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 30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아래 산자위)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거대 양당의 합의로 '지역균형투자촉진 특별법안(아래 특별법)'을 가결했다. 이 특별법은 2023년 6월 9일 공포된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수도권 내 인구감소지역과 접경지역을 포함한 비수도권 지역에 조성할 수 있게 된 '기회발전특구'(아래 특구)의 조성과 관리에 필요한 제반 사항을 법률화한 것이다.
법안은 "기업과 근로자에 편의와 지원을 제공하여 지역균형투자를 촉진함으로써 지역이 주도하는 지역균형발전과 국민 모두가 어디에 살든 균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지방시대를 효율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려는 것"이라는 이유로 "지방투자와 지방기업 등에 대한 재정 및 세제 지원, 실태 조사"(안 제5조부터 제8조까지), "기회발전특구의 지정·지원, 기회발전특구집합투자기구의 조성 및 세제 지원, 기회발전특구 내 규제 특례"(안 제9조부터 15조까지), "기회발전특구에 대한 외국인학교의 설립 및 운영 지원, 외국인 진료병원의 지정 및 운영 지원, 기회발전특구 근로자에 대한 주택공급, 기회발전특구에 대한 부담금 감면에 관한 특례"(안 제16조부터 제19조까지) 등을 "지방투자와 기회발전특구에 관한 특례에 관하여 다른 법률에 우선하여 적용함을 규정(안 제4조)"하고 있다.
산자위 회의에서 아무런 이견 없이 그냥 통과된 이 법안은 이후 한 언론매체의 보도(
[단독] 노동시간·최저임금·중대재해법 우회 법안 '여야 만장일치', 한겨레신문, 2023년 12월 22일)를 통해 잠시 관심이 모아졌다. 주된 이유는 제14조에 규정된 '규제 완화' 대목이다. 지자체의 신청을 통해 지정된 특구는 세금 혜택, 연구·개발 지원, 규제 완화 등의 조치가 가능한데, 특별법은 이례적으로 규제 완화 '불가 조항'을 본문에서 열거하고 있다. 열거된 조항들은 근로시간과 탄력근로제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50, 51조, 최저임금 이상 지급 및 기존 임금삭감 불가 원칙을 밝히고 있는 최저임금법 6조, 원청 사업주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규정한 중대재해처벌법 4, 5조 등 20개 조항이다.
얼핏 보면 최소한의 보호 장치를 마련한 듯 보이지만, 이는 사실상 특구 내 노동관계법의 형해화를 불러올 수 있는 조항이다. 해석하기에 따라 위 20개 조항만 지키면 나머지 노동관계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으며, 정말 이렇게 된다면 해당 특구 내에서는 '주 69시간 근무제'도 가능하고(근로기준법 제53조(연장근로의 제한)), 4시간 근로시 30분 이상의 휴게시간(근로기준법 54조(휴게))을 주지 않아도 될 수 있는 것이다. 특구 내 별도의 최저임금위원회를 설치, 운영할 가능성도 있으며 (최저임금법 제8조(최저임금의 결정)),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이 처벌받지 않을 수도 있다(중대재해처벌법 제6조(중대산업재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등의 처벌)).
산업자원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특례부여 여부를 심의하는 절차가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특례가 자동으로 부여되는 것인 아니"라고 해명하지만, 기시행 중인 '규제자유특구 및 지역특화발전특구에 관한 규제특례법'(아래 지역특구법)에서 이미 규제완화 특례를 부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해당 법령의 준용이 아닌 별도의 규제완화 불가조항을 따로 나열한 것은 지역특구법의 특례를 넘어서 위에 예시한 규제완화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의심을 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100만 원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노동자 버전?
또한 특별법은 또 다른 문제점을 포함하고 있다. 특별법은 외국인 학교(제16조), 외국인 병원(제17조), 근로자 주택공급(제18조) 등 다분히 이주노동자 확대를 목적으로 한 법안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위 예시의 특례가 결합되어 이주노동자를 대규모로 들여와 노동법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으며 가혹하게 착취하는 '노동지옥 특구'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극심한 저출생시대에 이주노동자를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더욱 폭넓게 받아들이는 일은 물론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더 낮은 임금'으로 '더 오랜 노동시간'에 시달릴 개연성이 높은 이주노동자를 확대하겠다는 것은 올해 초 조정훈 국민의힘 국회의원 (당시 시대전환)이 얘기했던 '월 100만 원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다른 버전일 뿐이다.
이런 식의 '싸고 일 많이 하는' 이주노동자의 양산은 결국 내국인 노동자들의 임금 역시 떨어지게 만들고, 떨어진 임금으로 인해 줄어든 소비는 바로 전체 취업자의 20% 이상이지만(2023년 1월 기준 자영업자 549만9000명, 전체 취업자 2736만3000명, 통계청) 월 평균 소득은 196만 원에 불과한 (2021년 임금근로일자리 소득 결과, 통계청) 국내 자영업자들에게 치명타로 다가올 것이다.
이는 특히 부산, 울산, 거제 등 대규모 공장에 지역 경제가 의존하고 있는, 그러나 점차 확대되고 있는 저임금 이주노동자의 비중 때문에 지역 경제 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지방 산업도시에 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조선업의 엄청난 호황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의 지역상권 회복은 더디기만 한데, 이는 지역 대기업들이 장기간의 조선업 불황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던 숙련 노동자들을 떠나보낸 자리를 저임금 하청노동자나 이주노동자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주머니가 얄팍해진 하청노동자들은 더욱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고, 안 그래도 더욱 적은 수입을 절약하여 돈을 모아 본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주노동자들 역시 지역 내 소비에 적극적으로 나설 리가 없다. 이러한 단기체류 목적의 이주노동자들이 지역 내 소비를 늘리려면 충분한 임금과 함께 보다 쉽게 귀화나 영주권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할 텐데, 지난 2023년 12월 6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국민의힘 의원총회 연설에서 밝힌 내용인 "필요한 외국인만 적극 유치, 불법 체류자는 더 강력히 단속"하는 식의 인식으로는 그야말로 요원한 일일 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얼마 전 한신대학교의 우즈베키스탄 출신 외국인 유학생의 강제추방 사태만 봐도 뻔하지 않은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거대 양당은 기장 기본적인 노동인권조차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지옥 특구'를 양산할 위험성이 다분한 '지역균형투자촉진 특별법안'을 즉시 철회하기 바란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훨씬 오래 일하고 더 적게 받는' 저임금노동자를 양산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회의 구성원이기도 한 노동자에게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이들이 지역 사회에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여가 시간과 필요한 사회기반시설을 확충하는 것이다. 거대 기업에게 퍼주기만 하면 알아서 물이 아래로 흘러내릴 것이라는 케케묵은 '낙수효과' 타령은,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덧붙이는 글 | 슬로우뉴스와 이코노미21에도 기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