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는 길, 요란함과 왁자지껄은 내려놓고 소박한 밥 한 끼와 맥주 한 잔이 고픈 날이 있다. 조용한 공간 속 나에게 집중하고 또 그런 공간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한 두 마디 나누는 것 자체가 따듯한 위로가 되곤 한다.
도시 속 나도 모르게 소모된 하루의 끝자락, 그렇게 한 공간에 잠시 두어놓으며 채워가는 시간.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에 위치한 이자카야 '아오바(あおば)'에는 그런 시간이 있다.
세 평 남짓, 총 여덟 좌석 남짓 작디작은 이자카야 아오바에는 사람 냄새가 가득하다. 홀로 즐기러 온 사람은 가볍게 주인장과 이야기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은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친구가 되기도 한다.
때로는 사람들이 함께 춤추는 공간이 되고,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작은 파티룸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아오바에는 많은 손님들의 흔적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이고 있다. 손님들은 사장님을 보러, 친구를 만나러, 때로는 사랑과 위로를 받으러 이곳을 방문한다.
본인의 이름 '새잎'을 의미하는 '아오바'에서 주인장 원새잎씨는 어떤 꿈을 꾸며 이 작은 골목, 작은 불빛으로 골목을 비추는 사랑방을 운영하고 있는 걸까? 그녀를 만나 따스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따듯한 불빛을 머금다
- 아오바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아오바는 갈현동 작은 골목에 위치한 이자카야예요. 솜씨네라는 작은 수선집이었던 공간을 리모델링하여 운영한지 막 일 년이 지났습니다. 초반에는 이른 낮부터 밥집, 카페, 술집을 다 함께 하다 지금은 이른 저녁부터 심야까지 여는 작은 이자카야로 운영하고 있어요.
여느 일본 드라마에 한 장면처럼 맥주 한 잔에 오뎅 우동 한 그릇하고 집에 가는, 가볍게 먹고 가볍게 갈 수 있는 메뉴 구성으로 다양한 잔술과 함께 든든한 식사 메뉴, 간단한 술안주를 팔고 있어요. 모두에게 따듯하고 위로가 되는 공간이길 바라며 운영하고 있습니다."
- 리모델링이라기엔 아주 조금 변한 것 같아요. 간판도 그대로, 공간의 문과 공간 모양도 그대로입니다. 그럼에도 아오바만의 색깔이 선명한 것 같아요.
"이 공간을 처음에 만난 순간, 운명처럼 이곳에서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세 시간쯤 고민했을까, 바로 계약했죠. 오래된 느낌과 빈티지한 것을 좋아하다 보니 이 공간을 최대한 살려서 하는 게 더 멋스러울 것 같더라고요.
큰 공사 없이 카펫 정도만 깔고 간판도 페인팅으로 이름만, 타공도 셀프로 진행했어요. 일본의 아기자기한 주방 느낌을 담아 소품과 집기들을 채워 넣으며 공간을 꾸몄습니다. 지금은 손님들의 방명록과 사진들로 아오바의 색이 더 진해지고 있습니다."
- 공간에서 찍은 손님들의 사진이 모여 한 쪽 벽을 이루고 있어요. 어르신부터 중고등학생 친구들까지 남녀노소 모두의 얼굴이 반갑게 담겨있습니다.
"저는 평소 가게 앞에 있는 평상에 앉아 있어요. 햇볕이 따뜻하게 들거든요. 앉아 있으면서 지나다니시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어르신이나 귀여운 학생들을 보면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를 나누곤 했어요. 평상 앞에 계시면 사진을 찍어드리기도 하고 간단한 디저트도 나눠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모두가 향유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된 것 같아요.
할아버지, 할머니를 워낙 좋아하기도 하고, 어린 친구들도 좋아해서 모두가 올 수 있는 정겨운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요. 이자카야로 바뀌면서 학생 친구들이 이용하지 못하게 돼 아쉽지만, 커서 오라고 말하면서 위로하고 있어요(웃음)."
- 밤이 되면 작은 골목에서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골목을 비추고 있습니다. 영화 <심야식당>이 생각나요.
"딱 그 <심야식당> 같은 공간을 생각했어요. 제가 일본에 두세 달 정도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자주 가던 술집에서 받았던 따뜻함을 잊지 못해요. 항상 혼자 외국인이었는데, 가면 단골 할머니분이 본인의 음식을 조금 덜어서 내밀기도 하고 편하게 말을 걸어주시기도 했어요. 계속 있다 보면 하나둘 손님들이 오면서 그 안에서 모두가 친구가 되더라고요. 퇴근하고 혼자 오신 분이 맥주 한 잔에 덮밥 한 그릇 편안하게 먹으면서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하고요. 그 문화가 너무 좋았어요. 제가 운영하는 공간도 그런 공간이길 바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사람 냄새 가득한 공간
- 아오바에서는 손님과 손님이 친구가 되기도 하고, 사장님과 친한 단골이 되기도 하면서 이 공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것 같아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사랑이 되는 아오바의 매력이랄까요?
