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19일 낮 12시 13분]
얼마 전 최상목 경제부총리 내정자가 족보도 없는 '역동경제론'을 들고나와 마치 정부의 국정 기조인양 포장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자유시장경제가 주도하는 강력한 구조개혁을 통해 한국경제의 역동성을 복원하겠다 하니, 듣기만 해도 가슴마저 웅장해지는 느낌이다. 흡사 이명박 정부의 '747'이나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가 생환한 듯한 착각이 든다. 금융위기에 준하는 비상경제 상황에서 시장 실패를 경험하는 경제 주체가 급증하고 있는데, 정부는 빠지고 모든 걸 시장에 맡기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글을 쓰다 보면 가끔 얼굴이 화끈거릴 때가 있는데, 관치(官治) 수장의 무능함과 뻔뻔함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이 그렇다.
선험적으로, 관치의 검증된 무능과 철 지난 신념이 만나면 경제가 역주행하는 역동(逆動)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기재부·금융위·한국은행으로 이어지는 경제권력의 본질은 검증된 무능이다. 자영업 위기, 부동산PF 사태 등 코로나 부채에 짓눌린 내수경제는 이미 부실 뇌관이 제거된 상태다. 내수와 수출의 동반 부진으로 내수 공백을 수출로 메우는 것도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특히, 중국발 수출 충격이 현실화되면서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서 순식간에 13위까지 밀려난 상태다. 그마저도 14위인 호주에게 꼬리를 밟힌 형국이다. 올해 상반기 무역수지 순위는 세계 208개국 중 200위를 기록할 정도로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이제는 불황형 흑자를 넘어 불황형 적자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설상가상으로, 경제권력의 원천인 기재부는 역대급 초과세수 파동에 이어 역대급 세수펑크를 내고도 '긴축을 통한 경기 부양'(건전재정 중독)이라는 황당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의 경제 운영은 정책 수단에 불과한 '건전재정'을 국정 기조라고 우길 정도로 총체적 난국임을 보여준다. 금융위는 그동안 팬데믹 이자폭리를 방치하다가 갑자기 나타나 은행의 '상생금융'에 선처를 호소하는 '착한 사마리안'을 자처하고 있다. 한편, 가계부채의 진짜 주범인 한국은행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해결사 행세를 하고 있다. 민간부채의 불길을 조기에 진화할 수 있는 골든타임(2015~2018년)을 다 날려버려 부채가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났는데, 뒷북 금리충격으로 국민에게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을 안긴 장본인이다. 철 지난 신념이 경제권력의 검증된 무능과 결합하면, 불가능해 보이는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해진다.
윤석열 정부의 2기 경제팀이 들어서면서 권한만 있고 절대 책임지지 않는 관치카르텔이 만개하고 있다. 부채발 민생위기, 부동산발 경기 침체 등 민생경제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데, 철 지난 시장주의 신념에 올라탄 무능한 경제관료에게 또다시 나라의 운명을 맡겨야 할 처지다.
무능한 관치에 날개 꺾인 한국경제
한국경제는 내수·수출 동반 부진으로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는 저성장 함정에 빠진 상태다. 그동안 내수 공백을 수출로 메워 3% 내외의 성장률을 유지하며 저성장을 방어해 왔지만, 이마저도 어려워졌다. 차이나 리스크가 발현하면서 1%대 성장이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수출경제의 버팀목인 대중국 수출은 반(反)중국 정서가 확산되면서 2021년 25.3%에서 2022년 22.9%로 하락했다가 올해 10월 다시 18.2%로 쪼그라들었다. 핵심 경제지표가 코스닥 잡주처럼 추락하는 경우는 금융위기 때가 아니고서는 경험하기 어렵다. 윤석열 경제팀은 대외 변수 탓으로 돌리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수출경제가 코로나 이전의 균형으로 돌아가는 길이 막혀버린 상태다.
무역수지가 보내는 메시지는 더 충격적이다. 작년 무역수지는 -472억 달러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 전환했는데, 올해에도 -200억 달러에 육박하는 대규모 적자가 예상된다(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낸 '2023년 수출입 평가 및 2024년 전망 보고서'는 -150억 달러 예상 - 편집자 말).
