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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서 결과물보다는 과정 중심의 예술에 관심있습니다. 작가와 관객 간의 이분법적 경계를 와해하고 단일한 시각에서 벗어나 관객의 시각과 신체가 개입되는 작업이죠. 그때 생기는 정황·사후·일시적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작업실을 벗어나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건, 전시가 종료된 후 해체되거나 또 다른 시공간에서 새로운 맥락으로 지속적인 변화가 있는 작업을 추구합니다." (홍명섭 작가)

"결과물 중심의 자기충족적 폐쇄성을 본질로 하는 완전체, 결정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미학을 천과 실을 활용한 설치 작업, 회화, 부조로 표현합니다. 일상에서 예술과 수행적인 노동에서 비롯되는 작업에 관심을 갖고 해학, 유머가 담긴 작업을 추구합니다." (김희라 작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s' bed, 스타킹, 400x200cm, 김희라 작가의 바느질과 봉제(찌르기, 자르기, 찢기)의 요소들을 고문 메커니즘으로 드러나게 설정하여 삶과 파괴, 생성과 침탈 등 상호 교차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곰팡이와 버섯이 기생하듯, 거미줄이 모퉁이에 드리우듯, 두 작가의 작업은 벽과 천장, 다른 작가의 공간 어딘가에 불현듯 나타나는 우연성이 작품에 대입시켰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s' bed, 스타킹, 400x200cm, 김희라 작가의 바느질과 봉제(찌르기, 자르기, 찢기)의 요소들을 고문 메커니즘으로 드러나게 설정하여 삶과 파괴, 생성과 침탈 등 상호 교차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곰팡이와 버섯이 기생하듯, 거미줄이 모퉁이에 드리우듯, 두 작가의 작업은 벽과 천장, 다른 작가의 공간 어딘가에 불현듯 나타나는 우연성이 작품에 대입시켰다. ⓒ 필립리
 
지난 7일, 아르코미술관 5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 <어디로 주름이 지나가는가>(~2024년 3월 10일까지)의 기자간담회에서 홍명섭과 김희라 작가는 자신의 작업방식을 이렇게 비교했다. 이번 전시는 다른 세대의 배경을 가진 총 9팀들이 서로의 협업 결과를 보여주는 자리이다. 지금까지 봐왔던 여느 단체전과는 많은 부분에서 달라 보인다.

가령 여러 작가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결과물을 모은 단체전이 아니라 회화·영상·설치 등 신작과 미발표작을 소개하는 교류 플랫폼으로서 역할에 충실한 전시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시장이 의도한 본래 취지에 부합하여 서로 다른 방식과 시각을 가지고 융합적 사고를 이끈 점이 돋보였는데, 필자는 앞서 소개한 두 작가의 설명을 듣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배타적 사고 뛰어넘는 과정
 
 전시장 내 유휴 공간과 곳곳의 틈에 개입하는 상호 작업, 상황과의 조우, 전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이자 예기치 않은 복잡성의 풍경으로 확장하려 했다.
전시장 내 유휴 공간과 곳곳의 틈에 개입하는 상호 작업, 상황과의 조우, 전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이자 예기치 않은 복잡성의 풍경으로 확장하려 했다. ⓒ 필립리
 
두 작가는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듯이 서로 상반된 방식으로 작업을 해왔는데, 미술관은 이질적인 속성을 한 공간에서 접속하고 연합함으로써 나타난 현상에 집중했다. 이는 둘 사이에 분리된 영역 간에 배타적 사고를 뛰어넘어 교화되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다. 이에 관하여 두 작가는 이질적인 철학사상이나 종교적 교의, 의례 등을 통합하려는 절충주의의 일종인 싱크레티즘(syncretism)이라 비유했다. 특히 두 작가는 하나의 관점에 구속되지 않은 채 비자발적 힘들의 감응으로 상호 감정과 지각을 다른 차원에서 촉발시킨 점이 눈길을 끌었다. 

이것은 전시장 내 유휴공간과 곳곳의 틈에 개입하는 상호 작업, 상황과 조우, 전시장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이자 예기치 않은 복잡성의 풍경으로 확장하려 했다. 두 작가의 작업은 과정중심과 미결, 결과와 완성형이라는 완전히 상충되는 성격의 이질성을 지녔다. 이들은 서로의 작품관이 다른 양상에 주목하여, 그 대척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 노력했다.