"손님이 오시면 작은 서비스와 함께 한마디 말을 건네면서 이야기를 나누곤 해요. 그렇게 마음의 벽이 허물면서 편하게 대화를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옆 손님과도 이어지곤 합니다.
제가 음식을 하느라 바쁜 순간에는 손님이 손님을 응대하면서, 손님 간의 새로운 만남이 이어지기도 해요. 때로는 그들끼리 가까워지기도 하면서 공간에 추억과 경험이 쌓이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것들에 공감하고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모였어요. 저 또한 그런 시너지에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물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러 오신 분들도 충분히 향유하실 수 있도록 조율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 아오바가 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이길 바라나요?
"아오바라는 도화지에 어떤 색을 칠해도 상관이 없으니 어떤 것이든 저에게 영향을 주고, 흔적을 남기고 가시길 바라요. 그게 방명록 쓴 일기여도 좋고, 저와 나누었던 대화여도 좋거든요. 책을 읽거나 대화를 하거나 눈물을 흘리고 가셔도 좋아요. 서울이라는 도시가 낯설고 외로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오셔서 조용히 있다 가셔도 좋으니 제가 그 곁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사실 누군가와 소통하고 새롭게 인연을 쌓는 것이 쉽지 않은 요즘, 적당한 거리 속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새로운 추억을 쌓고 교류하는 공간이 소중한 것 같습니다.
"저는 원래 청주 사람인데, 서울로 직장을 잡아 올라오면서 친구가 많이 없었어요. 이런저런 커뮤니티 참여해 보고했지만 너무 인위적이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동네에서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친구를 만나거나 또는 친구 같은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공간이 있길 원했어요. 아오바가 친구가 줄 수 있는 편안함과 따듯함, 위로와 용기 같은 것들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말을 건네는 것도 그런 마음에서 시작했고요.
한 분 한 분 말을 건네기 시작하면서 손님들도 또다시 저를 보거나 저희 공간을 즐기러 오시게 되고 이렇게 점점 사람 간 나누는 마음이 모여 지금의 아오바를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때로는 친구나 진짜 아는 사람보다 남한테 이야기할 때가 더 편할 때 있잖아요. 가령 제주도 게스트하우스에 방문했을 때처럼요. 저희 공간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시원한 마음과 위로, 공감이 되는 시간이길 바라요."
함께 하는 즐거움
- SNS에 올린 단골손님들과 찍은 춤 동영상도 화제가 됐어요.
"처음 시작은 손님으로 온 댄스 선생님 덕분이에요. 춤 동영상을 찍고 싶다 했더니 흔쾌히 춤을 알려주셔서 단골손님들과 함께 다 같이 찍었습니다. 동영상이 화제가 되면서 아오바 홍보도 많이 되고 사람들도 재밌어하시더라고요.
그 이후에도 꾸준히 단골손님들과 동영상을 찍고 있어요. 너무 재밌습니다. 아오바만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는 느낌도 들고요. 요즘에는 유튜브에서 한참 유행했던 술 먹고 노래 부르는 콘텐츠인 이슬라이브를 기획 중이에요. 기대해 주세요."
- 이외에도 단골손님들과 1주년 파티, 바자회 등 즐거운 이벤트를 하는 걸 보았어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다양한 활동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바자회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놀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안 쓰는 물건들을 모아 기부하는 형태로 진행했습니다. 정말 많은 물건들이 모이고 손님들도 많이 참여해 주시면서 생각보다 큰 금액을 기부할 수 있었어요. '아오바 친구들'이라는 이름으로 기부했답니다. 뜻깊고 보람찬 행사였어요.
1주년 파티도 단골손님들께 감사한 마음을 보답하고 서로에게도 좋은 친구가 되면 어떨까 싶어 진행했습니다. MT 콘셉트로 게임도 하고 술도 마시면서 즐겁게 다녀왔습니다.
봄에도 축구, 피구, 줄다리기 등 어린 시절에 했던 느낌 가득한 체육대회를 개최해 보려고 합니다. 매일 똑같은 일상 속 새로운 즐거움이 있으면 좋잖아요? 사람들과 함께 이런저런 교류와 즐거움을 나눌 기회를 꾸준히 생각 중입니다."
- 사람과 함께 하는 즐거움이 아오바의 핵심인 것 같아요. 아오바는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아오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탄탄하고 귀여운 앞치마 제작을 고민 중인데요. 나중엔 귀여운 굿즈들도 많이 만들고, 사업적으로도 다양한 방면으로 뻗어나가고 싶어요. 지금의 아오바라는 공간은 어른들의 놀이터이자 사랑방이었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편안하고 즐겁게 놀다 가면서 사랑도 얻어 가고 친구도 얻어 가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