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찰이 국가대표 축구선수 황의조(31·노리치시티) 선수를 성관계 영상 불법촬영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면서 그동안 잠잠했던 '디지털 성범죄' 문제가 수면에 올라왔다.
과거 디지털 성착취의 대표 '소라넷', 웹하트 카르텔로 드러난 '양진호웹하드', 생후 6개월 아이도 성착취한 '손정우 웰컴투 비디오', 기업형 성착취로 성장한 '조주빈의 N번방' 등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디지털 성범죄 악몽이 황 선수 사건으로 소환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의 역사부터, 대표적인 디지털 범죄 사건들, 이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 사건들 이후 변화한 법률 제·개정 등을 자세히 살펴보는 내용을 담은 책 <디지털성범죄는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살인'이다>(저자 강나경, 박영스토리)가 지난 10월 출간됐다. 이 책은 본격적으로 황 선수 사건이 불거지기 전에 출간되어 주목 받지 못했었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디지털 성범죄'가 시한폭탄처럼 언제든 터질 것을 예견한 것일까. 그래서 한국여성의정 전문위원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 강나경씨에게 왜 '디지털 성범죄'를 주제로 책을 쓰게 됐는지 11일 물었다. 그러자 저자는 답을 하기 앞서 반문했다.
"대한민국은 여성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일까?"
이같은 물음을 먼저 던진 저자는 이어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답했다.
"긴 시간 동안 진화하는 디지털 성범죄가 유난히 우리 사회에 만연하게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디지털성범죄의 역사를 돌아보았습니다. 엿보기에 익숙했던 과거부터 소라넷, 양진호웹하드, 손정우 웰컴투 비디오, 조주빈의 N번방, 그리고 딥페이크까지 살펴보니 부족한 젠더의식의 사법부, 방관한 언론, 그리고 여성과 소외계층의 사건사고에 무관심한 입법부가 그 주체였습니다. 이 주체들을 통해 사회 전반에 여성대상 범죄는 범죄로서 예방 대책을 마련하기보다 남녀갈등의 소재로 전락해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을 확인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피해를 호소하기 힘들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사례들을 접하게 되면서 그 피해자들에게 손을 내미는 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전문가들이 많다는 것 또한 알리고 싶었습니다."
책 내용을 살펴보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대한민국의 성장 중심에는 IT(정보통신) 산업이 있었다. 그리고 IT 강국의 막강한 파워는 대한민국에서 디지털 성범죄를, 인터넷 속도의 변화만큼이나 빠르게 치밀하게 조직적으로 커지게 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 진화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 현 주소'를 저자에게 물었다.
"(얼마 전 우리 사회가) 한참 황의조 선수의 불법촬영물 유출 때문에 말이 많았으나 잠시 잠잠했는데, (최근) 다시 다른 여성과의 영상통화 중 신체 노출을 몰래 녹화했다는 추가 의혹이 제기되면서 (언론에서) 다시 기사화 되고 있습니다. 이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성범죄의 현주소입니다.
잠시 잠잠해졌다고 느낄 뿐, 디지털성범죄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타인의 신체를 녹화하고, 동의하지 않은 불법촬영물을 촬영하는 이런 행위 자체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디지털성범죄자들이 이 사회 곳곳에 녹아 있다는 것입니다.
핸드폰에서 사진 촬영이나 동영상 촬영시 소리가 나도록 제작된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불법촬영물이나 불법촬영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할 만큼 우리 사회가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책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보호를 위한 다양한 정책과 관련된 기관들을 소개하고, 디지털성범죄 예방이나 가해자처벌에 대한 각 전문가들의 흩어져 있던 의견들도 모아서 정리해 담았다. 무엇보다 필요한 법 개정 내용과 디지털 성범죄를 차단하기 위한 사회적 조치를 해외 사례와 함께 구성했다.
끝으로 저자 강나경씨는 우리 사회를 향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사회, 안전하게 피해를 호소하고 보호할 수 있는 정책, 피해자가 동의할 수 있는 가해자에 대한 법적처벌, 디지털 성착취의 특수성이 고려된 제도개선 등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노력하는 대한민국이길 바란다"고 당부를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한민국은 여성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인가'라는 제 질문에 '안전한 나라'임을 자부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