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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오후 8시께, 서울역 2층 대합실에서 몸을 녹이던 한 노숙인이 서울역 광장으로 나가는 모습. 대합실에는 "기온 급강하에 따른 서행운전으로 열차 도착 예정시간이 늦어지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19일 오후 8시께, 서울역 2층 대합실에서 몸을 녹이던 한 노숙인이 서울역 광장으로 나가는 모습. 대합실에는 "기온 급강하에 따른 서행운전으로 열차 도착 예정시간이 늦어지고 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 김화빈
 
"좁고, 불편하고, 시끄럽고, 숨도 편히 못 쉬는 (서울시가 제공한) 쪽방보다 차라리 길이 더 낫습니다." - 20년차 노숙인 김아무개씨

강풍이 불고 눈발이 날리던 지난 19일 오후 8시께 찾은 서울역 지하연결통로(아래 지하도). 10여 명의 노숙인들이 지하도에 모여 몸을 녹이고 있었다. 그중 일부는 지하도 벽에 나무상자와 침낭 등을 바짝 붙이고 누워 혹여 다른 곳으로 쫓겨날까 맘을 조리는 모습이었다. 

전날 18일 서울에 한파특보가 내려지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역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와 쪽방촌 주민을 위한 동행목욕탕인 아현스파랜드를 차례로 방문해 노숙인과 쪽방주민을 만났다. 오 시장은 "이번 한파는 오래 갈 것 같아 걱정이 많다. 몸을 따뜻하게 녹일 수 있는 공간을 점검하러 왔다"고 했다. 앞서 서울시도 124명의 거리상담반을 투입, 1100여개의 침낭·방한복·핫팩 등 구호물품을 지급하고 353명의 노숙인들에게 응급 잠자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 노숙인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19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서울역 일대 노숙인들은 서울시의 한파대책을 두고 "쇼잉"이라며 "쪽방은 좁고 자유롭지도 못하고 씻을 곳도 없고 불편해 (오히려) 길이 편하다"고 혹평했다. 일부는 "서울시보다 봉사단체에서 도움받은 기억이 더 많다"고도 했다.

"서울시, 숫자 줄이기만 급급... 문제 해결 마인드 없어"
 
 오세훈 서울시장이 18일 한파 취약계층을 위한 시설점검을 위해 서울시 동행목욕탕(아현스파랜드)을 찾아 목욕탕 종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8일 한파 취약계층을 위한 시설점검을 위해 서울시 동행목욕탕(아현스파랜드)을 찾아 목욕탕 종사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서울시
 
2년차 노숙인이자 아랫마을야학 학생 꺽새(별명)는 "2개월간 서울시 소개로 (쪽방 생활을) 해봤는데 마음 편히 씻지도 못하고 불편했다"며 "무엇보다 생활을 유지하려면 시에서 요구하는 여러 조건들을 충족해야 했는데 자존심도 상하고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서울역에는 여러 단체들이 와서 도움을 주고, (쪽방과 달리) 마음 편히 '숨'이라도 쉴 수 있었다"며 "고시원은 그나마 낫지만, 쪽방은 눈치 보이고 불편하다. 다른 노숙인들 얘기도 들어보면 '답답해서 못 산다'더라"라고 덧붙였다.

실제 서울시가 제공한 임시주거는 주로 고시원·여인숙(648명), 쪽방(85명)에 쏠려 있었다(2020년 기준). 이는 서울시의 비용 지원 상한액이 2023년 기준 33만 원(주거급여)으로 책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오마이뉴스>에 "서울시의 임시주거 지원은 '집'이 아닌 고시원·여인숙·쪽방으로 방음도 안 되고, 공간도 협소하다. 화장실이나 샤워공간은 몇 명이 공유하는지 모를 정도"라며 "서울시의 임시주거 지원은 주거로 가는 발판이 아닌 주거 하향경로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19일 오후 7시께 방문한 서울역. 홈리스들의 짐이 길 위에 놓여있다.
19일 오후 7시께 방문한 서울역. 홈리스들의 짐이 길 위에 놓여있다. ⓒ 김화빈
 
서울시가 제공하는 이른바 쪽방에 대한 '비선호'는 노숙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이날 오후 6시 20분쯤 서울역 지하도에서 만난 20년차 노숙인 김아무개씨도 "(서울시 소개로 들어간 방은) 좁고 냄새나고 답답하다"며 "서울역이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 다 같이 길에서 사니까"라고 했다. 오전 11시쯤 서울역에서 만난 16년차 노숙인인 A씨 또한 "솔직히 (노숙인들을 지원하려면) 공무원도 (많이) 둬야 하고 세금도 써야 하는데 우리한테 쓰고 싶겠나"라고 말했다. 