이를 위해 상호 지각을 다른 차원에서 촉발하고 서로의 작업 조건과 장소에 상호 기생하여 새 생명을 만드는 버섯의 성장 조건과 유사하다고 했다. 내용적으로 김희라 작가의 바느질과 봉제(찌르기, 자르기, 찢기)의 요소들을 고문 메커니즘으로 드러나게 설정하여 삶과 파괴, 생성과 침탈 등 상호 교차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곰팡이와 버섯이 기생하듯, 거미줄이 모퉁이에 드리우듯, 두 작가의 작업은 벽과 천장, 다른 작가의 공간 어딘가에 불현듯 나타나는 우연성을 작품에 대입시켰다. 

미술관으로서의 본질에 충실하고 싶었던 전시
 
 아르코미술관은 전시장이 갖는 본래의 취지를 최대한 살려서 작가들의 작업을 유도했다. 이런 전시를 기획하게 된 의도를 두고 임근혜 관장은 “다양한 예술 주체가 교류하고 소통하며 함께 성장하는 장소로서 기능을 다해온 아르코미술관의 과거, 그리고 앞으로의 지향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확실히 목적을 밝혔다.
아르코미술관은 전시장이 갖는 본래의 취지를 최대한 살려서 작가들의 작업을 유도했다. 이런 전시를 기획하게 된 의도를 두고 임근혜 관장은 “다양한 예술 주체가 교류하고 소통하며 함께 성장하는 장소로서 기능을 다해온 아르코미술관의 과거, 그리고 앞으로의 지향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확실히 목적을 밝혔다.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앞서 언급했지만 이번 전시는 여느 '미술관의 몇 주년'을 기념하는 결과물과는 다르다. 다시 말해, 아르코미술관은 전시장이 갖는 본래의 취지를 최대한 살려서 작가들의 작업을 유도했다. 이런 전시를 기획하게 된 의도를 두고 임근혜 관장은 "다양한 예술 주체가 교류하고 소통하며 함께 성장하는 장소로서 기능을 다해온 아르코미술관의 과거, 그리고 앞으로의 지향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확실히 목적을 밝혔다.

아르코미술관은 <어디로 주름이 지나가는가>기획전을 지난 8일부터 2024년 3월 10일까지 미술관 본관과 공간열림(별관)에서 개최한다. 전시는 국내 작가 9팀, 22명의 신작 및 미발표작이 공개되며, 미술관의 전시사를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는 200여 점의 자료들이 공개된다. 또한 미술관 전시사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던 작고 작가 3인(공성훈, 김차섭, 조성묵)의 유작과 미발표작을 함께 공개한다. 

이번 전시는 현대 미술관의 주요 기능인 '네트워크'를 핵심 요소로 채택했다. 이를 위해 대부분 미술관이 주도하는 작가 선정 방식을 내려놓았다. 대신에 아르코미술관 전시에 참여했던 작가를 대상으로 미술관과 인연을 맺었던 관계자들과 함께 참여 작가를 선정한 것이 특이하다. 여기에 이들에게 함께 교류하고 싶은 '서로 다른 세대'의 작가를 추천받았다. 이렇게 모인 다른 관계성을 지닌 작가들은 저마다의 색깔을 가지고 전시장을 채웠던 것이다. 눈여겨 볼 점은 추천으로 초청된 작가의 대부분(약 80%)이 아르코미술관에 처음 참여하는 작가라는 점이다.

이런 과정을 두고 임 관장은 "수도권 등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고루 안배되어 미술관의 인적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는 각 작가가 현재 집중하고 있는 신작이나 미발표작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세대를 경유한 작가들의 만남을 거치면서, 동시대 미술계에 던지는 화두가 무엇인지 살펴볼 기회가 된다는 점도 주목하면 좋겠다.

<어디로 주름이 지나가는가> 전시는 참여 작가들의 교류에서 파생된 결과물과 함께 미술관 전시사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던 고 공성훈·김차섭·조성묵 작가의 유작과 미발표작을 공개한다. 한편 별관에서 진행하는 아카이브 자료는 미술관의 굵직한 역사를 보여주는 200여 점의 도록, 출판물, 사진, 영상 및 관계자 인터뷰로 채워졌다. 

아르코미술관은 1974년 종로구 관훈동에서 개관하여 1979년에 동숭동으로 이전하였고 초기 십여 년 대관전시 중심의 운영 시기를 지나 1990년 후반부터 간헐적으로 자체 기획전을 추진했다. 이후 마로니에미술관(2002년), 아르코미술관(2005년)으로 개칭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체기획전 중심의 미술관으로서 자리를 매김했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전시명(어디로 주름이 지나가는가)은 들뢰즈의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의 한 문구에서 차용됐다. 사유체계로서 주름이 지닌 과거와 미래의 접점, 여러 흔적과 접촉의 계기로 생긴 다양체의 속성을 전시에 접목했다. 이를 통해 미술관의 현재가 접점의 궤적과 경로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살펴보고, '미술관의 미래가 어떤 접점들로 그려질 것인가?'를 사유한 것이다. 아카이브를 통해 작가 발굴 및 재조명, 실험적 작품의 창작산실로서의 미술관의 기능을 상기하고, 전시에서 드러나는 작가 간 교류의 결과물을 통해 관계의 확장으로 형성되는 방법론을 고찰했다고 한다.

