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죠. 하지만 저 개인의 영광이라고 생각치 않고요 K팝 팬들의 사회적 활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 중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선정된 K팝 기후활동가 이다연(21)씨가 20일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O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지난 11월 BBC는 2023년 전 세계에 영감을 주며 영향을 끼친 '올해의 여성 100인'을 선정해 공개했다. 인권변호사 아말 클루니, 미셸 오바마 전 미국 영부인, 페미니스트의 아이콘으로 손꼽히는 언론인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다양한 분야 100인의 여성 중 놀랍게도 기후위기 대응 분야에서 28인이 선정되었고 그 중 한국인의 이름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이다연. 올해 21세인 그녀를 BBC는 이렇게 소개했다.
'이다연은 'Kpop4Planet'을 통해 전 세계 K팝 팬들을 모아 기후 위기에 대항하고 있다. 2021년 설립된 '케이팝포플래닛'은 한국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및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에게 기후 행동 이행과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BBC, 2023년 11월21일)
'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 이후에 시작된 변화
이다연씨가 활동하는 'Kpop4Planet'이라는 단체는 지구를 위한 K팝이라는 뜻의 온라인 기반 캠페인 조직이다. 기사를 본 제작진은 그녀를 인터뷰 하기 위해 연락을 취했지만 쉽지 않았다. 일본 유학 중이었기 때문. 이수아 작가가 수차례 SNS를 통해 일정을 조율해 마침내 지난 20일 생방송 전화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김희숙 진행자가 K팝 팬으로서 기후실천을 하게 된 구체적인 계기를 묻자 이다연씨는 매우 겸손하면서도 현실적인 답변을 했다.
"사실 Kpop4Planet이 만들어지기 전에도 K팝 팬들은 지구를 위한 실천을 하고 계셨어요. 좋아하는 스타의 이름으로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거나 나눔 행사를 하는 등 단순히 좋아하는 스타의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사회적 실천을 하는 쪽으로 문화가 바뀌고 있었죠."
실제로 <오늘의 기후> 방송팀도 지난 주 적십자와 함께 나눔 현장 생방송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특정 가수의 팬클럽이 한 달에 한 번씩 이웃나눔을 실천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이처럼 개인의 취향을 사회공헌으로 바꿔가는 팬심의 흐름을 '기후위기 극복'이라는 구체적인 실천으로 표출해내려고 모인 'Kpop4Planet'은 가장 먼저 대형 기획사들의 음반 및 굿즈 대량 판매 유도 행위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다량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생함에도 팬심을 이용해 사재기를 유도하는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라는 캠페인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는데요 97개 국에서 1만 여명의 팬들이 온라인 청원에 참여해주셨어요. 그 청원을 모아서 메이저 엔터기획사들에게 전달했지만 처음에는 답변이 없었어요. 하지만 K팝 팬들의 특성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거잖아요.(웃음) 답변 나올 때까지 계속 밀고 나가면서 다음 액션으로 나갔죠."
그 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치 곤란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실물 앨범들을 K팝 팬들로부터 기부를 받았는데 3주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8천 장 이상의 앨범을 기부받았다. 이 앨범들을 대형 기획사 별로 분류하고 그 기획사들에게 '우리가 구매한 소중한 아티스트들의 앨범들이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전달했다. 특히 BTS의 소속사인 하이브 사옥 앞에서는 K팝 팬들이 꿀벌 복장을 하며 댄스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노력 끝에 대형 기획사들이 실물 앨범을 디지털 플랫폼 앨범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들이 '기업'을 향해 고개를 돌린 이유
그런데 주목할 점은 지금부터이다. 플라스틱 앨범 전화으로 시작한 K팝 팬들의 기후대응 실천은 이제 K팝 스타를 간판으로 활용하고 있는 글로벌 대기업들의 진정한 탄소중립 실천을 촉구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그동안은 엔터산업 쪽을 향해 목소리를 냈었는데 올해부터는 K팝 아이돌들의 영향력을 활용하고 있는 기업들을 향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어요. 우리나라 전기차 차를 생산하고 있는 H 자동차의 경우도 친환경 전기차를 홍보하며 모델로 BTS를 내세우며 우리나라 뿐 아니라 해외, 특히 인도네시아에서는 정말 미래지향적인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H사가 인도네시아의 기업으로부터 알루미늄을 조달받으려 하는데 그 현지 기업이 인도네시아에 석탄발전소를 세우려 하고 있어요. 생각해보면 석탄으로 만든 알루미늄으로 전기차를 만든다는 셈이죠. 그래서 한국 팬들 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팬들도 실망을 많이 했었고 그래서 (우리는) H사에 진짜 깨끗한 에너지로 알루미늄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은 블랙핑크 멤버들을 모델로 활용하고 있는 해외 패션 기업에 대해서도 옷 생산과정의 환경오염 및 탄소배출 사례를 들며 그린워싱(위장 친환경)이 아닌 진짜 친환경을 실천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는 정말로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인가? 하고 의심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 일본에 와보니 너무 인기가 높다는 게 실감나요. K팝은 물론이고 한국 스타들의 패션이나 잡화나 음식, 영화, 드라마 모두 인기가 높았어요."
일본 유학을 와서 K팝의 위상에 대해 더 절감하게 됐다는 이다연씨는 이번 BBC 올해의 여성 수상이 개인의 영광이 아닌 함께 활동하고 있는 K팝 기후활동가들과 도와주신 K팝 팬들 모두의 영광임을 강조했다.
"K팝 액티비즘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게 가장 기쁘고요. 앞으로도 K팝을 사랑한다는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우리가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K팝 액티비즘'이라는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뜨인 것은 제작진만이 아닐 것이다. K팝과 기후를 연결해가고 있는 미래세대의 활약에 박수를 보내며 이들의 다양한 실천기를 우리 방송 또한 지속적으로 담아갈 것을 다짐하는 시간이었다.
[참고자료]
- [BBC 100 Women 2023: Who is on the list this year?], (BBC, 2023년 11월21일)
덧붙이는 글 | * 이 내용은 지난 2023년 12월20일 OBS 라디오 '기후만민공동회 오늘의 기후' 방송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오늘의 기후'는 지상파 라디오 최초로 기후위기 대응 내용으로만 매일 2시간 편성제작되고 있으며 FM 99.9 MHz OBS 라디오를 통해 경기, 인천 전역에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방송되고 있습니다. 유튜브 라이브(OBS 라디오 채널)와 팟캐스트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