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사를 짓는 우리는 농한기를 맞아 특별한 여행을 계획했다. 작년 우리 농장을 방문했던 이탈리아 유기농 농부의 농장을 찾아간 것! 로마에서 기차를 타고 피렌체로 이동했다. 2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피렌체 역에는 밥티스트와 일라리아 가족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지난 10일부터 일주일간 이탈리아 팜스테이가 시작됐다.
이탈리아 유기농부 밥티스트와의 인연
밥티스트와의 인연은 작년 6월에 시작됐다.
"우리는 토스카나 지방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유기농사를 짓는 농부인데, 한국을 좋아해서 여행할 예정이다. 괜찮다면 당신의 유기농장에 방문해서 농사에 대해 공유하고 배우고 싶다."
팜스테이를 운영하는 우리로서는 다른 나라 유기농부야말로 가장 만나고 싶은 손님이다. 이른 아침 경주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밥티스트를 만났다.
당시 미국 농부 리즈도 와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한국, 이탈리아, 미국 유기농부가 만나는 자리가 됐다. 재미있게도 모두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농사를 짓고 직거래로 채소를 판매하는 농부들이었다.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기후위기로 날씨가 극악하게 변하면서 농사짓기가 어려워지는 현실, 육체노동의 고단함, 하지만 환경을 보호하는 유기농부로 산다는 보람과 자부심, 직거래 하면서 생기는 소소한 일 등 국적은 달라도 모두가 비슷비슷한 경험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밥티스트는 특히 <육룡이나르샤>라는 한국 사극을 우연히 보게 된 후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 유럽과 다른 색다른 유교문화, 격렬한 권력 투쟁 속에서 벌어지는 역사 등이 재밌었다고 했다. 50부작이나 되는 이 드라마를 두 번이나 시청했다고. <뿌리 깊은 나무>도 재미있게 봤는데, 세종대왕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한글도 금세 배웠다고 했다.
헤어질 때 겨울에 시간이 되면 언제든 이탈리아 자기 농장에도 방문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몇 달 전, 이번 겨울에 이탈리아 농장에 찾아가도 되겠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초대해주었다. 혹시 한국에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가져가겠다고 했더니 농부답게 미나리 씨앗과 깍두기용 무 씨앗, 고추장을 만들 수 있는 고추 씨앗을 부탁했다.
현지인 집으로 여행 간다는 것이 설레기도 하고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다. 항상 손님을 받는 주인 역할만 하다 이번엔 손님으로 간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농장에 도착하니 너무나 편안하게 대해줘서 금세 내 집처럼 지낼 수 있었다.
밥티스트와 일라리아의 농장은 피렌체에서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대도시랑 가까워서 고립감도 덜하고 사람들이 직접 농장에 방문해서 채소도 구입해갈 수 있었다. 병원도 학교도 가까웠다. 도시 한복판을 살짝 벗어나면 넓은 밭이 펼쳐져 있었다.
유기농은 온실가스를 다량 발생시키는 화학농에 비해 온실가스를 땅에 잡아주고 환경을 보호한다. 유럽연합에서는 기후위기에 대한 전략으로 유기농을 육성시키기 위해 지원을 해준다고 한다. 특히 이탈리아는 유기농 면적이 17%에 달한다. 먹거리에 대한 자부심과 관심이 많아서 슬로푸드 운동 등이 발달했고, 농산물 직거래 장터가 활성화되어 있다고 한다.
농장일만 함께 하려고 갔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피렌체는 꼭 보고 가야 한다며 기꺼이 하루 시간을 내어 피렌체 관광을 시켜줬다. 관광객이 정말 많고 방문한 유적지들 모두 아름다웠다.
피렌체 지역은 여름에는 온도가 40도까지 올라가지만 습하지 않고 비가 거의 안 오고, 겨울에는 비 오는 날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폭우가 내리지는 않았는데, 최근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밭이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처럼 이곳 농부들도 정말 농사짓기 힘든 한 해였다고.
비트와 컬리플라워, 루꼴라, 포기 상추, 양배추, 치커리, 블랙 케일 등을 함께 수확했다. 수확하는 방법이 우리와 조금씩 달랐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채소도 달랐다. 토스카나라는 블랙 케일은 마치 선인장처럼 생겼는데, 이 지역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정도로 현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채소라고 했다.
우리는 제철꾸러미라는 방식으로 유기농 채소 회원을 모집해 매주 택배로 보내는 방식으로 직거래를 하는데 비해, 이탈리아는 택배 시스템이 좋지 않아서 모두 직거래 장터에서 팔거나, 고객들이 직접 농장에 방문해 농산물을 사간다고 했다.
다양한 고객들이 오는데, 자연스럽게 친분도 생겨서 진짜 고객과 소통하는 직거래를 하고 있었다. 유기농 소비자들이 대도시에만 집중되어 있어 직접 직거래를 하지 못하는 우리 상황과는 많이 달랐다.
농사 시작한 지 5년 정도 된 농부들답게 열정이 넘쳤다. 이곳에 귀농하면서 100년도 더 된 집을 땅과 함께 구입해 아직까지 계속 보수중이라고 했다. 이제 3살이 되어 가는 아들은 스마트폰 대신 밭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아이가 아는 채소 이름이 벌써 수십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탈리아 농부들은 어떤 음식을 먹는지 궁금했는데, 정말 계속 파스타와 피자를 먹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파스타 형태부터, 이게 정말 파스타인가 싶을 만큼 색다른 모양의 파스타까지 매일같이 다양한 파스타를 먹었다, 아침에는 밥티스트가 직접 구운 잡곡빵에 이웃이 만들었다는 치즈를 함께 먹었다. 물론 농장에서 갓 수확한 신선한 채소 샐러드는 기본.
떠나기 전날 오후엔 밥티스트가 김치와 호떡을 함께 만들자고 했다. 농장에서 자라고 있는 작지만 맛있는 배추를 수확해 단순하고 기본적인 김치를 만들었다. 양파와 마늘을 다지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긴 했지만, 모두들 굉장히 즐거워했다.
갓 만든 김치와 갓 구운 피자로 저녁 식탁을 차리니 맛이 묘하게 조화로웠다. 식사 후엔 설탕과 땅콩을 넣은 호떡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 여행할 때 정말 맛있게 먹었다는데, 호떡을 이렇게 쉽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유기농으로 함께 만난 친구, 그리고 연대감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아쉬운 이별의 선물로 일라리아가 직접 수확한 꽃을 선물로 주었다. 기차역에서 꼭 다시 만나자며 포옹을 하고 헤어졌다.
먼 곳에 떨어져 살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유기농사를 짓는 이탈리아 농부들과 따뜻한 연대감을 공유한 시간이었다. 예쁘고 건강하게 사는 젊은 농부들의 모습을 보니 기운도 나고 즐거웠다.
우리가 함께 나누는 유기농이라는 '씨앗'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데 기여하기를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