홈리스행동 아랫마을야학에 다니는 노숙인 아아(별명)도 "오 시장은 (노숙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인드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의식이 있다면) 지금 이 지하도를 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필요할 때면 쪽방에 가서 주민들과 사진 찍으면서 임시방편(정책)으로 책임지지 않을 범위 내에서 쇼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동현 활동가는 "길보다 고시원이 낫다고 많은 시민들이 생각하지만, 쪽방에서 살 바엔 '거리에서 숨이라도 쉬며 사는 게 낫다'고 얘기하시는 당사자들도 많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홈리스는 눈에 보이는 '빈곤' 아닌가"라며 "(서울시의 노숙인 정책은) 올림픽 등 국제대회가 열릴 때 빈민들을 가두고 (외곽으로) 철거시켰던 정화 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파 피해 온 지하도... 쫓겨나면 갈 데도 없다"
 
 19일 오후 8시께 서울역 지하도에서 홈리스행동의 '화목한 지하도' 피켓 활동이 진행됐다. 화목한 지하도 피켓 활동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열리며 서울스퀘어 측이 '영업' 등의 이유로 지하도에서 노숙인을 쫓아내는 것에 대해 항의한다.
19일 오후 8시께 서울역 지하도에서 홈리스행동의 '화목한 지하도' 피켓 활동이 진행됐다. 화목한 지하도 피켓 활동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열리며 서울스퀘어 측이 '영업' 등의 이유로 지하도에서 노숙인을 쫓아내는 것에 대해 항의한다. ⓒ 김화빈
 
노숙인들을 치워버려야 할 존재로만 여기는 인식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겨울이 되면 노숙인들은 추위를 피해 지하도로 옮겨오는데 인근 건물 등에서 쫓아내기도 한다. 지하도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유지인데도 보안이나 미관 등의 이유로 경비를 동원해 노숙인들을 밀어내는 것이다. 

같은 날 저녁 <오마이뉴스>가 찾아간 서울역 인근의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 지하도. 그곳에선 '화목한 지하도로'라는 이름의 노숙인 항의시위가 한창이었다. 홈리스행동과 노숙인들은 지난 6월 27일부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서울스퀘어의 노숙인 강제퇴거에 항의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서울스퀘어 측) 보안요원이 나와서 '영업시간 끝나고', '밤 10시나 11시 이후에나 오라'고 얘기해요. 어떨 때는 '(홈리스들 때문에) 통로가 좁아지니 사람들 지나다니는 길 만들라'고 (명령)하고요. 나라에선 우리한테 인정사정없어요. 이 추운 날 갈 곳 없는 세상에 길바닥으로 쫓겨나면 어떻게 될까요." - 서가숙(홈리스행동 아랫마을야학 학생) 

장서연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도 "그 지하도는 공유지로 서울스퀘어에 노숙인을 내쫓거나 감시할 법적 권한이나 권리는 없다. 넓게 보면 강요(죄)에 해당할 여지가 있다"라며 "이 한파 속 지상으로 쫓겨나면 홈리스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 상황 아닌가. 서울시나 중구청이 지하도를 관리할 책무가 있음에도 이 상황을 방치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처음 항의시위에 참여했다는 아아는 "이 지하도에서의 삶은 하루하루가 불안한,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생활이 아닌 생존을 하는 것"이라며 "이곳에서 취침해 봐서 안다. 너무 추워서 잠이 안 온다. 가수면 상태가 되는데 여기서도 쫓아내면 어디서 (한파를) 버티라는 것인가"라고 토로했다. 그는 "지하도에 (숨죽여) 사는 노숙인을 거리로 내쫓지 않을 정도의 국력이 (대한민국에) 있지 않나"라고 덧붙혔다.
 
 서울역 9번 출구 지하도 벽에 부착된 안내판.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스퀘어 측은 노숙인들이 지하도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 영업에 방해된다며 퇴거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해당 지하도는 서울 중구청이 관리하는 공용 지하도로 드러났고, 7월 초 관리 주체를 서울 중구청으로 표시한 안내판이 새로 부착됐다.
서울역 9번 출구 지하도 벽에 부착된 안내판.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스퀘어 측은 노숙인들이 지하도 공간을 점유하는 것이 영업에 방해된다며 퇴거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해당 지하도는 서울 중구청이 관리하는 공용 지하도로 드러났고, 7월 초 관리 주체를 서울 중구청으로 표시한 안내판이 새로 부착됐다. ⓒ 홈리스행동
 

서울스퀘어 측은 관련해 공식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노숙인을 쫓아낸다는) 민원이 접수돼 해당 기관(서울스퀘어)에 방문해 주의를 주었고, 이후 추가 민원이 제기되지 않았다"며 "일부 노숙인분들이 서울스퀘어에서 퇴근하는 직원을 성희롱하는 문제가 있어 보안팀이 퇴거요청을 한 것으로 들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직원의 무리한 업무(언행)가 있었고 유감 표명을 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도 노숙인들의 불편 호소가 있고 6개월 넘게 항의시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다"고 밝혔다. 

이날 시민들은 100미터가 넘는 지하도를 분주히 오고 갔지만, 시위에 관심을 보인 이는 드물었다. 약 한 시간이 흘렀을 쯤 한 시민이 이동현 활동가에게 "(우리나라는) 일본 (복지 정책을) 따라가려면 멀었다"고 말을 건 것이 전부였다.

"사람들이 서울역 노숙인 풍경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저희가 '액세서리'는 아니잖아요? (우리를) 다 포용하지는 못해도 지하도에 '사람'이 버티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 아아 (홈리스행동 아랫마을야학 학생)
 
 19일 오후 8시께 서울역 지하도에서 홈리스행동의 '화목한 지하도' 피켓 활동이 진행됐다. 화목한 지하도 피켓 활동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열리며 서울스퀘어 측이 '영업' 등의 이유로 지하도에서 노숙인을 쫓아내는 것에 대해 항의한다.
19일 오후 8시께 서울역 지하도에서 홈리스행동의 '화목한 지하도' 피켓 활동이 진행됐다. 화목한 지하도 피켓 활동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열리며 서울스퀘어 측이 '영업' 등의 이유로 지하도에서 노숙인을 쫓아내는 것에 대해 항의한다. ⓒ 김화빈

#노숙인#한파#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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