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너머 바다가 있었다. 그 앞 염전에 물을 대는 바닷물 저수지는 언제라도 몸을 담을 수 있는 천혜의 놀이터였다.
장편소설 <해루질> (등 출판사) 속 등장하는 공간은 태안반도다. 강병철 작가가 태어나 자란 서해안 갯마을이다.
1960년 대를 축으로 한 강 작가의 성장소설이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비슷한 삶을 살았던 동년배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고무줄, 오자미 등 놀이에서부터 국민교육헌장, 베트남전쟁 등 기억나는 역사의 기억도 엇비슷하다.
소설 속 등장인물의 이름만 바꾸면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 마을 이야기이자 내 이야기라고 공감하는 이유다. 특히 해루질하며 갯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 밤새워 책을 읽어본 것이 언제였던가? <해루질>은 그랬다. 소설을 위한 소설이 아니었다. 눈물 쏙 빠지게 야단을 맞고 울던 나의 유년을 부르는 데자뷔였다. 책장을 다 넘긴 새벽, 나는 잠시 쪽잠에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난생해 본 적 없는 해루질을 내가 하고 있었다." (시인 박용주)
"이제 환갑이 넘으신 부모님의 어린 시절 모습을 성큼 모셔다 놓는다. 그러다 가 첫 발령 직후 호기심 서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교복 입은 학생들 모습으로 슬쩍 바꿔놓기도 한다. 무심히 펼쳤던 책들의 문장이 점차 살아서 헤엄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이들 옆에서 고개 숙인 채 망설이던 내가 용기를 내어 손을 잡아줄 수 있게 만든다." (박선영, 용남중 교사)
소설 속 특별한 주인공은 없다. 마을의 다양한 인물들이 사연에 따라 그때그때 옴니버스 형식으로 등장한다. 머슴살이 청년,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도시로 식모살이 나가는 누나들, 주정뱅이 노인, 노름 중독자, 6.25의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눈사람 아줌마 등이다.
질곡의 역사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되짚어준다.
강 작가는 "등장인물과 사건들은 당연히 허구"라면서도 "귀동냥으로 듣거나 우연히 건진 이야기…. 이따금 옛 기억을 되살리며 캐릭터나 특징을 핀셋으로 찍어내긴 했으나 대부분 꾸민 이야기들이니 소소한 과장이 있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당시 서태안 지역 사투리를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강 작가는 "사투리 사용은 섬세하게 고민했던 부분"이라며 "주로 기억력에 의존해 유년의 언어를 복원했으나 너무 적나라해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부분은 수정 또는 생략"했단다.
강 작가는 충남 서산 출생으로, 소설집 <비늘눈>, <엄마의 장롱>, <초뻬이는 죽었다>,<나팔꽃>, <열네 살, 종로> 장편소설 <닭니>, <꽃 피는 부지깽이>, <토메이토와 포테이토> 등 23권의 책을 발간했다. 이외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발간했다. 그 <해루질>은 소설로는 10권째다. 그는 청소년 잡지 <미루> 발행인, 대전과 충남에서 작가회의 지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