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무심고 간 선생님의 발자국이
뿌리가 되어 숲이 되어갑니다 ..."
김유철 시인(한국작가회의)이 6일 밀양 고 신영복(쇠귀, 1941~2016) 선생의 묘소 앞에서 낭송한 자작추모시 "나무 심고 간 사람 신영복"의 일부이다. 창원에서 종교·시민운동·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인사들이 새해를 맞아 선생의 묘소를 참배한 것이다.
참배에는 공명탁 목사(기독교), 배진구 신부(천주교), 고승하 전 민예총 이사장, 박종권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대표, 김유철 시인, 장순향 전 한양대 교수, 김숙연 열린사회희망연대 대표가 참여했다.
이들은 2022년 마지막날 함께 참배했다가 이번에 다시 찾았다. 이들이 신영복 선생 묘소를 찾기 시작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일부에서 고인을 의도적으로 깎아 내리자 뜻있는 사람들이 함께 묘소를 찾아 추모하기 위함이다.
묘소는 밀양시 무안읍 증산리 야산에 있다. 대법사 앞에서 임도를 따라 750m 정도 가면 묘소가 있고, 그 앞에는 '더불어숲'이라고 새겨진 바위가 있다.
묘소는 조약돌 박석이 주변에 깔려 있고 누군가 일부 돌에 "평화가 길입니다"라거나 "손잡고 더불어"라는 글자를 써놓기도 했다. 또 묘소 앞에는 참배객들이 쉴 수 있도록 의자도 마련되어 있다.
참가자들은 묵념에 이어 준비해 갔던 술을 차려놓고 큰절을 두 번 올렸다. 이어 김유철 시인이 자작 추모시(아래)를 낭송했고, 춤꾼 장순향 전 교수가 정태춘·박은옥 가수의 노래에 맞춰 '헌무'란 춤을 췄다.
마지막에 참가자들은 신영복 선생이 생전에 자주 불렀던 동요 '시냇물'을 불렀다. 이 동요는 "냇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 강물아 흘러 흘러 어디로 가니 /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라는 가사로 되어 있다.
장순향 전 교수는 "올해는 많은 악인들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을 갖게 해달라"라고, 김숙연 대표는 "여기 오기 위해 술도 마련하고 하나하나 챙겨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올해는 싸움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좋은 기운을 갖고 가서 열심히 싸우겠다"라고 말했다.
박종권 대표는 "잠깐이지만 함께 모여서 선생님을 기릴 수 있어 다행이다. 우리 사회가 더 사람 사는 살맛이 나도록 하기 위해, 힘을 얻어 가서 더 싸우고, 스스로 다짐을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배진구 신부는 "더불어숲이라는 말은 여러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룬다는 말이다. 마찬지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하나하나 개인 자신들의 길을 가면서 여러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듯 함께 살아갔으면 한다"라고 다짐했다.
고승하 작곡가는 "오늘 처음 참배를 하게 되었다. 어느새 우리들도 나이가 들어 가고 있다. 우리들도 선생님처럼 나잇값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공명탁 목사는 "우리 사회에 스승, 어른이 없다고 한다. 신영복 선생이 더 생각하는 시기다. 함께 사는 우리 사회를 위해 더 다짐하고 나서겠다"라고 말했다.
김유철 시인은 "오늘 아침에 선생님이 썼던 책을 다시 읽어 보았다. 개인도 사회도 선생님이 남긴 씨앗을 더불어숲이 되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 씨앗을 잘 키울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말했다.
의령에서 태어났던 신영복 선생은 아버지의 고향인 증산리 평산신씨 집성촌에서 자랐고, 밀양초교와 밀양중, 부산상고, 서울대를 나왔다. 그는 1968년 통일혁명당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아 구속되었다가 1988년 특별가석방되었으며,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냈고, 성공회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를 재직했다.
다음은 김유철 시인의 시 전문이다.
나무 심고 간 사람 신영복
김유철
민둥산에 나무 한 그루 심던 쇠귀 선생님
언제 숲이 될거냐는 말을
무심히 넘기더니
바람 두어 번
소낙비 서너 번
천둥 여러 번 지나갈 즈음
땅속 씨앗은 우레로 바뀌어 숲을 만듭니다
오래전 언 땅에 나무 심던 쇠귀 선생님
물기 없는 맨땅에
눈물로 길을 만들고
먼지 날리던 공간속으로 들어가
만져지지 않는 그리움만 남긴 채
온 적도 간 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숲은 시나브로 살이 붙어 갑니다
심어진 나무
뙤약볕아래 메마른 듯하고
심겨진 나무
비바람에 흔들린 듯하지만
나무심고 간 선생님의 발자국이
뿌리가 되어 숲이 되어갑니다
그리운 이여, 쇠귀 신영복선생님
숲에 들어가 그 이름을 부릅니다
쇠귀 신영복선생님
우리가 숲입니다
더불어 숲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