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19일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에 출연한 '고스톱 부부'는 악의적 왜곡과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로 '성추행범과 방임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당시 아동 성추행으로 신고당한 남편은 이후 수사기관 조사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아내 박효정씨는 1년 만에 처음 얼굴을 드러냈다. 2023년 12월 27일 숨진 채 발견된 배우 이선균씨의 죽음이 그 계기였다.[기자말] |
박효정(40)씨는 1년 전 출연한 <결혼지옥 - 오은영 리포트(아래 결혼지옥)>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딸을 껴안고 간지럽히던 남편과 그만하라고 소리치는 딸, 그리고 남편이 딸의 엉덩이를 찌르며 주사 놓는 시늉을 하는 모습이었다. "딸을 사랑해서 한 애정표현"(남편)과 "아이가 싫어하면 하지 말아야 하는 행동"(아내) 사이에서, 그 장면은 방송 직후 교묘하게 편집돼 온라인상에 퍼졌다.
시청자들은 아동 성추행범(남편), 성추행 방임자(아내), 친족 성폭력 피해자(딸)로 가족을 신고했다. 언론은 뭇매를 퍼부어대는 여론을 그대로 받아썼고, 경찰의 내사 단계부터 내밀한 수사 정보가 언론에 흘러나왔다. 결국 '무혐의' 결론이 났지만 수사기관은 사건 종결까지 8개월을 끌었다. 대중, 언론, 경찰은 가족을 끝없는 고통으로 밀어 넣었다.
"정말 살고 싶었고, 이겨내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 말을 들어주는 곳은 없었어요. 사람들이 너무 무서워요. 이러다 벼랑 끝으로 내몰려 죽게 돼야 제 이야기를 들어줄까 싶어요."
지난 6일 자택에서 만난 아내 박효정씨는 딸의 방 한편에 앉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방송 후 악의적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남편과 헤어졌다. 박씨는 열흘 전 배우 이선균씨의 죽음을 접하고 다시 한 번 고통에 시달렸다. 이씨가 목숨을 잃은 과정, 그리고 자신이 겪었던 그 '악순환'에 비슷한 점이 많았다.
"한 사람의 삶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분위기, 이미 사회적인 죽음을 만들어 놓고 모르는 체하는 사람들, 조사를 지연시키는 수사기관... 우리가 뭘 더 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칼이 아닌 바늘에 찔려 서서히 죽어갔어요."
'결혼지옥'을 벗어나려 한 곳에 '결혼보다 더한 지옥'이 있었다.
방송 다음 날부터 시달린 '악플'
"(방송 두 달 전) 촬영 당시 집 안에는 화장실을 빼고 카메라 20여 대가 돌아가고 있었어요. 몸에 마이크를 차고 있어서 소곤대는 말소리까지 다 녹음됐어요. 방 하나를 상황실로 쓰는 스태프 20여 명 앞에서 저희도 긴장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는데, 거기서 성추행이 벌어졌다니 너무 황당하죠."
박씨는 딸을 낳고 이혼한 뒤 2년 연애 끝에 2022년 8월 새 남편과 가정을 꾸렸다. 하지만 두 달 만에 위기가 닥쳤다. 양육관 차이에서 오는 다툼이 잦았다. 박씨의 권유로 남편이 <결혼지옥>에 사연을 보냈다. "부부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고 예전의 행복을 되찾기 위한 마지막 선택지"였다.
방송에서 부부는 '고스톱(Go Stop) 부부'로 불렸다. 본인 뜻대로 행동하는 경향의 남편(Go)과 이를 멈추게 하려는 아내(Stop)의 모습을 비유한 말이었다.
"촬영 전에도 작가님들과 사전 인터뷰를 진행하고 몇 시간 동안 통화하면서 갈등과 개선 방법을 수차례 이야기했어요. 저희의 문제점이 모두 영상에 담겨야 제대로 된 솔루션을 받을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촬영에 임했던 것 같아요."
방송이 나간 다음 날(2022년 12월 20일),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아동성추행(아동복지법 위반)으로 민원이 많이 들어와 사건을 관할청에 이송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방송작가가 알려준 대로 온라인 카페에 들어가 보니, 익명의 시청자들이 막말과 인신공격을 쏟아내고 있었다. 일부 장면을 악의적으로 편집한 '움짤(움직이는 사진)'도 돌았다.
"(촬영 당시) 문제점이 자세히 드러나야 한다며 아이가 싫어하는 행위를 방송사에서 재연해달라고 했고, 그 모습이 방송에 어떻게 나갈지는 단 1%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저희는 연예인이 아니라 일반인이잖아요. 오은영 박사님이 볼 수 있게 영상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 마음뿐이었어요. 정말 의도되고 연출된 장면이었어요."
경찰과 통화 내용, 바로 언론에
방송 이튿날(2022년 12월 21일)엔 남편의 '입건 전 조사(내사)' 사실은 물론 박씨와 경찰의 통화 내용까지 언론에 보도됐다. 해당 장면이 방송 취지와 다르게 전달돼 "당황스럽다"고 말한 맥락이, 경찰 조사를 인정할 수 없다는 '뻔뻔함'으로 바뀌었다.
일부 언론은 악의적으로 편집한 방송 장면을 썸네일(대표 이미지)로 뽑았다. '움짤'을 그대로 기사에 사용하기도 했다. 한 언론은 '경찰이 들이닥치자 남편이 당황스러워했다'며 사실을 왜곡해 자극적인 제목을 붙였다.