무역수지 흑자로 글로벌 순위를 매기면 더욱 참담하다. 올해 상반기 기준, 세계 208개 국가 중에서 200위를 차지할 정도로 적자 폭이 실로 어마어마하다. 구체적으로, 2020년 8위→2021년 18위→2022년 197위→올해 상반기 200위라는 참담한 성적을 거뒀다. 윤 정부 들어 188계단이나 하락한 것이다. 이 정도면 추락하는 수출경제에 날개가 없는 형국이다. 그나마 유지해 오던 불황형 '흑자'(수출보다 수입이 더 줄어 발생하는 흑자) 수지구조가 '불황형 적자'로 바뀔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내수의 근간인 고용시장 성적표는 고용양극화 충격으로 압축된다. 관치에 깃든 친기업 편향이 노동개혁으로 형질이 변질되면서, 헐값에 노동을 공급하는 비정규직 시장이 성수기를 맞았다. 우리나라가 사상 처음으로 비정규직(시간제 및 특수형태 근로자 제외) 세계 1위를 차지하며 비정규직 선도 국가의 반열에 올랐다. 2021년 기준, OECD 국가 비정규직 순위를 보면, 2018년 7위(20.6%) ⟶ 2019년 4위(24.4%) ⟶ 2020년 2위(26.1%) ⟶ 2021년 1위(28.3%)에 등극했다.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은 812만 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37%를 차지한다. 10명 중 4명이 비정규직이고 이들 평균임금은 196만 원으로 정규직 평균의 54% 수준에 불과하다. 있으나 마나 한 '동일가치노동·동일임금' 원칙을 차치하더라도 비정규직의 노동생산성에 50% 할인율을 적용하는 기울어진 시장을 참으로 용인하기 어렵다. 정부가 노동개혁의 본질을 비정규직·정규직 임금격차 해소에 두어야 하는 이유다.
이처럼 처참한 성적표는 윤 정부의 철 지난 시장주의 신념과 경제관료의 검증된 무능이 결합해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민생과 경제가 아무리 엉망이라 해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기재부의 나라에선 이러한 정책 실패가 오히려 영전의 발판으로 작용한다. 초대 무능인 추경호 전 경제부총리는 명예로운 퇴진과 함께 정계 입문을 준비한다고 한다. 역동경제론을 주창하는 최상목 전 경제수석은 신임 부총리로 영전해 2기 경제팀을 진두지휘할 예정이다. 책임지지 않는 경제권력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건전재정 중독... 경기불황에 긴축으로 대응하는 정부
정부의 재정운영 정책은 코로나 사태에 비견할 만한 참사에 가깝다. 국민경제는 이전 정부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쏘아 올린 의도적인 과소추계 의혹, 즉, '20조 원+a'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도 못했다. 팬데믹 위기의 한복판에서 2년 연속 50조 원이 넘는 역대급 세수추계(2021년 61.3조 원, 2022년 53.3조 원) 오류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필요한 곳에 필요한 자금을 적기에 투입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 코로나발 매출 충격 등 민생경제 위기를 조기에 진화하지 못했다. 경질만으로도 부족한 대형 사고를 치고도 단 한 명의 경제관료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번에는 윤 정부의 경제라인이 맥락도 없는 건전재정 중독에 걸려 올해 60조 원 안팎의 역대급 세수펑크를 냈다. 정책 수단에 불과한 건전재정이 국정 목표로 변질되면서 민생경제는 긴축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물가·고금리 충격을 맨몸으로 견뎌야 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정부가 건전재정을 강조하면 할수록 재정건전성은 더 악화되고, 민생경제는 더 깊은 내수 불황의 늪에 빠져들었다는 것이다.
건전재정에 스며든 윤 정부의 친자본·친기업 편향이 세수펑크 참사를 일으켜, 이제는 확장적 민생재정의 꿈마저 사라져 버렸다. 세수펑크의 주범은 '법인세만 빼고 긴축' 재정이다. 올해 세수펑크 중 법인세 감소분만 무려 25.4조 원(전체의 43%)으로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 건전재정 중독에 걸려 민생곳간을 털어 나라 곳간도 못 채우는 무능한 정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가짜' 건전재정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허리띠를 졸라매고 나라 곳간만 지키는 긴축 중독을 의미한다. 긴축해서 경기 부양이 가능하다는 것도, 물가 때문에 서민이 죽는다며 확장적 민생재정을 거부한 것도, 건전재정으로 민생경기를 살리겠다는 것도 이에 속한다. 재정운영도 엉망진창이기는 마찬가지다. 죽어도 국채 발행은 안 된다면서 한국은행에서 단기차입 급전을 융통해 돌려막기 일쑤다. 더욱 한심한 것은 세수펑크 공백을 메우기 위해 환율 방어선인 외평기금(외국환평형기금)까지 끌어다 쓰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기재부의 건전재정 중독은 더 이상 방치하기 어려운 총체적 난국에 빠진 상태다.
'진짜' 건전재정은 재정의 경기 대응력을 높이는 전문 역량을 보이는 것이다. 경제가 좋을 때는 긴축을 통해 경기 과열을 미연에 방지하고, 경제가 어려울 땐 확장 재정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과 같은 비상경제 상황에서는 확장적 민생재정을 통해 민생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살려내 다시 곳간을 채우는 전문 역량을 보여야 한다.
가계부채 주범은 한국은행, 공범은 무능한 금융관료
최근 기재부, 한국은행, 금융위가 갑자기 나타나 가계부채 해결사를 자처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단언컨대, 가계부채를 키운 주체는 한국은행이고, 공범은 팬데믹 이자폭리를 방치한 금융관료들이다. 이 중에서도 가계부채의 7할은 한국은행의 금리정책 실패에 기인한다.
