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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부는 지난 7일 "킬러문항을 배제하고도 수능의 상위권 변별력은 높았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킬러문항을 풀기 위해 사교육을 통해 공부해야 했는데 앞으로는 학업 본연에 집중하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교육부는 또한 언론 브리핑에서 "킬러문항 배제만으로도 어느 정도 공교육 신뢰 회복의 계기가 마련됐다"며 "학생 수준에 따라 사교육의 유혹이 있을 것으로 보지만 그것은 개인적 판단(의 문제)"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수능 만점자와 표준점수 수석 학생 둘 다 사교육 혜택을 입은 졸업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육부의 이러한 설명은 설득력을 잃었다. 자화자찬이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용인외대부고 졸업생으로 알려진 수능 만점자와 대구 경신고 졸업생인 표준점수 수석 학생은 강남 대치동의 유명 입시학원에 다녔다고 한다. 

믿기 어려운 사교육비 조사 결과
 
 통계청이 조사해서 발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 중 가구 소득수준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및 참여율
통계청이 조사해서 발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 중 가구 소득수준별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 및 참여율 ⓒ 통계청
 
올해 3월 7일 통계청이 교육부와 공동으로 전국 초중고 약 3천여 학급을 대상으로 실시하여 발표한 '2022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구의 월평균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사교육비 지출과 참여율이 높았다. 월평균 소득 300만 원 미만인 가구의 사교육비는 17만 8천원에 머물렀으나, 800만 원 이상 가구의 사교육비는 64만 8천원에 달했다. 사교육 참여율도 월평균 소득 800만 원 이상 가구의 경우 88.1%로 가장 높았고, 300만원 미만 가구는 57.2%로 가장 낮게 나타났다.

그런데 사람들은 통계청의 조사 결과를 잘 믿지 않는다.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실제 사교육비 지출 규모와 너무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겨나는 것일까? 설문조사 응답자가 사교육비 지출 규모를 축소하는 경향성도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다음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통계청의 조사는 초중고 재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다. 앞서 언급한 수능 만점자의 학원비 등 고교 졸업생의 데이터는 포함되지 않는다. 둘째, 통계수치에 나타나지 않는 '평균의 함정'을 무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소득 800만 원 이상 가구의 사교육비가 64만 8천원이라는 사실은 어디까지나 평균일 뿐, 실제로는 매달 수백만원을 사교육에 쓰는 가구도 존재한다.

사교육비를 '투자'로 여기는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교육을 부족한 학교 공부를 보충하기 위한 목적보다는 남보다 앞서가기 위한 '투자'로 여긴다. 비용 대비 수익을 따져 득이 큰 쪽을 선택하는 행위가 '합리적 소비'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2022년 합계출산율이 0.78까지 떨어진 현실에서도 자녀 사교육비는 줄어들기는커녕 외려 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설명한 연구 결과가 있다. 일본의 <사회보장 인구문제 연구소> 수석 연구원 Fukuda는 '동아시아의 자녀 양육비와 저출산: 한국, 일본, 대만 및 EU 25개국 비교 연구」'2018년) 논문에서, "학력을 중시하는 동아시아에서 자녀 양육비, 특히 높은 교육비는 자녀 수 결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부모가 자녀에게 투자할 수 있는 자원량은 자녀 수와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자녀를 적게 낳을수록 교육에 더 많이 투자한다는 것이다.
 
부모의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자녀가 공부를 잘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가설을 간접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은 국가장학금 신청 관련 자료를 살펴보는 것이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문정복(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전국 39개 의대와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재학생 중 절반 이상은 가구소득이 상위 20%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학기 국가장학금을 신청한 학생 가운데 55.19%가 고소득층(소득분위 9~10구간, 올해 기준으로 월 소득 1080만 원 이상)으로 분류돼 탈락한 것이다. 자신이 9~10구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인지하여 장학금을 신청하지 않은 학생까지 합하면 고소득층 비율은 이보다 훨씬 더 높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사교육 잡을 대책은 있나?

우리나라의 사교육은 사실상 통제가 힘든 '괴물'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능의 난이도는 결정적 요인이 아니다. 올해처럼 불수능이면 사교육이 더 기승을 부릴 것이고, 그렇다고 수능을 쉽게 내면 내신을 겨냥하거나 대학 심층면접 등을 대비하기 위한 사교육이 팽창할 것이기 때문이다. '풍선효과'는 수도 없이 경험하지 않았던가. 수능 9등급 상대평가를 유지하면서 사교육을 억제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정부가 진정 사교육을 잡을 의지가 있다면, "킬러문항을 없애 사교육을 잡겠다"고 했던 말이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교육전문가들이 되풀이하여 지적해 왔듯이, 과도한 입시 경쟁체제를 완화하지 않고 사교육을 잡는 방법은 없다. 지금부터라도 교육체제의 근본적 전환에 나서야 한다. 대통령과 정부가 킬러문항 배제보다 훨씬 더 큰 그림을 그려야 할 때다.

#킬러문항#사교육비#교육격차#수능만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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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전에 있는 한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맘껏 놀고, 즐겁게 공부하며, 대학에 안 가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상식적인 사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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