단과 호박고구마 한 단, 이렇게 두 단을 심었다. 여느 집이라면 아마 네다섯 박스를 수확했을 모종량 이지만 우리는 달랑 두 박스를 건졌다. 풀 한번 안 매주고, 물 한번 제대로 주지 않았는데 그래도 이게 어디냐면서 기특해 했다. 또 멧돼지 놈들이 나중에 저 검은 부직포 안에 고구마밭이 있는 걸 알았으면 얼마나 열 받을까를 얘기하며 아내와 둘이 깔깔 웃었다.
유목농법으로 위안하지만
그리고 나서는 밤을 주우러 산으로 갔다. 산에는 밤이 지천이다. 작은 산밤부터 커다란 개량종까지 여기저기 널려 있는 밤을 한 박스 줍고, 좀 더 깊은 산으로 올라갔다. 거기에는 우리만 아는 감나무가 있어서 매년 감을 따다가 홍시로 먹고 감말랭이로 먹고, 곶감으로 먹는다. 올해, 비록 야심찬 계획 농사는 망쳤지만, 유목민처럼 돌아다니면서 수확하는 유목농법은 올해도 어김없이 나를 배부르게 해주었다. 이제 또 지난해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밤을 빼내고 새 밤으로 채우고, 지난해 얼려두었던 홍시를 끄집어내고 새로운 감으로 채우는 일이 반복되리라~
봄에 잡초가 올라올 때 바로 뽑아주면 좋지만, 그러하질 못하다 보니 한달에 한 번 몰아서 뽑자고 일정을 늦춘다. 주워들은 풍문은 있어서 왕겨나 톱밥을 덮어주어 풀을 억제하고 그것이 썩어가면서 퇴비가 되면 제초제도 안쓰고 화학비료를 주지 않으면서도 완전 유기농으로 풍성한 수확이 가능하다고 떠든다. 그래도 농사가 풀과의 전쟁이라는 것은 익히 아는 사실이라 적어도 한 달에 한 번만은 김을 매주자고 다짐을 한다. 그리고 종묘사에서 파는 개량종자가 아닌 우리 고유의 다양한 종류의 토종종자를 심어서 폼나게 신토불이를 보여주리라 꿈을 꾼다. 시작은 언제나 그럴듯하다. 적어도 장마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장마가 오면서부터 맘이 달라진다. 장마를 바라보면서 장마가 끝나면 바로 나가서 풀을 뽑아야지 하고 다짐하다가 장마가 끝난 뒤에 무성해진 풀을 보면서는 뽑는 건 포기하는 것으로 맘을 바꾼다. 대신에 언제 맑은날 예초라도 한번 해서 작물이 숨을 쉬게 해주고 한 달에 한 번은 예초를 해줘야지 하고 맘먹는다. 이마저도 주말에 바쁜 일정 한두 가지만 생기면 풀과 작물이 뒤엉켜 예초를 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결국 가을이 되어서 풀밭으로 변한 밭을 바라보면서 내년을 기약하게 된다. 역시 농사는 풀과의 전쟁이고 힘들고 돈도 안 된다는 한숨을 쉬면서 돈 주고 사 먹는 게 가장 좋다고 스스로 위로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