"경찰 조사를 받기 전부터 저희는 이미 성범죄자가 돼 있었어요. 통화 내용이 왜 기사로 나갔냐고 경찰에 물어보니 자기들은 모르는 일이래요. 진술 분석가 투입, 불구속 입건 등 수사 계획이 언론에 연이어 보도됐고 '새아빠'와 '의붓딸'이라는 자극적인 소재가 강조됐어요. 그때 생각했어요.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기사로 나가면 사실이 되는구나, 한 사람을 매장시키는 게 정말 일도 아니구나."
"갈등을 끝내고 행복해지고 싶었던" 박씨였기에 언론 보도는 충격이 컸다. 부부는 서로에게 화살을 겨눴고 이내 싸움으로 번졌다. 방송 출연 한 달 만에 관계를 정리하면서 부부상담도 중단됐다.
그럼에도 언론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박씨의 이혼 사실이 반복적으로 보도됐다. 대부분의 기사에는 박씨가 받은 고통 대신, "방송 때문에 남편과 관계를 정리했다며 원망하는 모습"이 강조됐다.
방송이 나가고 박씨는 "소중한 동료들을 잃어버렸"다. 절친했던 친구는 소셜미디어(SNS)에서 박씨를 차단한 채 연락을 끊어버렸다. 박씨가 일하는 직장은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그에게 시말서를 요구했다.
익명의 누리꾼들은 "아이를 걱정해서", "아이를 위해서"라는 말로 박씨의 딸에게 '불쌍한 아이', '도움이 필요한 아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불쌍하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하겠어요. 딸아이가 부모에게 친족 성폭력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엄청 퍼졌어요. 빨리 가정에서 아이를 분리시켜야 한다는 말이 가장 가슴 아팠어요. 아이가 받게 될 상처를 생각하면 그런 말들이 오히려 아동학대에 해당하는 것 아닌가요."
무혐의 후 언론은 '묵묵부답'
"서둘러 종결될 것 같던" 수사는 끝나지 않고 날짜를 더해갔다.
"방송이 나온 직후부터 경찰은 사건을 종결한다고 했어요. 남편의 처벌 불원서를 써서 내면 사건을 종결한다고 했어요. 두 달 뒤에도 전화가 와서 사건을 종결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사건은 종결되지 않았어요. 경찰·검찰에서 무혐의가 나오기까지 8개월이 넘게 걸렸어요."
"종결이 미뤄진 이유" 또한 박씨는 "여론 눈치를 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여론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았어요. 수사를 빨리 끝내버리면 모든 비난을 본인들이 감당해야 하니까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린 거죠. 하루하루가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목까지 숨이 조여오는 걸 느꼈어요."
2022년 12월 22일 경찰에 접수된 사건은 2023년 5월 9일에야 '혐의없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고 검찰은 8월 28일 남편을 불기소 처분했다. 박씨는 "영화처럼 극적인 결말을 기대했"다. "900건이 넘는 악의적 게시글과 댓글(명예훼손 및 모욕)을 경찰에 고소했"고 "800장이 넘는 고소장을 모았"다. 하지만 박씨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바로잡히지 않은 채 계속해서 유통됐다. 기대는 곧 절망이 됐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진실이 밝혀지기만을 기다렸어요. 그렇게 8개월을 죄인처럼 보내다가 무혐의가 나오자마자 온라인에 글을 올렸고 스무 곳이 넘는 언론사에 제보했어요. 하지만 아무도 봐주지 않았어요. 그땐 이미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던 거예요."
급성 스트레스 장애와 자살 충동까지
육아휴직 후 복귀를 앞둔 박씨는 최근 직장으로부터 '다른 근무지로 발령(순환근무)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급성 스트레스 장애가 심해졌다. 기억이 자주 끊겼고 우울감과 자살 충동이 더해졌다. 위궤양, 이석증, 피부염도 생겼다.
"직장조차 저에게 등을 돌렸다는 게 정말 큰 좌절이자 상처였어요. 육아휴직이 끝나면 원래 근무지로 복직하는 것이 원칙이에요. 그런데 시말서를 쓸 수 없다고 하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 조용히 있어라'는 식의 공문이 온 거예요. 저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해요. 그 모든 자부심이 무너져 버렸어요. 제가 죽어야 제 말을 믿어줄까요, 그래야 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봐줄까요."
다시 <결혼지옥> 전으로 돌아가면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출연을 결심한 건 저희 가족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어요. 아무렇지 않게 조롱 당하고 모욕 당하는 것까지 동의한 건 아니에요. 할 수만 있다면 방송 촬영부터 모든 걸 다 도려내고 싶어요. 다시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겠지만요."
박씨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악의적 게시글과 댓글, 왜곡된 유튜브 영상과 언론 보도 등에 대한 민원을 접수하고 있다. 온라인 게시판에 올라온 악플에 대한 2차 고소도 준비 중이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벅찬 상황이다. 박씨는 "누리꾼들이 자진해 댓글과 영상을 삭제하고 언론이 먼저 자극적인 보도를 비판해 주길 원한다"고 말했다.
"딸아이는 지금도 방송 이후 상황을 아예 몰라요. 제발 아이의 시각으로 바라봐주세요. 아이가 영상의 주인공이 나라고, 댓글이 나를 향한 거라고 생각할 때 받을 충격을 고려해주세요. 그리고 언론이 먼저 목소리를 내주세요. 여론과 언론과 경찰의 팽팽한 악순환 속에서 먼저 비판적인 기사로 변화를 만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