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화관에 가서 본 가장 최신 영화가 뭐였더라. 겨울왕국2였던가. 영화 표 값이 오르고, 영화관을 대신할 수 있는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가 잇따르면서 자연스레 나는 내 방 '방구석 영화관'에 눌러앉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 주 외출하고 돌아온 동생이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누나, '서울의 봄' 봤어?"
"아니?"
"꼭 봐. (영화관에) 가서 봐."
웬 영화관? 갑자기? 하는 생각보다 평소 역사 이야기엔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동생이 내게 그 영화를 추천했다는 게 더 놀라웠다. 헌혈하고 받은 영화 관람권도 아니고, 직접 자기 돈을 내고 영화를 봤단 말이지, 네가. 동생은 심지어 부모님께 표를 선물해 드리기도 했다.
그 후로도 동생은 만나는 사람마다 속속 '서울의 봄'을 추천하는 탓에 궁금해졌다. 이 한겨울에 몰아치는 '서울의 봄' 열풍의 이유가 말이다.
젋은 층이 '서울의 봄' 본 이유
"요즘 핫(hot)하길래 궁금해서…" , "그 때 상황을 영화로라도 좀 더 알고 싶어서…"
영화 속 배경인 1970년대를 살아본 적도 없는 주변 2030층이 영화를 보러 간 가장 큰 이유는? 물어보니 바로 그게 이유였다. 그 시대를 직접 살아보지 않았다는 점 말이다.
주변 지인들에 물어보니, 역사 수업을 통해서 '전두환'이라는 인물과 그가 이끈 신군부에 의해 큰 일이 발생했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그래서 더 알고 싶었단다. 한편 결말이 정해진 이야기라 관심이 없었는데 배우들의 연기력과 몰입감이 좋다는 소식에 찾아 본 사람도 있었다. 실제 인물과 배우가 무척 닮아 있어서 놀랐다고.
"과거를 잊고 살아가는 느낌이 들어서요."
영화 '1987'과 '남산의 부장들'처럼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감명 깊게 봐서 관람했다는 지인도 있었다. 그 시대를 겪은 이들조차 어두운 역사를 반복하기도 하는데, 그 시대를 모르는 자신은 얼마나 엉터리로 살았을까 하는 고민을 안고 보게 되었다고. 그러다 보니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거나 보다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또래끼리 관람하게 되었단다.
영화 끝나도 안 일어서는 관람객들
2030의 관람은 영화관 밖에서도 이어졌다. 영화가 끝난 직후 '얼마나 골이 땡기는지' SNS에 치솟은 심박수를 인증하는 이른바 심박수 챌린지가 유행처럼 번졌다.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인 로튼 토마토 지수나 별점을 아시는지. '서울의 봄' 이후로 우리는 '심박수'라는 새로운 기준을 하나 더 갖게 됐다.
"글로 봐도 화가 났었는데, (영화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너무 잘하니까 덩달아 흥분하게 되더라고요."
한 지인의 말이었다. 치솟는 자기 심박수와 함께 사회적 이슈에 무감각했던 지난날을 돌아봤다는 이야기들도 이어졌다. 대략 모아본 평가는 다음과 같았다.
'무능함을 방조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 '한 쪽에서는 자기 살 길만을 찾을 때 다른 한 쪽에선 제 역할을 다한 진압군들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이런 모습이 지금은 다른 행태로 일어나고 있는 건 아닌지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걸 되새기게 됐다' 등. 어느 대학에서는 대자보가 붙었다는 기사도 읽었다(관련 기사:
"실패하면 반역, 승리하면 혁명"이라고요? 부산 대학가 '서울의 봄' 대자보 https://omn.kr/26q0v ).
"영화가 끝났는데도 다들 자리에서 안 일어나더라."
영화를 보고 온 동생은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고 했다. 영화는 모두 끝났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동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고. 그걸 지켜본 자신도 제때에 일어날 수 없었다고 했다.
함께 영화를 본 사람들이 동시에 느꼈던 씁쓸한 뒷맛. 그리고 그 감정이 만들어낸 일종의 연대가 공간을 움켜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서울의 봄이 지닌 단 한가지 오점
천만 관객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서울의 봄'은 메마른 극장가에 나타난, 실로 오랜만의 웰메이드 영화임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영화가 다루는 사실과 극의 진행, 구성 등을 논하지 않더라도 관심사나 나이에 상관없이 사회 구성원 전체에 과거 아픈 역사를 환기시키는 영화라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할 수 있겠다.
'서울의 봄'을 향한 수많은 감상평과 사진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한줄평이 있다.
'이 영화의 단 한가지 오점은 실화라는 것.'
영화가 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극적인 내용, 반란군과 진압군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만으론 다 설명하지 못하는 영화의 흥행과 챌린지 열풍의 이유를 단숨에 납득하게 만드는 웰메이드 한줄평이다.
12월 한겨울, 봄을 기다리는 시기에 개봉한 이 영화가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