가계부채 팽창을 조기에 진화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부동산 열풍의 초입 구간인 '2015년~2018년' 금리 구간이다. 이 기간에 미국은 무려 9번에 걸친 고강도 금리 인상을 통해 가계부채 불길을 조기에 진화한 바 있다. 미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2015년 77%에서 2022년 80%로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이 중요한 시기에 저금리 정책(3회 인하, 2회 인상)을 고수해 가계부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이로 인해 GDP 대비 가계부채는 2015년 72%에서 2022년 90%로 대폭 증가했다.
더욱이 골든타임을 놓쳐 가계부채가 이미 늘어날 대로 늘어났는데 2021년 하반기 들어서야 미친 금리인상에 돌입했다. 뒷북 금리 인상으로 잡으라는 물가는 못 잡고 잠재부실만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한은의 실기한 금리정책이 가계부채 불씨가 부동산시장을 타고 들불처럼 번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최근 이러한 한국은행이 가계부채 해결사를 자처하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기저기 훈수를 두고 다닌다. 금리를 두고 벌이는 탁상공론보다는 한국은행 차원의 특단의 부채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다.
코로나 부채 방치한 금융관료도 공범
2019년 이후 발생한 코로나 부채 증분만 1000조 원에 육박한다. 그중에서도 대출로 임대료를 돌려막는 사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자영업자대출은 2019년 685조 원에서 올해 상반기 1043조 원으로 금리충격에 노출된 코로나 대출 증분만 358조 원이나 된다. 미친 금리 인상으로 자영업자·소상공인이 직격탄을 맞는 사이, 금융기관은 코로나 위기에 힘입어 매년 50조 원 이상의 이자폭리를 거둬들였다. 금융위가 내놓은 대책이라고 해 봤자 다섯 차례에 걸쳐 3년간 연장했던 만기연장·이자유예 조치가 사실상 전부다. 그마저도 지난 9월에 종료되었다. 민생경제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부실대책으로 코로나 충격을 견뎌온 것이다.
팬데믹 이자폭리를 방치한 주범은 금융당국의 무능이다. 금리충격 발현시, '금리의 금융안정' 기능을 강화해 초과이익이 발생하는 구조적 오류를 방지했어야 한다. 일례로, 금리 폭등으로 가산금리의 목표수익률을 초과하는 폭리가 발생하면, 목표수익률을 조정해 가산금리를 낮추고 우대금리를 확대해 금리의 경기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 그렇다면, 초과이익을 사후적으로 회수하는 '횡재세'와 같은 복잡한 이슈가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계부채가 이미 시스템 리스크로 진화했는데, 금융위는 여전히 있지도 않는 금융기관의 선의에 의지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금융기관의 팔을 비틀어 만들어 내는 억지 춘향식 '상생금융 패키지'가 바로 그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은행이 단초를 제공했다면, 무능하기 짝이 없는 금융당국이 그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민생경제를 비상 상황으로 인식하고, 가계의 이자부담을 실질적으로 덜어낼 수 있는 특단에 특단의 코로나 부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검찰권력보다 경제권력 개혁이 더 시급한 이유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어낸 동력은 산업화과정에서 경쟁 우위 원천으로 작용했던 관치(官治)의 힘이며 그 중심에 경제관료가 있다. 관치 경제학이 만개했던 고도 성장기(1980년대~외환위기 이전)에 노동과 자본 요소를 집중적으로 투입해 제조 기반의 수출 강국을 견인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혁신마저 관리하는 관치 카르텔이 이제는 한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무능한 집단'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경제에 진입하면서 관치의 한계효용이 소진되고 있음에도 관료 의존도가 더 높아지는 역설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전문가 없는 전문가 조직인 관치카르텔이 무서운 이유는 어느 정부든 경제정책을 위탁 경영하게 만드는 생태계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물론, 윤석열 정부와도 전략적 협력관계를 성공적으로 복원해 경제정책 전반을 주도할 뿐만 아니라, 민간 분야와도 수직적 갑을 관계를 견고하게 유지해 노후보장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특히, 모피아(MOFIA)로 불리는 소수의 행정관료 집단이 학연과 지연으로 견고한 진입장벽을 만들어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하나회'가 실패한 모델이라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한 '모피아'는 성공한 모델이다.
문제는 자정 능력을 상실한 경제권력이 개혁을 거부하면 그들만의 리그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치에 깊게 뿌리내린 친기업·친자본 편향과 통제받지 않는 권력독점 문제를 개혁하지 못한다면, 결코 코로나 이전의 성장 균형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민생경제는 소득격차, 고용격차, 주거격차, 지역격차 등 경제양극화·사회불균형 문제에 빠져 지금보다 더 깊은 각자도생의 바다를 표류하게 될 것이다. 국민경제 차원에서 보면, 검찰권력 개혁보다 경제권력 개혁이 더 시급한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송두한은 국민대 특임교수(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