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좋아서 주야장천 혼자 하다 보면 함께 하는 이들이 알아서 붙는다고 하던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했더니 함께할 동지들이 생기는 경우가 내게도 생겼다.
일요일마다 홀로 북한산에 오른 지 3년 차에 접어드는 동안, 함께 오르고 싶다는 지인들이 생겨났다. 어떤 이들과는 몇 회로 끝나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과는 모임이 결성되기도 한다. 그중 한 달에 한 번, 월급이 나오는 주말에 함께 북한산에 오르는 산모임이 있는데 이전 근무지 학교에서 함께 했던 동료 5인으로 구성된 팀이다.
30대부터 40대, 50대가 고루 모여서인지 만나면 산행의 즐거움뿐 아니라 삶의 고뇌와 지혜까지 나누게 된다. 30대 M에겐 딩크족의 젊은 감각을 배우고, 40대인 K와 A에겐 동년배 자식을 키우며 맞는 부모 역할의 고충을 나눈다. 나보다 2살 많은 S언니는 우리 모두의 고민을 먼저 겪으며 만들어 간 자신만의 철학과 현명한 생각들을 나눠주니 어찌 이 만남이 기대되지 않겠는가.
지난달 다른 일정과 겹친 분들이 있어 한 달 거르고 만났더니 이달 모임은 더 반가웠다. 12월인데도 내내 봄 날씨 같더니 갑자기 금요일 밤 사이 기온이 곤두박질쳐서 토요일 아침은 혹한의 한복판이었다. 전날 일기예보를 보니 아침 영하권에서 시작해 점점 기온이 내려가는 기세였다.
"내일 아침 쨍한 겨울 날씨 제대로겠어요. 따뜻하게 입으시고 장갑, 방한모자 착용하세요."
겨울산의 위용과 변덕은 산행하는 사람들의 수와는 무관하니 산 대장의 책임은 클 수밖에 없다. 알록달록 꽃과 이름 모를 풀, 파릇파릇한 초록잎을 보여주던 포근한 모습과는 딴판의 산을 만날 수도 있다는 걸, 겨울 북한산을 이미 여러 차례 겪었으니 미리 예상했어야 했다.
갑작스러운 동장군을 조금은 여유롭게 맞이하고 싶은 마음에 늦은 오전 11시부터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최고참 언니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산 아래에서 둘레길을 돌며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예고된 강추위 때문인지 등산객이 현격히 적었다.
내 집 주변엔 눈이 오지 않았는데 북한산엔 새벽에 한 차례 눈이 내린 모양이었다. 얇은 홑겹의 흰 눈옷을 입은 북한산의 정경과 코끝 쨍한 영하의 날씨가 이제 진짜 겨울이 시작됐음을 확연하게 알리고 있었다.
이런 날은 경사가 심한 바위가 많은 경로는 피해야 한다는 걸, 난 그새 깜빡하고 몸에 밴 습관으로 의상봉 쪽으로 향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산에 오르다 보면 더워져 겉옷이 거추장스럽던 기억이 판단을 흐리게 했던가.
두런두런 근황을 나누며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본격적으로 경사가 급한 구간이 계속 이어지면서 서서히 바뀌어 갔다. 한 발, 한 발 바위산을 오르며 조심스러워진 발길에 우리의 대화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얇게 깔린 눈은 영하의 기온에 얼어 있었고 잘못 디뎠다간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제일 앞장선 내가 조금이라도 미끄럽지 않은 부분에 발을 디디며 수시로 뒤에 따라 오르는 이들에게 "천천히, 조심히 오르라"는 소리를 연거푸 해댔다. 올 한 해 몇 차례나 올랐던 구간인데도 M은, "우리가 전에 왔던 곳이 맞느냐"며 울상이었다.
