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용공분자나 빨갱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그를 '그저' 여러 대통령 중의 한 사람, 여러 노벨수상자 중의 한 사람으로만 생각했다. 한국 근현대사를 교과서 시험 범위로만 알며 언론이 양산하는 이미지를 고민 없이 수용한 사람은 나 혼자뿐일까.
<김대중탄생 100주년 기념 생애사진전>은 나의 무지를 깨칠 기회였다. 1924년 1월에 탄생한 그가 겪어온 고난과 그가 내렸던 선택을 살펴 보았다. 일찌감치 공산주의에 단호하게 선을 긋고 이 땅에 민주주의와 평화가 자리 잡도록 헌신한 삶이었으나 2009년 8월 서거 이후에도 그에 대한 평가는 야박했다. 그를 존경한다는 정치인들의 발언은 조작된 지역감정을 자극하거나 그의 이름을 등에 업어 후광을 노리는 전략으로 보았다.
2023년 6월 군산 현진갤러리에서 열린 생애 사진전을 주관한 김대중대통령군산기념사업회는 인간 김대중을 존경하는 군산 시민들의 모임이다. 왜 군산에서 그런 모임을 하느냐, 군산과 김대중이 무슨 관계냐, 라는 질문들은 그를 '정치적인 의도' 없이 조명한 경우가 거의 없었음을 보여준다.
6월 사진전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기 당시와 퇴임 후 군산을 방문했던 사진은 물론 1970~90년대의 방문 사진도 전시했다.
2024년 1월 전북도청 전시실에서 다시 선보인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 생애사진전 -아름다운 발자국 인간 김대중> 전시는 그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밟아왔던 고난과 극복의 과정뿐만 아니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학창 시절과 이희호 여사의 청년 시절의 사진들도 볼 수 있기에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젊은 시민들도 친숙하고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특히 중앙에 배치된 서예 작품을 눈여겨보길 바란다. 이번 전시를 위해 김대중대통령군산기념사업회 회원들이 선정한 김대중 어록을 서예가 김부식이 제작했다. 이 작품들은 시민이 그를 존경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각 작품이 어떤 서체로 쓰였는지만 알게 되어도 익숙했던 어록들을 새로운 의미로 읽게 된다.
절대 국민을 떠나지 않는다: 판본체
1980년 YMCA 초청 연설문을 판본체로 썼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직후의 글씨인 판본체에는 세종대왕이 백성을 아끼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획의 두께가 일정하고, 사각형의 형태를 유지하니 안정적이고 믿음직하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국민과 함께하는, 국민을 떠나지 않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김대중의 다짐이 담담하고 진실하게 다가온다.
'김대중이는 천 번 죽어도 국민을 떠나지 않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필요로 하면 우리 민족의 혼이 내게 명령하면 나는 다시 열 번 납치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백 번 감옥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천 번 연금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여러분에게 봉사할 것을 다짐합니다.'
행동하는 양심: 민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전 마지막 연설에서도 강조한 그의 대표적인 어록인 '행동하는 양심'은 민체로 쓰였다. 민체는 서민들의 편지글에 많이 쓰여 서간문체라고도 불렸다. 세로쓰기지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을 수 있도록 제작했다.
쉬운 글자 훈민정음의 역사는 일면 민주주의와 닮았다. 오랫동안 천시받았지만 결국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으로, 모두를 위한 것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민중 스스로가 지켜왔다. 그가 시민에게 전하는 마지막 당부를 민체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행동하는 양심이 됩시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입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으로 자유와 서민경제를 지키고 평화로운 남북관계를 지키는 일에 모두 들고 일어나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 희망이 있는 나라를 만듭시다.'
-615남북공동선언 9주년 기념 연설
용서와 사랑: 민체
'행동하는 양심'이 단단한 민체라고 한다면, '용서와 사랑'은 부드러운 민체로 쓰였다. 특히 ㄹ자가 자유롭게 흘려 정돈된 형태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용서와 사랑'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원수를, 악인을 용서하는 것이 가능할까, 옳을까 라는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규칙과 원칙만 앞세우면 아예 실현 불가능한 것에 어지러운 듯, 유연한 듯, 흘려버리는 마음이 깃들어야 가까스로 너그러운 강자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용서와 사랑은 진실로 너그러운 강자만이 할 수 있다. 꾸준히 노력하여 하느님께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힘까지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언제나 기구하자. 그리하여 너나 내가 다같이 사랑의 승리자가 되자.'
-옥중서신 중 아들에게 보낸 편지 일부
생애 사진전의 팸플릿 마지막 장에는 1980년 군법회의에서 한 최후 진술이 실려있다. 사형선고를 각오한 공개적 유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먼저 죽어 간 나를 위해서든, 또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정치적인 보복이 이 땅에서 다시는 행해지지 않도록 부탁하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가 위태롭다. 민주주의는커녕 상식의 기준도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증오와 혐오의 칼날이 테러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날카로워지는 무도한 심성을 누그러뜨리고 인간에 대한 용서와 사랑을 놓지 않았던 김대중의 굳건한 믿음을 다시 읽고 새겨야 할 때다.
인생: 전서체와 행서체
'인생은 얼마만큼 오래 살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얼마만큼 의미있고 가치있게 살았느냐가 문제다. 그것은 얼마만큼 이웃을 위해서 그것도 고통받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살았느냐가 문제다.'
-김대중 마지막 일기 <인생은 아름답고 역사는 발전한다> 중에서
서예를 거의 모르는 나로서는 이 작품을 겨우 읽어냈으니, 예술적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 김대중을 정치적 영역에서 벗어나 위대한 사상가이자 실천가로서, 한 시대의 지도자로서 바라보기 위해 예술적 매개가 필요한 것을 알겠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김대중의 생애를 살피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부정한 군법회의 재판장에서 "
머지않아 1980년대에는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입니다"라는 최후 진술을 남기는 김대중은 자기 자신보다 민주주의와 국민의 힘을 믿었다.
김대중을 존경하는 시민으로서, 나는 2020년대의 민주주의 회복을 믿고 있을까. 자본주의의 횡포와 기후재난의 시대에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핑계 삼지 말고, 나의 양심을 행동으로 옮기며 지금을 살아내는 것이 그의 발자국을 따르는 첫 걸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