서로 다른 배경의 작가들의 상호작용

전시에 참여하는 주요 작가들은 앞선 홍명섭과 김희라 작가 외에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싱크레티즘을 실현시킨 여덟 팀의 방식도 소개하겠다. 

첫째, 서용선, 김민우, 여송주 작가는 소리 반응에 의한 미디어 공간과 실체에 대한 조형적 실험작업으로 입체 설치와 연관된 드로잉 이미지를 유니티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실체와 사물과의 관계를 표현했다. 이는 관객의 상호작용에 반응하며 오랫동안 표현의 주제이자 대상이었던 인간의 형상을 역동적으로 보여준다. 

둘째, 신학철, 김기라 작가는 한국 사회의 다양한 공동체, 정치, 이념, 집단, 상처, 세대 갈등 등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개인과 집단의 욕망과 현상이 변질하는 지점을 탐구한다. 그들이 공통으로 하는 이야기는 '예술은 어떠한 역할을 다시 맡게 될지 예측하기 힘들지만, 예술의 역사가 보여주듯 시대와 예술은 언제나 밀착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란다. 다시 말해 시대는 예술작품에 각인되지만, 예술에 의해 다시 발굴되는 시대도 있었다는 것을 직시하라고 전한다.

셋째, 박기원, 이진형 작가는 선배 작가와 방법론, 대화로 교류한 일종의 화답을 페인팅 신작으로 제작한다. 더불어 선배 작가 역시 후배 작가의 작업에 대한 오마주 회화를 선보인다.

넷째, 이용백, 진기종 작가는 두 작품의 합작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두 작가의 지구 종말론적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디오라마 세트장에서 연출한 드라마틱한 미장센을 드러내며, 내용을 극대화한다. 우리가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던 평범한 풍경들이 모두 가상의 세계인 환영이었음을 에러 메세지를 통해 확인하는 순간처럼 설치된 공간은 반복적으로 현실과 가상 즉, 밤바다와 재부팅 블루스크린의 화면으로 전환된다.

다섯째, 정정엽 작가. 장파 작가의 할망 작업 계획을 듣고 정정엽 작가는 현재 진행하고 있던 나방 시리즈 작업을 연결지어, 인간 외 생명의 군무가 여성 신의 다양한 이미지와 어울릴 것이라고 판단하여 서로의 작업에 화답하는 방식으로 교류한다. 나방 작업은 전시장에 떠도는 느낌이 반영되는 설치로 구현한다. 

여섯째, 조숙진, 이희준 작가. 각각 미국과 한국에서 활동하는 조숙진 작가와 이희준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작업이 탄생한 시대적 배경과 도시의 풍경 안에서 서로 다른 시차를 두고 추상이라는 언어를 기반으로 교류한다. 이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 이면과 표면을 설치와 회화의 지지체로 삼고 추상의 방법론으로 서로의 작업을 연결하려는 시도이며 이를 통해 세대 구분과 지정학적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이희준 작가는 조숙진 작가의 작업을 면밀히 관찰하고 상상하며 얻은 감각을 토대로 제작한 신작을 소개한다. 

일곱째, 최진욱, 박유미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박유미 작가의 〈여성 어부〉를 둘러싼 주제를 최진욱 작가의 회화 매체를 통해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발전시킨다. 이는 최진욱 작가가 박유미 작가의 주제 속으로 기꺼이 스며들거나 잠입하는 일종의 작업적 주석이자 화답이다. 

여덟째, 채우승, 최수련 작가. 서로의 작업 태도에 대한 호기심으로 교류하게 된 두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이미지와 텍스트의 혼용 방식, 토속 신앙이나 한 사회의 신화적 이미지에 대한 공통의 관심을 바탕으로 서로의 작업이 한 공간 안에서 어떻게 서로 침투하고 화답하는지 그 방식을 엿보고자 한다.  

#아르코미술관#미술관#대학로#아르코#5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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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빼고 문화예술만 씁니다." 20년 넘게 문화예술계 현장에 몸담고 있으며, 문화예술 종합시사 월간지 '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년)과 한겨레신문(2016~2023년)에서 매주 문화예술 행사를 전하는 '주간추천 공연·전시' 소식과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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