계절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겨울산의 모습에 감탄만 하고 있기엔 우리의 처한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바위는 미끄럽지, 위웅위웅 몸 전체를 흔드는 바람은 또 왜 그렇게 매섭던지… 이런 상황에선 2kg만 덜 나갔어도 몸이 날아갔겠다는 농담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혼자 오를 때나 날씨가 좋을 때 오르던 경로가 살짝 언 구간이 많아 다른 방향을 찾느라 시간이 더 걸렸다. 아이젠을 챙겨 오지 않은 내가 원망스러웠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채고 M이 "저, 아이젠 있어요!" 했다. K도 가방에 담아왔다고 했다. 미리 안내도 안 했는데 알아서 챙겨 오다니, 청출어람이었다.
아이젠을 한 짝씩만 나눠 채웠는데도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나머지 산행은 한 발에 채운 아이젠이 다 했다. '겨울산의 필수품은 아이젠'이란 사실을 그새 잊고 방심하다니, 이리 한심할 수가. 2~3년 차 운전자가 제일 위험하게 운전한다는데, 내가 그 짝이었다.
매주 오르던 구간이었지만 다른 일행이 혹여 미끄러져 부상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해서인지 이번 산행은 예전 같지 않았다. 시간은 더 걸리고 마음은 더 쓰였다. 한 달에 한 번 산행에서 찍은 사진으로 자신의 카톡 프사를 교체하는 K가 이날도 사진을 위해 맞춰 입은 올 화이트 겨울 의상이 제 빛을 발하지 못했다.
얼마 전에 했다는 컬이 멋진 그녀의 펌머리는 아름다울 '미'에 친할 '친'자를 쓰는 분이 오신 듯 사방에서 달려드는 거센 바람에 칼춤을 춰댔다. 아무리 힘들어도 핸드폰 카메라만 들이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포즈를 취하던 그녀가 이번엔 사진도 마다한 걸 보면 이날 산행이 어떠했는지 말 다했다.
그래도 뒤돌아 내려갈 수도 없어 죽을 둥, 살 둥 전진해 오른 의상봉에서 건진 사진 몇 장이 있었다. 올라오는 동안은 온통 제 몸 안위에만 신경 쓰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의상봉에 오르니 상고대가 쫙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소나무 잎끝에 잎 모양을 따라 펼쳐진 눈꽃이 장관이었다. 평소 같으면 전혀 그럴 만한 데가 아닌 곳이 이날은 포토스폿이 되었다.
정상에 오르고 지친 몸엔 당이 필요했지만 준비해 온 과일은 패스. 추운 데다 바람이 세서 아무도 차가운 과일을 먹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M이 타온 따뜻한 믹스커피만이 유일한 구원 투수였다.
다행히, 하산길은 양손에 스틱을 든 모양이 흡사 스키라도 타고 내려가는 듯 순조로웠다. 산속으로 나 있는 하행길엔 칼바람도 언 바위도 없었다. 흡사 지옥문을 뚫고 천국으로 들어선 듯, 그제야 우린 여유롭게 웃으며 "이제 살았노라"고 웃을 수 있었다. 왠지 내가 시킨 고생인 것만 같아 나는 연방 미안해하고 덕분에 오늘 살아 돌아왔다며 일행은 연신 고마워했다.
내려와서 뜨끈한 바지락 칼국수와 두툼한 파전을 먹으며 기다림에 지쳐있던 최고참 언니에게 전하는 우리의 무용담엔 자꾸 살이 붙었다. 그 현장에 함께 하지 못해 매우 아쉽다는 언니에게 "오늘 올라가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라며 또 자지러졌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각자의 삶을 나누며 깔깔거릴 때는 우리가 그토록 힘겨운 산행을 마치고 온 사람들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이번 산행의 산 대장은 누구 하나가 아니었다. 그것은 겨울 산행 필수 장비를 알아서 미리 챙긴 일행들이었고 서로 나눠 낀 한쪽의 아이젠이었으며 서로가 힘들까 봐 독려하던 마음들이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데 산 대장이 여럿인 덕에 무탈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혹시 누군가 겨울산 산행을 계획 중이라면 지금 당장 등산 가방에 아이젠을 넣으시라고 당부드린다. 눈이 내린 후 기온이 급강하 한 날이라면 그냥 집에 머물며 넷플릭스 보는 게 가장 안전한 겨울나기 방법이라는 것도.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 함께 게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