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17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강지웅·박연주·홍진국 판사)가 "피고인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하자 방청석에 앉아 있던 이아무개(75) 할머니가 눈물을 보이며 74년 전 억울하게 학살되었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어깨를 쓰다듬어 주는 같이 온 이들의 손길에도 김 할머니는 한동안 방청석에 앉아 눈물을 글썽였다.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유족들은 모두 어두운 얼굴로 법정을 나왔다.
무죄 선고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김 할머니를 포함한 창원유족회 회원 5명은 희생자들을 대신해 '국방경비법 위반' 재심 사건을 신청했다. 이들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이후인 2021년 7월,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에 재심을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재심 신청자 가운데 일부가 다른 사건으로 이미 교도소에 구속되어 있어 불법 구금이 아니라며 재심을 거부했다. 1심 재판부의 재심 개시 결정에도 검찰은 항고, 재항고를 했다.
이에 대법원은 지난해 7월 '재심개시 결정 등에 대한 재항고 기각 결정'을 내렸고, 지난 해 11월 17일이 되어서야 창원지법 마산지원에서 첫 공판이 열렸다. 그리고 유족들은 긴 기다림 끝에 이날 무죄 선고를 받았다.
강지웅 판사 "유명 달리한 피고인의 편안한 안식 희망"
이날 법정에는 이명춘 변호사와 고인의 자녀 3명, 손자 2명이 출석했다. 먼저 강지웅 판사는 공소 사실에 대해 확인했고, 증거 기록 자료를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앞서 열렸던 공판에서 검찰은 국가기록원, 육군본부 등에 문서 촉탁 등 절차를 거치겠다고 했지만, 강 판사가 "육군본부에서는 자료가 왔지만 국가기록원은 없다. 문서 촉탁 신청을 철회하겠느냐"라고 하자, 공판검사는 '철회한다'라고 했다.
이어 강 판사가 "공소 사실은 특정되었는데 재판 기록에 대한 자료가 없다"며 검사한테 구형하라고 하자, 공판검사는 "무죄를 구형한다"고 했다.
이명춘 변호사는 "무죄다. 돌아가신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 하더라도 죄가 없는 사람들에 대해 학살을 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반성해야 하고 국민 생명을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판부의 피고인 진술 요청에 유족 가운데 2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정아무개씨는 "진실을 꼭 밝혀달라"라고, 권아무개(손녀)씨는 "할아버지의 무죄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두 달 전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이 자리에 할머니가 계셨으면 할아버지 이름을 불렀을 것이다. 국가가 저지른 불법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해 달라"라고 했다.
재판부는 잠시 휴정 후 재판을 재개했다. 강지웅 판사는 "공소 사실은 특정되지 않고 있다. 범행 일자와 장소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라며 "재심 사건을 판단할 근거 자료가 제출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소장에 나온 범죄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라며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결했다.
강 판사는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재심을 거쳐 무죄를 선고해 잘못된 과거사를 바로잡고 명예가 복원되기를 희망한다. 유명을 달리한 피고인의 편안한 안식과 유가족 심적 고통에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강 판사가 피고인들한테 "무죄 공시를 희망하느냐"라고 묻자, 이명춘 변호사는 "공시해달라"라고 대답했다.
"연좌제 때문에 힘들었다"
정아무개(76)씨는 "74년 전 여름 가난한 소작농의 8남매 중 장남으로 가정을 꾸린 27살의 젊은 아버지는 아내에게 친정에 가서 '아이 젖 먹이로 오라'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 뒤 영영 볼 수 없는 길로 떠났다"고 했다.
정씨는 "세월은 흘러 성년이 된 그때의 젖먹이 어린 것은 '연좌제'라는 무서운 갈고리에 할퀴면서 어렵게 사회생활을 해왔다. 그 젖먹이 어린 것이 바로 나다. 74년이 지나서야 우리 아버지는 잘못하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최아무개(74)씨는 "아버지는 집에서 새끼를 꾀다가 만나자는 면사무소 측의 요청에 나갔다가 그 길로 돌아오시지 않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연좌제를 거론한 최씨는 "어렵게 살았다. 연좌제 때문에 대기업에 합격해 출근했다가 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기도 했고, 면접에서 탈락하기도 했다"며 "아버지가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가슴에 한이 맺힌다"고 했다.
이아무개(75)씨는 "아버지는 당시 누가 불러서 집을 나가셨다가 그 길로 돌아오시지 않으셨다"라며 "가족들이 정말 어렵게 살았다. 보도연맹이라고 말도 못 하고 살았다. 지금 아버지를 만나면 자식들이 잘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손자 권아무개(54)씨는 "할 말이 많다. 무엇보다 국가가 법대로 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