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불현듯 찬찬히 얼굴을 살펴보니 좌측과 우측의 대칭이 무너져 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궁금증 속에서 고개를 갸웃하며 짙은 선글라스를 끼고 거리를 걷는다.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안면 윤곽술에 도통한 의사에게도 대놓고 하소연하기도 힘든 상황. 곤혹스러움이 주위 사방을 어둡게 만들었다. 이런 '안면 비대칭'은 어떤 이유로 생긴 것일까? 물음의 출발점이 모호하니, 답을 찾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앞의 서술은 이은정의 신작 소설집 <비대칭 인간>의 표제작 내용 중 일부다. 이야기를 시작하고, 이끌어가고, 마무리 짓는 솜씨가 만만찮다. 이 작가의 또 다른 단편소설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이 궁금해질 정도.
<비대칭 인간>에 실린 다른 단편들도 훈련과 연마가 거듭된 절차탁마(切磋琢磨)의 향기가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허술하지 않은 문장에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애썼을 시적(詩的)인 문체, 거기에 지난 세기와는 전혀 다른 삶과 마주한 21세기 청년들의 환멸까지를 담담한 시선으로 담아낸 역량까지.
이 정도의 '소설 읽는 즐거움'을 준 작가라면 만나보고 싶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독자로서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소설가 이은정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당신의 삶과 문학이 궁금하다"는 요지의 질문지가 동봉됐다.
아래는 다음날 돌아온 이은정의 답변을 요약·정리한 것이다.
"소설은 에세이에 비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장르인 듯"
- 이름이 생소한 독자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2018년부터 소설가로 살고 있는 이은정이다. 반갑다."
- 단편과 장편, 산문집을 포함하면 이번이 여섯 번째 책이다. 이전 작업들과 신작 <비대칭 인간>의 작업은 어떤 게 달랐고, 어떤 게 동일했나.
"책을 낼 때마다 작업 과정은 달랐던 것 같다. 이번 책에는 발표하지 않고 아껴두었던 작품 두 편을 실었다. 나만의 색깔을 확실하게 만들고 싶기도 했고, 지금이 아니면 내지 못할 것 같은 목소리를 하나라도 더 넣고 싶었기에 그랬다. 출간이란 여전히 두려운 것인데, 작업을 진행한 출판사가 내 의견을 충분히 수용해줘 힘을 낼 수 있었다."
- 산문집을 3권 냈다. 소설이 아닌 산문집을 자주 낸 이유가 있는지.
"소설로 등단하기 전 수필로 먼저 등단했다. 그래서 에세이 청탁이 많았다. 신문 연재도 하고 그러다 보니 에세이 원고가 많았다. 연말에 산문집 한 권이 더 나올 예정이다. 그 책을 마지막으로 이젠 소설에만 집중하려 한다."
- 소설을 쓸 때와 그 외 산문을 쓸 때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다를 듯하다.
"아주 다르다. 에세이는 충분한 검열이 필요하다. 쓰는 시간은 소설보다 적게 들지만 검열하는 데 오래 걸린다. 논픽션이다 보니 누구도 상처받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런 게 버거울 때가 있다. 소설은 그보다 자유로운 면이 있어 눈치를 보지 보지 않는 것 같다. 소설 쓰는 게 더 재밌는 이유가 그런 거다."
- <비대칭 인간>의 표제작을 잘 읽었다. 현대사회가 외형이건 내면이건 인간의 비대칭을 만들거나, 인식하게 한다면 그걸 만들거나 인식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은 뭘까.
"내 생각엔 '시선'이 아닐까 싶다. 타인의 시선, 카메라의 시선, 자신의 시선. 그걸 인식하는 순간, 그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들다. SNS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런 시선들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고 해서 사회적 시선을 피할 수는 없지 않은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 또한 무시할 수 없고. 문제는 그걸 인식한 후 매몰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다."
- <비대칭 인간>에 실린 작품들 속엔 '난관에 처한,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한 젊은이'가 자주 등장한다.
"순탄치 않은 청년 시절을 보냈다. 주저앉았던 적이 많았다. 나약하고 어리석었던 면만 떠오른다. 그 시절을 돌아보며 소설에 자주 등장시키는 건지 모르겠다. 현재 청년인 친구들도 삶이 팍팍할 것이 분명하다. 그들에게 '주저앉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주고 싶다. 대신 나처럼 너무 오래 주저앉지는 말았으면 한다. 이 말도 이제야 할 수 있게 됐다."
인간을 죽게 하는 것도, 살리는 것도 결국은 인간
- 이번 작품집을 읽으며 낙관보다는 비관, 희망보다는 절망, 웃음보다는 눈물을 더 많이 발견한 것 같다. 작가 스스로 세상과 인간을 그렇게 보는 건가.
"비관하고 절망하고 고단해야 희망이 빛을 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행복한 사람에게 희망은 큰 의미가 없지 않겠나. 그래서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보게 된다. 대놓고 희망을 말하지 않았다. 넘어져서 울고 있는 사람에게 희망을 조언하는 것도 때론 폭력이라 생각하니까. 나는 눈물이 많지만 긍정적인 편이다. 사람만이 희망이라 믿고 싶은데,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사람이 희망어었으면 한다."
- 소설 속 문장에서 시의 향기를 느꼈다.
"문예창작과 출신도 아니고 도와준 선생도 없다. 그래서 오랫동안 헤맸다. 처음에는 시인이 되고 싶어 시를 썼는데,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소설로 넘어왔다. 여전히 시는 좋아한다. 문학적인 표현을 공부하려면 시를 읽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지금처럼 겨울이면 백석(본명 백기행·평안북도 정주 출신·1912~1996)의 시를 다시 읽는다"
- 이번 작품집엔 7편의 단편이 실렸다. '나는 죽어도 한 편만 읽어야겠다'는 독자가 있다면 어떤 걸 권하고 싶은지.
"책 서두에 실린 '눈이 와요'다. 일단 지금 이 계절에 어울리는 배경도 그렇고,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가 연말이나 연초에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다. 독자들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니까."
- 소설을 통해 세상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사람을 죽게 하는 것도 사람이고, 사람을 살리는 것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풀어보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계속 고민하는 것이다. 그 단면들을 소설로 쓰면서 나도 많은 걸 깨닫는다."
소설가란 '자신과 싸우는 사람'이 아닐지...
- 책 읽고 글 쓰는 시간 외엔 뭘하나.
"영화도 책 읽듯 자주 본다. 글이 막혔던 어떤 날엔 영화 다섯 편을 한꺼번에 보기도 했다. 음악도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한다. 365일 쉬지 않고 하는 건 걷기다. 반려견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고, 뛰면 생각이 달아나서 천천히 걷는 게 좋다. 하루 2시간 정도는 걷는 것 같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걷는다."
- 소설가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소설은 대체 뭔가.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는 사람이 소설가 아닐까. 이기면 좋겠지만 지는 것도 수용해야 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소설은 싸움의 결과물이 될 테다. 좋은 소설을 읽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작가가 많이 싸웠구나, 많이 아팠겠구나'라는. 계속 싸우려면 체력과 내공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소설가란 직업을 평생 유지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 곧 열릴 2024년 계획은.
"장편소설 두 권을 출간하는 것과 드라마 대본을 완성하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다면.
"난 서울에 살지만 소설가는 전국에 있다. 지방 작가들의 내공이 더 깊은 경우도 많다. 이 악물고 써야 작품과 작가를 알리니까. 그런데 청탁이든 문학상이든 서울과 수도권, 유명 작가들에게만 집중돼 있는 게 현실이다. 재야의 고수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말하고 싶다. 그들에게 다양한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