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정부의 정책 발표가 유례없는 속도전으로 진행되고 있다.
대체로 세금 부담을 깎아주거나 정부 재정지원을 늘리고 규제를 확 푸는 내용들이다.
주로 상반기, 되도록 1분기에 정책역량을 집중시킨 모양새다. 하반기로 갈수록 동력이 약해질 수 있는 경기전망, 아직 3%대 머무는 인플레이션 흐름과도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반기 '재정 절벽'과 '정책 공백'으로 이어지는 조삼모사(朝三暮四) 정책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민생 정책'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있지만, 4월 총선용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유권자 부담을 높이는 연금개혁 등 구조개혁 이슈들이 사실상 후순위로 밀린 것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연초 보름간 잇단 중량급 정책발표
14일 관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지난 4일 발표한 '2024년 경제경책방향'과 국토교통부 주도의 '1·10 주택대책'을 중심으로 연일 중량급 경제정책이 나오고 있다.
증시 첫 개장일인 2일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방침이 공식화됐고, 이튿날에는 당정 협의 과정에서 임시투자세액공제 연장(1년)과 상반기 한시적인 전통시장 사용분 소득공제율 상향(40→80%) 방침이 발표됐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자동차 부과' 보험료를 폐지하는 조치(1월5일), 서민과 소상공인의 대출 연체기록을 삭제하는 방안(1월11일)도 당정 루트를 통해 발표된 사례다.
그밖에 ▲ 1분기 영세 소상공인 전기료 감면(1인당 20만원 혜택) ▲ 영세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세금납부 기한연장(부가가치세 3개월·법인세 3개월) ▲ 1학기 학자금 대출금리 동결(연 1.7%) 등의 정부 대책도 별도로 제시됐다.
통상 재정 부담, 형평성 논란 등으로 쉽게 꺼내기 어려운 파격 조치들이 1분기 또는 상반기라는 꼬리표를 달고 쏟아진 셈이다.
연간 경제운용 윤곽을 제시하는 '2024년 경제정책방향'은 상반기 포커싱이 더욱 뚜렷하다.
정부는 도로·항만·철도 같은 SOC(사회간접자본) 예산 26조4천억원의 65%를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상반기 내수·건설 부진에 대응하는 취지라는 게 정부 입장이지만, 선거용 단골메뉴인 SOC를 전면에 내세운 모양새다.
지방 교부세·국고보조금 등도 상반기에 60%를 신속 집행하기로 했다.
올해 60조원대 공공투자 역시 상반기에 역대 최고 수준의 진행률(55%)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취약계층·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노후 냉·난방기 및 LED 조명을 교체하는 고효율기기 정책예산 약 1천500억원도 최대한 조기 집행하고 필요시 추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노인 등 직접일자리 지원 인원의 90%를 1분기에 채용한다는 목표까지 제시했다.
카드사용액 증가분에 20% 소득공제를 추가로 적용하고, 중앙과 지방의 공공요금에 대해 동결 기조로 운영하는 방안에도 '상반기'라는 전제가 달렸다.
한 달 전 국회 세법심의에서 확정된 추가 소득공제(10%)를 상반기에만 10%포인트 상향 조정하고, 그간 공공요금 정상화 명분으로 추진했던 '요금 인상' 추세에도 쉼표를 찍은 셈이다.
핵심정책 줄줄이 法개정 필요
더구나 상당수 정책은 입법 사항이다.
현행 여소야대 지형에서 야당의 동의 없이는 실현되기 어렵다. '총선 올인모드'인 여야가 정상적인 입법심사에 나서기 어려운 여의도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정책실현 가능성은 총선 결과에 연동될 공산도 크다.
약 1주일 간격으로 발표된 2024년 경제정책방향과 주택대책만 보더라도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 사안이 많다.
기재부가 꼽은 경제정책방향 주요 입법과제는 총 12개로, 이 가운데 6개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필요하다.
30년 넘은 노후 아파트의 안전진단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조치를 비롯해 '1·10 주택대책'의 핵심 내용들도 도시정비법·주택법·조세특례제한법·민간임대주택법 등을 바꿔야 한다.
야당의 반대에 부닥친다면 '법 개정을 위해 여당에 과반 의석을 달라'는 선거프레임을 앞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꽃놀이패라는 해석도 가능한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국자는 "역대 정부라고 다를 바 없었다"라면서도 "당분간 정책 발표들이 4월 총선과 무관하기는 어려운 게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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